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chid Oct 12. 2023

불안한 사랑 이야기

<3000년의 기다림>

  알리테이아(틸다 스윈튼)의 시대는 지금. 과학과 문명이 런던의 알리테리아를 초속도로 이스탄불로 이동시키는 시대이다. 그녀는 제법 성공한 서사학자이다. 그러나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마술적 정령들이 나타나 그녀에게 말을 건다. 신비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예감대로 알리테이아가 이스탄불 그랜드 바자르(bazaar)에서 구한 오래되고 작은 유리병의 먼지를 전동 칫솔로 닦자 갑자기 펑하는 연기 속에서 거대한 흑인 정령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번 정령은 좀 다르다. 소원을 들어주는 통상적인 정령이 아니라 타인의 소원을 들어줌으로써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진(Djin). 속칭 ’윈윈‘의 상황이다. 청자와 화자의 경계도 없고 상대방이 소원을 말해야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이 기묘한 상황은 서로의 이야기에 몰입하기 시작하는 사랑의 서막이기도 하다. 홀로는 이룰 수 없는 둘 사이의 사랑.

  <3000년의 기다림>은 조지 밀러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후 7년 만에 A.S. 마이어트의 단편 <더 진 인 더 나이팅게일스..>를 스크린에 담아낸 것이다. 인생 최대의 행운인 소원 성취의 카드가 3장씩이라는 데도 알리테이아는 그런 행운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서사학자로서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섭렵한 그녀는 소원의 끝은 늘 재난이라는 것을 갈파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여인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어야만 유리병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는 진은 어떻게든 알리테이아를 설득해 소원을 말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진이 택한 정공법은 ’스토리텔링‘이다. 신비스럽고 이국적이기에 더없이 적합한 아랍과 튀르기예를 배경으로 솔로몬과 시바 여왕, 오스만 제국의 술탄의 이야기, 천재 소녀 제피르와 진이 나누었던 절절한 사랑과 갈망 그리고 지나친 욕망으로 인해 진이 유폐된 사연을 그린 3000년의 장대한 서사가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펼쳐진다. 

  정령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러브스토리인 <3000년의 기다림>은 몽환적이다. 진은 솔로몬의 구애에 넘어간 시바 여왕을 짝사랑하다 호리병에 갇혀 깊은 바다에 던져졌지만 천신만고 끝에 세상으로 올라와 거부 노인에게 팔려간 어린 신부 제피르를 다시 사랑하게 된다. 지식을 열망하는 총명한 그녀에게 세상의 모든 지식을 얻게 해주었지만 지나친 사랑과 갈망이 독이 되려는 찰나 진은 스스로 자신을 호리명에 유폐시킨다. 자신이 연기가 되어 사라지더라도 여인을 지키려는 진의 열정적 사랑의 이야기가 죽은 듯 잠자고 있던 엘리타이아의 사랑을 깨워낸다.  한 사랑이 끝난 것이 세상의 끝은 아니다. 실연의 탄식 속에도 뒤이어 새로운 사랑이 다가오지 않던가.

 진의 이야기는 세 번째 다가온 여인 알리테이아에게 구한 사랑의 프로포즈였을 것이다. 구애에 대답하듯 알리테이아가 첫 번째 소원으로 진에게 자신의 사랑을 받아달라고 화답한다. 인간과 정령의 사랑이 운우지정의 붉은 연기로 피어오른다. 그리고 다시 런던으로 함께 돌아가자는 두 번째 소원으로 진이 이번에는 깨진 유리병 대신 작은 크리스탈 병에 담겨 런던으로 옮겨진다. 현대판 알라딘이 간신히 공항 검색대를 통과한 끝에 대도시 런던에 입성한다. 

 죽은 나무도 되살리는 사랑의 신비가 건조하고 예민했던 알리테이아의 신경망들을 느슨하게 풀어내자 얼굴에는 행복감이 넘치고 마음은 한없이 온유해진다. 사랑 자체가 마법이다. 그렇다고 그 또한 영원한 나의 것이 아니다. 사랑의 집착이 감옥이 되고 비극이 되는 진의 이야기에서 알리테이아는 사랑을 가두지 않는 미덕도 배웠다. 보냄으로써 진정한 사랑을 얻는 신비는 그녀가 사는 세상의 초과학적인 논리로는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 도 없는 인간의 마음이다. 처음에는 함께 한 그 사랑이 너무 좋았지만 점점 도시의 소음과 갇힌 공간에서 석화되고 죽어가기 시작하는 진을 위해 알리테이아는 그를 정령의 세상으로 보내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자유롭게 풀려난 정령은 언제든 오고 싶을 때 와서 알리테이아와 행복을 나누고, 떠나고 싶을 때 연기처럼 공기 속으로 날아간다. 사랑은 함께 이어서도 좋지만 그 사랑에 대한 기다림도 행복이다. 

  3000년의 이야기를 2시간 안에 풀어내기 위해 분주했던 화면의 마지막에 담기는 것은 잠시 쉬어가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알리테이아가 저기 멀리서 다시 등장한 정령을 마주하기 위해 세는 “하나, 둘, 셋” 사이에 설렘으로 가득 찬 공기가 화면 너머로 느껴진다. 손가락 하나의 순간 터치만으로도 우주로 비상할 수 있는 첨단 디지털의 시대에 사랑을 다시 얻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3초가 태고의 3000년과 맘먹을 수 있을까? 손에 잡아야만 꼭 내 것이 되는 욕망보다 안고 싶은 것을 꿈꾸고 기다리는 틈 사이의 설렘이야말로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사랑의 원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먼지로, 반짝이는 빛의 조각으로, 붉은 공기로, 허연 증기로 등장하고 사라지는 정령처럼 쉬이 변하고 흔들리는 불안한 정서가 사랑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그 사랑이 사람을 사람답게 완성시키는 마법의 묘약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이 끝났다고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