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엄마 때문에 집안일, 등교 준비는 혼자 알아서 할만큼 어른스럽지만 엄마(펠리시티 존스) 없이 홀로서기에는 턱없이 어린 코너(루이스 맥더겔)이다. 그러니 응석은 커녕 깊게 갈라진 절벽에 매달려 떨어지려는 엄마를 안간힘을 다해 붙들고 있다가 놓치고 마는 악몽에 시달리는 코너. 살짝 열린 병원의 문 사이로 언뜻 보았던 뼈만 앙상하게 남은 엄마의 등. 무섭도록 가혹한 꿈에선 엄마의 번번이 손을 놓치고 마는 꿈을 반복한다. 게다가 할머니와는 사사건건 갈등의 연속이고 이혼한 아빠(토니 켑벨)는 현실을 알아야 한단다. 학교에서마저 친구들의 폭력에 시달리는 코너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어른이기에는 어린’ 코너가 맞닥뜨린 현실에서 코너가 할 수 있는 것은 힘들다는 말이 아니라 폭력이다. 화가 나서 할머니 집의 가구를 부수고 자기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친구가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두드려 패서 문제아 낙인이 찍힐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밤이 되면 갑자기 땅이 꺼지고 교회가 부서지고 주목나무를 둘러싼 묘지의 땅이 쩍쩍 갈라지는 꿈속에서 주목나무가 몬스터(목소리: 리암 니슨)로 변하여 소년의 방을 찾는다. 그리고 몬스터는 소년에게 앞으로 세 가지 이야기를 해 주는 대신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는 코너가 스스로 말해야 한다는 규칙을 말한다.
파괴적이기도 하지만 따뜻하기도 한 몬스터는 코너의 분신이기도 하다. 마녀로부터 왕위를 빼앗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죽인 살인자이지만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들로부터 사랑받은 왕이 되었다는 몬스터의 첫 번째 이야기는 인간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다. “항상 좋은 사람도 없고 항상 나쁜 사람도 없고 대부분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몬스터의 말은 모든 것은 코너의 잘못이 아니니 괜찮다는 위로가 담겨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딸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신의 믿음을 버린 목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코너는 목사에게 화가 나서 목사관을 부수어 뜨린다. 목사는 바로 코너 자신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경련이 일 때마다 약을 찾아 엄마에게 주었던 코너나 할머니는 둘 다 엄마가 죽지 않을 거라는 거짓 믿음으로 겨우 슬픔을 버티고 있는 목사나 다름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면 누군들 뭐라도 해서 그 죽음을 지연시키고 싶지 않을까? 세 번째 이야기는 투명인간의 이야기이다. 자책감 때문에 차라리 맞기를 택하는 코너가 견딜수 없는 건 폭력이 아니라 없는 것이 되는 투명인간이다.
몬스터가 세 가지 얘기를 마치자 소년이 네 번째 이야기를 할 차례다. 엄마를 지켜보는게 고통스러워 이 상황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노라고. 차라리 엄마가 빨리 죽기는 바라는 소년의 숨겨진 죄책감 때문에 밤마다 꿈에서 소년은 무너진 절벽에서 엄마의 손을 놓친 것이 아니라 놓아버린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의 나쁜 마음을 고백한 코너의 용기를 몬스터는 칭찬한다.
그렇다면 아픈 엄마가 그만 떠나기를 바라는 코너의 마음이 정말 나쁜 것일까? 그럼 누가 착한 사람이냐고 묻는 코너의 질문에 몬스터는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중간이지“. 그리고 몬스터는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코너를 위로한다. 몬스터의 위로처럼 인간은 복합적 짐승(humans are complicated beasts.)이니까.
마침내 엄마가 숨을 거두는 순간이 왔고 코너는 엄마의 손을 놓지 않는다. 그토록 서로 어긋나던 할머니(시고니 위버)와의 갈등도 어쩌면 서로 비슷했던 마음(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가 그토록 궁금했던 이층방의 열쇠를 코너에게 준다. 이제 코너의 방이 될 그 방에는 엄마가 태어나서 성장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어린 엄마의 키를 재었던 벽 모서리의 눈금들, 아기의 모습부터 성장한 엄마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 그리고 책상에는 엄마의 스케치북이 놓여 있었다. 얼굴이 있는 소녀로부터 시작한 스케치북은 엄마가 성장하면서 점점 추상적이되고 주목나무 몬스터 위에 얼굴없는 소녀가 앉아 있는 그림으로 끝난다. 코너의 꿈은 엄마가 어린 코너에게 해주던 이야기들이었던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엄마의 스케치북을 조용히 덮는 코너가 뭔가 깨달은 듯 눈가가 그렁해진다. 얼굴이 그려진 소녀(엄마 자신)으로 첫 장을 시작했던 스케치북의 마지막 장, 이제 코너는 얼굴 없는 소녀의 자리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을 차례이다. 엄마의 유산은 아이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채워나가도록 남긴 공백이었다. 비록 조금 일찍 찾아온 나홀로의 삶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혼란을 통해 부쩍 성장한 아이가 담아낼 미래의 이야기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