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퍼펙트 데이>의 아이러니는 ‘퍼펙트’의 의미가 무색하게 영화 내내 반복되는 희망과 실패 그리고 낙담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어둡거나 절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시종 깔리는 펑크 록의 경쾌한 음악과 함께 주인공들이 실패에도 주저앉지 않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가열차게 달리는 유쾌함이 시종 흐른다. 1995년 보스니아 내전이 거의 끝나고 평화협정이 맺어지는 즈음, 발칸 반도 어느 시골 마을이 배경인 이 영화는 ‘평화’라는 공언 뒤에 숨은 제도적, 정치적 맹점을 웃음으로 전달하는 블랙 코미디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긍정적 비전은 전쟁의 고통 속에서도 모든 경계를 넘어 서로를 보듬는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가 평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에 있다. 이 영화에서 활약하는 인도주의 단체(NGO)에서 파견된 주인공들이 입은 옷이나 차에 새겨진 ‘Aid Across Boarder’가 함축하는 메시지이다.
영화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파괴되고 빈곤해 보이는 발칸 반도의 어느 작은 마을, 마을 주민들의 유일한 식수원인 우물에 빠진 시신을 건져내기 위해 밧줄을 구하려는 NGO 팀원들의 하루 동안의 좌충우돌 분투기이다. 일상적인 날들이라면 밧줄 구하기는 아주 쉽게 해결될 문제이다. 그러나 밧줄을 찾아가는 길에 잠복 된 지뢰의 위험과 이방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닫힌 마음 그리고 분쟁이 끝날 즈음에 더 이상의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한 주둔 유엔군의 경직된 규칙이나 제지로 인해 이 간단한 일은 꼬이고 지연된다.
이들의 밧줄 구하기를 방해하는 것은 우선 시신들이다. 마치 공기를 잔뜩 주입한 거대한 공기 인형처럼 육중한 우물 속의 시신은 누군가 우물을 오염시키기 위해 고의로 빠뜨린 것이다.(마을 소년 니콜라의 말에 의하면 주민들에게 비싸게 물을 팔아먹기 위해 물을 파는 상인들이 꾸민 일이라고 한다). 또한 팀원들의 행보를 지체시키는 것은 길 위에 놓인 소의 사체이다. 이 사체 또한 누군가 소의 주위에 지뢰를 숨겨 놓은 함정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렇도록 힘든 밧줄 구하기는 지금까지 이웃들이었을 사람들에 의해 목매달림을 당해 죽은 자들이 매달려 있는 밧줄에서 해결된다. 죽은 자들이 산 자를 구한다. 이 주검은 바로 꼬마 니콜라의 부모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NGO 팀원들 중 리더격인 맘부르(베나치오 델 토로)가 구하고자 하는 것은 밧줄뿐만 아니라 니콜라에게 줄 축구공이다. 동네 거친 아이들에게 공을 빼앗겨 울상이 된 니콜라에게 맘부르가 다른 공을 구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맘부르에게 마음을 열게 된 니콜라는 밧줄이 있는 곳을 안다며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간다. 그곳에 밧줄이 있기는 하지만 정작 그 밧줄은 사나운 개를 묶어 놓은 것이라서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지경이다. 간신히 소시지롤 달랜 개를 두고 맘부르와 팀의 신참 소피(멜라니 티에리)가 집안 사정을 살피기 시작한다. 소피가 책장 깊은 곳에서 발견한 공을 꺼내는 사이 우연히 집 밖 마당을 내다본 맘부르가 공중에 매달려 죽어 있는 니콜라의 부모를 보게 된다. 니콜라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지만 밧줄은 우물의 시체를 건질 희망이 된다.
천신만고 끝에 밧줄을 구하고 돌아가는 하루 해가 기울어 가는 저녁, 서둘러 가는 길 위에 얼룩 소의 사체가 누워있다. 팀원들은 소의 사체 어느 지점에 지뢰를 설치했을지를 알 수 없으니, 노상에서 밤을 지내게 된다. 그런데 엉킨 실타래는 의외로 쉽게 풀리게 된다. 날이 밝아오자 먼 산길 들판을 따라 소들을 몰고 가는 마을의 노파가 보인다. 이 여인은 어디 묻혀있을지 모르는 지뢰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들을 앞세우고 소가 가는 길을 따라간다. 이때 멀리 눈 덮인 산들과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 그리고 드넓게 펼쳐진 산악의 너른 평원들이 어우러지는 장면의 아름다움은 압권이다. 이를 본 대원들은 그 노파의 뒤를 따라 무탈하게 마을로 되돌아온다.
우물에 도착해 드디어 거구의 시체를 거의 끌어올렸을 즈음 그 지역을 관리하던 주둔군이 규칙을 들이대며 밧줄을 끊어버리자 시신은 다시 우물로 떨어진다. 평화는 표면적으로 전쟁의 종식을 의미하지만 실제 민간인들의 삶에 대한 고려는 안중에도 없는 차가운 평화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군대에 맞설 수 없는 팀원들은 우물을 포기해야 하고 8천여 명의 난민이 있는 수용소의 화장실 배수 시설이 터져 난리가 난 마을로 도움을 주러 가야 한다는 연락을 받는다. 비만 안 오면 어떻게라도 그 문제를 해결해 볼 수 있을거라는 자조적인 말을 하자마자 그때 갑자기 세찬 소나기가 쏟아진다. 하늘도 그들을 돕지 않으니 완전한 실패의 날이 된다. 낙심한 소피에게 맘부르가 말한다. “지금 일어나는 일에만 집중해. ....계속 가는 거야. 그러면 결국 집에 가게 될 거야.” 한 곳의 기쁨이 다른 한 곳의 재앙인 세상에서 인간을 구하는 건 자연의 몫이다.
그 사이 한편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섭게 쏟아지는 소나기로 인해 우물이 넘치자 자연스럽게 시체가 떠오르고 이 희소식을 소를 몰고 마을로 돌아온 노파가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자 마을은 기쁨에 넘친다. NGO 대원들은 이 사실을 모른 채 바삐 다른 마을로 향한다. 이렇듯 <어 퍼펙트 데이>는 사실 하나도 완전하지 않은 실패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실망하거나 중지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향해 계속 걷는 사람들의 행동력에 보내는 찬사의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