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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Oct 12. 2023

잃어버린 내 딸을 품는 시간의 기적: <컨택트>

   현존하는 최고의 SF작가인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드되 빌뵈브를 만나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남은 이의 아픔을 위로한다. 그런데 위로의 서막은 거창하다. 거대한 외계인의 ’쉘‘(shell)의 출현은 마치 난장이 나라에 온 걸리버의 출현 같은 장면이다. 수천년의 시간과 언어의 신비를 품고 있는 로제타 비석을 떠올리게 하는 ’쉘‘이 지구에 내려앉는다. 그러나 지구인에게 알 수 없는 낯선 외계인의 출현은 곧 공포이다.

   과학을 토대로 하지만 <컨택트>는 외계인의 낯선 시간과 언어를 만난 한 언어학자의 정신적 성장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지구에 출현한 외계 생물체(헵타포드)와 소통을 하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인 루이스는 그들의 원형적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미래를 미리 볼 수 있게 되고 딸의 죽음까지도 보게 된다. <컨택트>에서 루이스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언어 결정론적 관점이다. ‘사용하는 언어가 생각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사물을 보는 시각도 바꾼다’는 사피어-워프(Sapir-Whorf)의 가설처럼 선형적인 문법적 구조에 익숙한 언어학자 루이스의 시간관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직선적 시간이었다. 영화의 시작부에서 “우리 인간은 시간에 너무 매여있어. 특히 그 순서에,,.”라는 그녀의 독백이 우리의 갇힌 시간을 의미한다.

  영화의 주인공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같이 외계인에 대해 연구하던 물리학자인 이안(제레미 레너)에게 묻는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전 생애를 볼 수 있다면 삶을 바꾸시겠어요?”. 더욱이 그 ‘생’(life)에서 당신의 사랑하는 딸이 불치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게 되더라도 당신은 미래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다. 만약 그 삶을 선택했다면 당신은  이안의 비난대로 ‘이기적인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영화의 주인공인 루이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모든 여정을 알면서,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걸 받아들여.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지”. 그렇게 루이스는 비록 삶이 고통스럽더라도 매 순간 사랑과 추억이 담긴 삶을 선택한다. 

  <컨택트>의 반전은 지금까지 과거인 줄 알았던 루이스의 딸에 대한 기억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갓 태어난 딸을 가슴에 안기 위해 “나에게 오라고”(come back to me) 속삭이는 행복한 엄마의 모습은 바로 그 뒤에 이어지는 딸의 죽음 앞에서 “나에게 돌아오라”며 슬프게 우는 엄마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 기억 속에서 루이스는 명철한 언어학자가 아니라 그저 딸을 자신의 품에 안고 싶은 지극한 모성을 가진 인간이다. 거꾸로 써도 철자가 똑같은 “Hannah”라는 이름도 앞과 뒤의 구분이 없는 헵타포드의 언어와 시간관을 닮은 것이었다.

  처음과 끝이 없고 모든 시간을 동시에 꿰뚫어 보는 헵타포드의 세계처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집 거실에 있는 루이스의 첫 화면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수미상관을 이루는 구조에서  루이스의 독백이 이어진다. “그래서 한나,  너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돼. 그들이 떠난 날....”. 헵타포드는 떠났지만 루이스가 선택한 미래의 삶으로 인해 한나는 다시 엄마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고 이제 이야기는 딸 한나의 인생 이야기가 될 것이다. 고통이 기다림에도 그 삶을 선택하는 건 인간만이 품는 사랑의 위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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