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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Feb 11. 2021

영화<컨택트>-우리 인생의 이야기

삶이 그대를 힘들게 할지라도...

  현존하는 최고의 SF작가인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원전인 이 영화는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원작만큼 머리에 진동을 일으키지만 관객의 심장을 두드리는 감성이 버무러짐으로써 과학과 삶을 보다 유연하게 연결한다. 즉 인간의 내면이든 커다란 세계이든 '공존'을 지향하는 드니 빌뇌브의 세계관을 '컨택트'는 투영한다. 드니 빌뇌브의 명성답게 '컨택트'는 시각적 이미지, 청각적 음향이 스토리와 어울리면서 자칫 뻔한 클리쉐(cliche)에 갇힐 수 있는 외계인의 불시착이라는 이야기에 촘촘한 밀도와 잔잔한 감동의 여진을 선물한다.     


   서로 이질적일 것 같은 지성과 감성의 경계를 흐리며 뒤섞이는 플롯은 웅장함과 우아함 그리고 긴박감을 배가하는 배경 음악과 사운드로 입체적 전달에 성공한다. 지상의 놀라움과 떠들썩함이 무색할 정도로 압도하는 거대한 외계인의 ’쉘‘(shell)의 출현은 장엄하게 퍼지는 음악으로 신비한 존재감을 더한다. 마치 난장이 나라에 온 걸리버의 출현 같은 장면이다. 또는 수천년의 시간과 언어의 신비를 품고 있는 로제타 비석을 떠올리게 하는 ’쉘‘을 감싸는 사운드의 무게감은 군사적 전략이나 방사선 노출 따위에 절치부심하는 인간의 무용한 혼란과 소음을 우습게 느끼게 할 만큼 의연하다. 실재와 본질을 놓친 채 그 바깥을 부산하게 도는 우리의 무용함을 알 리 없으니, 방호복에 갇힌 거친 인간의 호흡 소리는 거칠고 긴박하기만 하다. 다시 SF의 본류로 돌아가자면 상상도 못한 낯선 생명체와 맞닥뜨린 세계는 혼란하지만 고요하기도 하고 외계 생물체의 등장은 초현실적이지만 영화는 인간의 시간관과 삶에 대해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주인공 언어학자 루이스는 물리학자인 이안에게 묻는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전 생애를 볼 수 있다면 삶을 바꾸시겠어요?”. 더욱이 그 ‘생’(life)에서 당신의 사랑하는 딸이 불치병으로 젊은 나이에 죽게 되더라도 당신은 미래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를 '컨택트'는 질문한다. 만약 그 삶을 선택했다면 당신은  이안(제레미 레너)이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에게 던진 비난대로 ‘이기적인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영화의 주인공인 루이스는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모든 여정을 알면서, 그 끝을 알면서도 난 모든 걸 받아들여. 그 모든 순간을 기쁘게 맞이하지”. 그렇게 루이스는 비록 삶이 고통스럽더라도 매순간 사랑과 추억이 담긴 삶을 선택한다. 딸을 잃는 비극이 예정된 삶을 환대하는 루이스의 정신세계는 초월적이다. 루이스의 선택이 의미하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필멸의 존재임에도 삶은 과정 그 자체로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컨택트‘에 대한 신선한 감동은 자칫 그리 새로울 것 없는 삶의 숭고함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플롯의 전개 방식으로부터 온다. 어느 날 지구에 출현한 외계 생물체(헵타포드)와 소통을 하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인 루이스는 그들의 원형적 언어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미래를 미리 볼 수 있게 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딸의 죽음까지도 보게 된다. '컨택트'에서 루이스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언어 결정론적 관점이다. ‘사용하는 언어가 생각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사물을 보는 시각도 바꾼다’는 사피어-워프(Sapir-Whorf)의 가설처럼 선형적인 문법적 구조에 익숙한 언어학자 루이스의 시간관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직선적 시간이었다. 영화의 시작부에서 “우리 인간은 시간에 너무 매여있어. 특히 그 순서에,,.”라는 그녀의 독백은 바로 그녀 자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사실 시간이라는 것은 임의적 개념에 불과할 뿐,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공기와 같이 그저 존재하는 것이며 흐르는 물과 같이 늘 변화하는 과정의 지속에 다름 아닐 것이다. 직선이 아니라 원형, 분절이 아니라 흐름과 순환의 세계를 대변하는 헵타포드의 형체는 흐느적거리는 연체동물인 대왕 문어를 닮아있다. 무언가 그들이 언어를 이미지로 표현할 때마다 헵타포드는 6개의 발(손)마다 달린 7개의 손가락을 물속에서 유영하듯 유연하게 움직이며 먹물같은 잉크를 원형의 모양으로 뿜어 의사를 표현한다. 그들의 언어는 표기문자(semasiography), 즉 문자가 의미는 있으되 뜻만 전달하고 소리와는 무관한 언어이다. 마치 고대 상형문자처럼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그들의 언어는 우리의 언어처럼 단어가 시제나 문법에 맞춰 나열되는 선형적 언어와 다르다. 단어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원형의 모양으로 뿌려지는 그들의 언어는 순서나 시간이 없으며(free of time) 시제 구분도 없으니 의미 또한 동시에 형성된다.


  결국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결정한다는 가설을 입증하듯 헵타포드의 언어를 체득하기 시작한 루이스는 지구의 시간관을 초월하기 시작한다. 시간을 초월하면서 루이스는 환각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불가능할 만큼 파편화 된 딸의 모습을 불규칙하게 회상하게 된다. 더욱이 헵타포드에게 우리의 언어를 가르치고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면서 소통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루이스가 딸을 기억하는 빈도는 더욱 잦아진다. 딸에 대한 기억이 극대화되는 클라이맥스는 방호복의 모자를 벗고 혼자 헵타포드의 쉘 안에 들어가 외계의 생명체와 유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 손가락을 펼쳐 맞닿을 때다. 행동은 언어를 앞서는 소통의 힘을 가진다. 루이스가 그들과 교감하는 극적 순간 후에 루이스는 정신을 잃는 상태가 되기도 하지만 루이스가 스스로 헵타포드의 언어를 그릴 수 있게 되면서부터 풀잎의 꼬물거리는 애벌레를 만지고, 잔잔히 흐르는 물속의 돌을 만지는 어린 딸의 손을 보기도 한다. 그만큼 루이스의 정신세계는 헵타포드의 언어와 같이 자연의 흐름과 생명들의 본질적인 움직임에 가까이 가게 된 것이다.     


  ‘컨택트’의 반전은 지금까지 과거인 줄 알았던 루이스의 딸에 대한 기억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갓 태어난 딸을 가슴에 안기 위해 “나에게 오라고”(come back to me) 속삭이는 행복한 엄마의 모습은 바로 그 뒤에 이어지는 딸의 죽음 앞에서 “나에게 돌아오라”며 슬프게 우는 엄마의 모습으로 대체 된다. 그 미래의 기억 속에서 루이스는 명철한 언어학자가 아니라 그저 딸을 자신의 품에 안고 싶은 지극한 모성을 가진 인간이다. 그러니 루이스에게 딸을 품에 안고 딸과 보안관 놀이를 하고 딸이 그린 그림을 보고 딸의 재능과 웃음을 보고 때로는 사춘기적 반항을 하는 딸에게 당황하기도 하지만 마침내 딸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는 고통까지도 껴안게 될 만큼 딸과 함께한 모든 삶의 순간들은 더없이 소중한 기억이 된다.     


  처음과 끝이 없고 모든 시간을 동시에 꿰뚫어 보는 헵타포드의 세계처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루이스는 첫 장면과 같이 여전히 집 거실에 있다. 영화는 루이스의 이야기가 바깥층을 감싸고 그 안에 그녀가 변하게 되는 과정이 전개되었던 액자 구조 였던 것이다. 마치 엄마의 자궁 안에서 태아가 세상으로 나오듯이 딸 한나의 미래의 탄생은 헵타포드의 언어와 그들의 원형적 세계를 이해하게 된 루이스의 노력과 점진적 변화의 과정 끝에 얻어진 것이다. 거꾸로 써도 철자가 똑같은 “Hannah”라는 이름도 앞과 뒤의 구분이 없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닮은 것이다.


   그것과 같이 수미상관을 이루는 영화의 구조에서 영화의 마지막은 영화의 처음을 열었던 루이스의 독백이 이어진다. “그래서 한나,  너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돼. 그들이 떠난 날....”. 헵타포드는 떠났지만 모든 시간이 함께 존재하는 헵타포드의 의식 세계에 들어선 루이스가 선택한 미래의 삶으로 인해 한나는 엄마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고 이제 이야기는 엄마 루이스의 이야기가 아니라 곧 실제 현실의 삶을 살게 될  딸 한나의 인생 이야기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우리를 앞선 부모가 선택한 미래였듯이 이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게 될 것이다. 시작과 끝이 없이 무한 순환하는 헵타포드의 영원한 시간은 바로 우리 삶 자체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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