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약 우연히 거액의 돈을 주었다면 단 일초의 주저함도 없이 주인을 찾아주려 할까? 당연히 돌려주어야 하는 윤리적 선(善)에도 불구하고 이 굴러 들어온 행운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영웅>은 우연히 7개의 금화를 습득하지만 주인에게 돌려주었던 라힘이 한 순간에 영웅으로 추앙되었다가 거짓말쟁이로 추락되는 파국의 스토리이다. 그러나 사회적 추락을 선택한 대신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선택한 라힘의 숭고함이 그나마 세상의 고난을 견디는 구원의 가능성으로 남는다는 점에서 추락이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교도소를 나온 한 남자가 버스를 놓치고 택시를 탄다. 시작부터 어긋난다. 그가 도착한 거대한 돌산의 공사장. 이란의 고대 유적지를 보수하는 듯한 그 고압적인 돌산의 끝을 향한 카메라 앵글에 파란 하늘이 잡힌다. 공사장의 철책 문을 열고 들어선 남자는 정글짐처럼 돌산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는 안전대 사이에 놓인 나무 계단을 힘겹게 올라 그곳에서 노동을 하는 매형을 만나고는 다시 내려온다. 상승과 추락의 전형적 예고이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20키로를 감량할 만치 라힘은 조금은 주눅 든 재소자이다. 단지 지금은 수감자인 그에게 주어진 이틀간의 외출 동안 누나에게 맡겨진 아들도, 사랑하는 여인도 재회 할 수 있으니 설렘이 그의 얼굴에 가득하다. 그러나 보다 극박한 문제는 자신을 고소한 채무자인 장인을 설득해야 한다.
운에 없었던 굴러 들어온 행운은 선한 얼굴을 한 악마일까? 사업 실패로 인해 전 부인의 장인에게서 빌린 채무 15만토를 갚지 못해 교도소에 갇힌 라임에게 행운이 다가왔다. 새로 만난 사랑하는 여인이 우연히 주운 가방에 든 7개의 금화를 팔면 빚의 절반 정도는 갚게 될 것이고 남은 빚은 차차 일하면서 갚을 것이라는 간청을 장인이 들어준다면 교소도를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꾸어본다. 그러나 연인이 건네 금화의 가치는 한주가 다르게 떨어지고 영수증을 써야 하는 펜도 망가져 금화 팔기를 유보한다. 팔지 않은 채 빨랫감에 쌓여 있던 금화를 우연히 발견한 라힘의 누나는 도둑질을 의심하게 되고 라힘과 가족의 명예를 위해 돌려주기를 권한다. 결국 근처 은행에 들러 주운 금화를 알리고 마침내 주인이 나타나 누나가 보관한 금화를 찾아긴다.
제일 처음 그를 영웅으로 만든 건 교도소장과 직원이었다. 그들에게 라임의 선행은 수감자의 자살을 막지 못한 교도소의 불미스런 일을 덮기에는 더없는 호재였다. 그들의 계획대로 라힘의 선행이 언론과 tv를 통해 퍼지자 자선 단체마져 나서서 포창장과 그의 석방을 위해 후원금을 모은다. 가족과 세상 모두가 그를 칭송하는 데 단 한사람 그의 선행을 의심하고 못마땅해하는 이는 장인이다. 장인은 채무를 삭감해 달라는 주위의 간청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우연히 주운 남의 것을 돌려주는 것은 당연한데 그게 뭐 세상이 칭찬할 일이냐는 그의 냉소적 언행이 틀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날 존경한다”는 라힘의 자기도취도 잠시, 추락의 조짐이 시작된다. 그에게 직업을 약속한 시의회의 행정 사무관은 금화를 돌려주었다는 증거를 요구하지만 금화를 받고 잠적한 여인을 찾을 길이 없다. 눈물과 동정이 있을 수 없는 행정 시스템의 원칙을 고수하는 직원의 냉정함은 그가 지켜야 하는 책임이기도 하다. 금화를 찾아간 여인이 거짓 주인 행세를 했다는 의심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거짓이 거짓을 부르는 연쇄적 파장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 하는 라힘이 동분저주 한다.
호의와 적의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간사하리만치 쉬이 뒤집힌다. 효용이 쓸모와 버림의 잣대이다. 그가 위기에 몰리자 교도소장과 직원은 자신들의 거짓 각본을 모두 라힘의 잘못으로 몰아버리고는 그에게 등을 돌린다. 홍보를 노려 라힘을 이용한 자선단체도 후원자들의 후원이 끊길새라 그를 위해 모았던 모금을 불쌍한 모녀를 둔 사형수의 보석금으로 양보하자고 회유한다. 라임이 받은 도움을 오히려 그보다 더한 사형수에게 양보했다는 또 다른 거짓 미담으로 자신들의 허위와 실책은 전혀 노출시키지 않는 교활한 타협이다.
자신을 의심하도록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장인이라고 오해한 라힘이 찾은 곳은 전처인 딸과 함께 운영하는 장인의 인쇄점에 들르지만 그의 거짓과 무능함을 비난하는 장인에게 휘두른 폭력이 전처의 핸폰과 cctv에 고스란히 담긴다. 현실은 허우적댈수록 더욱 깊이 빠져드는 늪이다. sns를 통해 그의 행위가 찍힌 영상이 퍼진다. 푸코의 판옵타온은 현실이다. 내가 한 일을, 내가 간 곳을,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도처에 설치된 cctv의 시선과 컴퓨터의 알고리즘이 지켜본다. 숨겨진 시선에서 피할 수 없는 세상은 교도소보다 더한 살벌한 감옥이다.
그러나 진짜 라힘의 영웅만들기는 이제부터이다. 말을 더듬는 아들을 이용해 세상의 동정심을 얻으면 교도소의 체면은 유지되고 라힘이 자신의 몫을 양보하면 자선단체의 얼굴은 사회적 선을 지켜주는 천사가 된다. 그러나 라힘은 아들의 장애가 이용되어 자신을 구하는 대신 아들의 존엄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의 진실을 끝까지 믿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는 아버지가 영웅인 아들을 지켜주기 위해 교도서 직원이 아들에게 종용하는 원고를 날려버린다. 거대한 세상의 이기적 그물망에 맞서기에는 허약하기 그지없지만 아들을 지켜내는 아버지의 결단이 그를 진짜 영웅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