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원제는 ‘CODA’는 긴 연주곡의 마지막에 연주되는 종결부이다. 영화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연륜이 깊은 손을 클로즈업한 화면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렇지만 열정이라는 의미가 무색하게 피아니스트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열정적이라기보다는 정적이며 장면들은 유명 음악당이나 뉴욕의 센트럴파크, 남프랑스, 알프스 자락에 자리 잡은 스위스의 실바플라나와 같은 전원적 풍경들이다. 이 목가적인 풍광을 배경과는 달리 영화의 주인공인 헨리(패트릭 스튜어트)는 피해갈 수 없는 세월의 무게와 아내를 잃은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피아니스트이지만 완벽한 무대 연주에 대한 압박감과 두려움에 사로 잡혀있다.
이런 상황에 처한 그에게 음악 평론가인 헬렌(케이티 홈즈)이 다가온다. 음악 평론가인 헬렌이 이 피아니스트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헨리의 훌륭한 실력이기도 하지만 과거 헬렌이 참가한 마스터 클래스에서 피아니스트에게 중요한 것은 ‘느낌’이라고 말할 만큼 성찰이 깊었던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한때 피아니스트를 꿈꾸었지만 꿈을 포기하고 평론가가 된 헬렌이 헨리에게 니체의 ‘영원 회귀’를 언급한다. 그녀는 영원 회귀는 무한 순환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온 이야기와 시간을 묵묵히 안고 그 자리를 지키는 바위처럼 삶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그리고 헨리에게 니체에게 영감을 준 스위스 호수와 산이 있는 한적한 산골 마을에서 당분간 휴식을 취할 것을 권한다.
헨리가 도착한 그곳에는 자연만이 아니라 그의 침울함을 조용히 지켜보는 중년을 넘어선 호텔의 프론트맨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유명 피아니스트가 그 호텔에 묵게 된다는 것을 알고 그 일을 자원한 것이다. 어느 날 그는 “우리는 앞으로 무엇이 다가올지 절대 알 수 없다”고 말하면서 패색이 짙었던 헨리와 두던 체스 게임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게임의 상황을 뒤집는다. 이 순간의 유쾌함으로 인해 헨리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웃음과 유머를 되찾게 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헨리는 매일 지나치던 커다란 바위를 보는 순간 마치 에피파니처럼 슬픔이나 강박증적인 연주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된다. 바위가 안고 있는 무한한 시간처럼 나이듦이 그리고 아내의 죽음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철학적 자성을 얻게 된 것이다. 마음의 평온함을 보여주듯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으로 시작한 영화의 마지막은 서정적이고 잔잔한 스카를라티의 건반 소나타 23번을 연주하는 클로즈업된 피아니스트의 깊게 주름진 손이다. ‘코다’(CODA)는 단순히 끝이 아니라 아름다운 곡의 대미를 닫아주는 어떤 예술의 경지이며 피아니스트의 손 주름에는 삶을 마무리 하는 예술가의 품격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