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것도 사는 것도 심드렁해 보이는 고등학교 교사인 4명의 중년 남자들이 실험 삼아 술을 마시면서 벌어지는 소동과 반전에 관한 웃지 못할 이야기가 <어나더 라운드>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16세만 되면 술을 마실 수 있는 덴마크 고등학교 학생들이 호숫가에서 맥주 박스를 들고, 마시며 이어달리기 경기를 한다. 경기라고는 하지만 토하도록 맥주를 마셔가며 진행되는 난장판에 가까운 경기이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학생들은 언제 그 난장판을 벌였나 싶게 다시 성적과 입시가 직면한 교실로 돌아간다. 술은 자칫 성적에 찌들려서 빛나는 청춘을 즐기지도 못하는 학생들에게 한바탕 카타르시스를 선물한다. 더구나 4명이 한 조가 되어 맥주 박스를 들고 이어달리는 경기에서 중요한 것은 누구 한 명이 토하거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하는 팀웍이다.
영화는 학생들의 유쾌한 이탈을 교사들의 우울한 삶에 옮겨 놓는다. 4명 중 주인공인 역사 교사 마르틴(매즈 미켈슨)은 젊은 시절에는 훌륭한 논문도 쓰고 교수직이 예상된 뛰어난 교사였지만 지금은 수업의 맥락도 뒤엉킬 정도로 나사가 빠져 있다. 아내와의 대화는 거의 단절이 된 채 냉랭함이 도는 가정 또한 곧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인다. 심리학을 가르치는 페테르(라그스 란테)는 의대 시험을 포기하려는 학생을 일으켜 세워야 하고, 음악 교사 니콜라이(마그누스 밀랑)는 국가를 연습하는 합창단의 화음을 잘 이끌어 내야 한다. 오랜 전 이혼한 체육 교사인 톰뮈(토마스 보 라센)은 짐(gym)을 뛰는 학생들 가장자리로 아예 물러나 앉아 무기력하게 앉아 있다.
모두가 처한 무기력함과 위기에서 니콜라스가 제안을 한다. 사람들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가 부족한 채 태어났으며 만약 0.05%를 채운다면 훨씬 창의적이고 활달해진다는 한 정신의학자의 가설을 실험해 보자는 것이다. 먼저 마르틴이 시도를 한다. 처음에는 수업이 더 엉망이 되는 실패가 있었지만 점점 더 알코올 도수를 올리자 그의 수업은 열정과 자신감이 되살아나서 학생들의 집중력도 높아지고 덜컹거리던 가족과도 화해를 한다. 문제는 그 이후다. 알코올의 효능에 매료된 그의 알코올 농도가 0.12까지 오르게 되자 선한 영향력은 사라지고 그의 수업과 가족 관계는 전보다 더 엉망진창이 된다.
4명 중 가장 온화한 인상을 가진 체육 교사인 톰뮈는 더없이 좋은 교사였지만 그도 마침내는 알코올 중독이 되어서 학부모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결국 자괴감과 함께 톰뮈는 노견을 태운 채 작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아가 자살을 하게 된다. 톰뮈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마르틴은 불현듯 깨진 가정을 회복하기 위해 사랑하는 마음을 아내에게 고백하는 용기를 낸다. 술을 통해 쓴맛과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진짜 마음을 몰라서 놓쳤을 수도 있는 사랑이었다. 비록 한 친구를 잃는 슬픔을 겪기는 했지만 그들에게 과음과 절제 사이에서 밸런스를 찾지 못하고 허우적대었던 시간이 그냥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백프로의 비극도 없고 백프로의 희극도 없는 삶에서 이 긍정의 신호가 견고한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혈중 알코올 농도처럼 삶의 행복도 고통도 0.05%는 늘 모자란 것일게고 어쩌면 그 결핍은 삶의 근본적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술에 취해 엎어져서 머리가 깨쳐 피흘리렸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춤을 추는 마르틴의 반전은 그럼에도 살아있어 행복하다는 환호를 지를 만 하다.
영화의 정점은 실제 현대 무용가로 활동했다는 주인공 마르틴이 졸업 축제에서 술에 취해 추는 멋진 재즈 댄스이다. 영화 첫 화면에 등장했던 키에르케고르의 명언처럼 사랑이 있는 한 청춘이듯이 그들은 혹독했던 제2의 성인식을 통해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되는 새로운 라운드(어나더 라운드)로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