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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Jul 25. 2021

같은 것보다 다른 것이 나에게
더욱 소중하답니다.

영화 <세 자매> 리뷰


서로 다른 조각들

  같은 부모의 형제나 자매들의 성격이 아주 다른 경우를 우리는 자주 맞추치게 된다. 영화 ‘세 자매‘(감독 이승원)는 그러한 상황에 대한 묘사보다는 왜 이 여성들이 그렇게 다를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녀들이 어떻게 그들이 그토록 두려워하고 싫어했던 가해자를 닮아있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아버지처럼 과격하지는 않고 서로 양상이 다르기는 하지만 세 자매가 닮은 아버지의 폭력성은 세 자매 모두 말 대신 몸으로 자신의 화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나타난다. 첫째 딸 희숙(김선영)은 대상에 대한 화를 정작 대상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가하는 자학적 방식이다. 둘째 딸 미연(문소리)은 겉으로는 고상함을 가장하지만 남들에게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한다. 셋째 딸 미옥(장윤주)은 아예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비난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과격한 몸의 행동이 먼저인 좌충우돌 형의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로부터 도망갈 수 있을까?     

 영화는 앞서 제시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찾아간다. 모든이의 현재의 모습은 결국 앞선 부모,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준 삶의 태도가 스며든 것이며 그러기에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현재의 내가 가진 문제에 대한 대답을 얻는데 필연적인 돌아보기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뿌리 없는 ’나‘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작은 무엇이 다급했는지 추운 겨울 날 내복만을 입은 두 어린 여자 아이가 두 손을 마주 잡은 채로 어딘가를 행해 숨을 헐떡이며 뛰는 장면이다. 이어서 한 아이가 뛰고 기차 건널목을 건너는 여성(희숙)이 병원에 들러 진료실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장면이다. 궁금한 관객이 병원을 들른 여성의 사정을 미처 알기도 전에 화면은 두 번째 여성(미연)이 목사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새 아파트를 얻은 감사의 기도를 한다. 세 번째 여성(미옥)은 두 번째 여성에게 어릴 적 기억을 묻기 위해 전화를 한다. 세 번째 여성은 오래 된 기억이 안나서 짜증이 날 정도로 과거에 매어있다. 이렇듯 첫째, 둘째, 셋째를 순차적으로 등장시키는 반복적 방식을 통해 영화 ’세 자매‘는 이 세 여성이 다른 듯 하지만 공통적으로 유년 시절에 겪었던 가정 폭력의 피해자임을 보여준다.  

   

 허름한 작은 꽃집을 운영하는 큰딸 희숙은 늘 이유없이 주눅 들어 있다. 입에 늘 달고 다니는 말은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이다. 아버지의 외도로 낳은 딸이며 아버지의 본처를 어머니로 삼아 살았다. 아버지는 자신의 외도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유독 외도로 데리고 들어온 큰 딸과 망내 아들에게 취중이면 폭력을 휘두르곤 했다. 망내 아들은 큰 딸과는 배다른 형제지만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날이면 큰딸은 집 밖에서 쪼그리고 앉아 자신과 똑같이 매맞은 자국이 선명한 동생의 몸을 품고 달랜다. 그러니 자라면서 늘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외상으로 인해 큰 딸의 마음은 늘 불안에 떨고 있었을 것이며 때문에 한 주체로서 당당한 목소리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그러다보니 화가 났을 때 조차 그녀는 화를 자초한 대상이 아닌 자신의 몸을 상처내면서 자신의 화를 분출한다. 예를 들면 준비가 다 된 주문된 꽃바구니를 주문자가 취소를 하는 경우 큰딸은 경우를 따져 상대와 맞붙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취소된 꽃바구니는 다른 주문자에게 팔 수 있다는 거짓말로 주문자의 잘못을 덮는 대신 그 꽃바구니에서 가지 하나를 꺽어내 자신의 몸에 상처와 피를 낸다.  

  자신의 마음에 쌓여있는 고통과 두려움에 스스로 상처를 냄으로써-그녀의 말대로라면 일시적으로 “시원함을 느끼지만”-그것은 치유가 아니라 고통이 가중될 뿐이다. 이런 그녀를 가족들조차 무시한다. 남편(김의성)이라는 작자는 가끔 들러 어렵사리 모은 돈을 빼앗듯 가져가면서도 “주인 얼굴이 개똥같이 썩었는데 꽃을 사러 오겠니?”라는 막말로 그녀를 무시하고 그녀의 불룩 튀어나온 뱃살을 비아냥거리지만 희숙은 그것이 당연한 듯 아무런 저항이나 미움도 보이지 않는다.      


  둘째 딸 미연은 세 자매 중 가장 단란한 가정과 고상함을 겸비하고 돈독한 신앙심까지 갖춘 완전한 여성으로 보인다.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이고 성가대가 끝날 무렵이면 간식을 사가지고 오는 자상한 교수 남편과 두 아이와 고급스런 아파트에서 윤택하게 살고 있다. 성격조차도 우아해서 떼쓰듯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는 동생 미옥에게도 절대 목청을 높이는 일이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시선이 없는 집안에서 그녀는 아이들에게는 독단적이고 때로 신경질인 완력을 행사하는 무서운 엄마이자 남편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아내이다. 그녀의 이중적 성격을 아는 사람은 남편(동욱/조한철)뿐이다.




  망내 미옥은 고등학생 아들(진섭/김성민) 한 명을 둔 식품 도매업자(상준/현봉식)와 결혼해 살고 있다. 글을 쓰는 작가지만 별로 신통치는 않아 보인다. 늘상 스낵 과자를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남편의 만류에도 몰래 숨겨둔 소주를 매일 마신다. 취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멀쩡한 정신에도 주위 사람들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며 모든 것이 자기 맘대로 안하무인인 다혈질적 여성이다. 그렇게 좌충우돌이지만 그녀의 근본은 순수하다. 남들은 그녀가 이미 성장한 아들까지 둔 나이든 도매업자에게 돈 때문에 결혼 한 것이라고 수근대지만 그녀는 정작 그가 착해서 결혼한 것이라고 말한다. 막무가내인 그녀의 성격을 다 받아주고 그녀가 저지르곤 하는 취중 뒤치다꺼리 등을 말없이 처리해주는 남편은 그녀의 말을 여실히 증명한다. 또한 새 엄마를 핸드폰에 ‘돌 아이’(또라이)라고  저장할 정도로 새엄마를 무시하는 남편의 아들을 미워하기보다 그 아이의 마음에 어떻게 엄마의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그녀다.

  그런 미옥이 의지하는 것은 둘째 언니인 미연이다. 미옥은 유독 어린 시절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는 습관이 있다. “기억이 안 나서 짜증이 나”, 기억을 못하니 “나 병신인가” “난 쓰레기야”라는 말로 자기 비하를 일삼는 미옥은 유난히 파편화 되고 흑백처럼 흐릿한 이미지로만 남은 어린 시절의 기억 찾기에 집착한다.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면 미옥은 시도 때도 없이 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어릴 적 “식당 이름과 아이스크림을 사먹은 곳, 미연과 추운 겨울에 왜 뛰었는지”등을 물어댄다. 과거를 기억하고 싶지 않은 희숙이나 미연과는 달리 과거를 묻는 미옥은 순수한 만큼 과거를 잊기보다 그저 궁금하기만 한 짜맞춰지지 않는 기억의 퍼즐들을 맞춰보고 싶어한다.    

 

  영화의 종반부에 밝혀지지만, 추위에 달리던 기억은 비록 배다른 언니이긴 하지만 매맞는 희숙과 동생 진섭이 안스러워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제대로 밤길을 달렸던 것이다. 그러나 가게에서 막걸리 잔을 걸치고 있었던 동네의 어른들은 아버지의 취중 주사를 비난하면서도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돌아가서 아버지에게 빌면서 동정을 구하라고 하며 아이들의 애타는 도움 요청을 묵살한다. 도움받기에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보이는 것은 매맞은 몸으로 집 밖에서 오그리고 있는 언니와 동생이다. 배타적, 이기적, 게으른 어른들에 향한 분노가 미옥의 성격을 더욱 호전적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반면 어리지만 생각이 있었던 미연은 희숙과 진섭을 돕지 못했던 자신의 무력감과 미안함을 늘 마음에 가지고 있었다. 그로인해 미연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마음에 품고는 있지만 현재의 안정된 삶을 흔들고 싶지도 않고 그야말로 흑역사인 과거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 미옥의 끈질긴 질문에도 미연은 대답 대신에 술에 취한 미옥을 달래고 너를 위해 “언니가 기도하는거 알지?”라고 하며 대답을 회피한다.  

   

가족에게 대물림 되는 과거의 흔적들     


자기주장도 없고 자기 존재에 대한 주체적 당당함일랑 아예 없는 위축된 희숙의 경우, 희숙의  딸(보미/김가희) 또한 결핍이 없을 수 없다. 보미 또한 모성 결핍이 있고 성장 후에도 잠을 잘 때는 우유병을 떠올리게 하는 마요네즈 병을 물고 자거나 엄지 손가락을 물고 잔다. 입고 있는 옷과 화장으로 인해 그로테스크해 보이기까지 하는 딸이 사랑하는 것은 감정이 격해지면 벽에 이마를 찧고 피를 내는 극단형의 언더그라운드의 로커인데 어느 날 엄마는 그를 찾아가서 “당신이 착한 사람인 것을 알지만 우리 딸은 좀 더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다”며 무릎을 꿇고 간청을 한다. 자신도 자해를 통해 마음속의 화를 분출했듯이 자신을 닮은 이 로커가 얼마나 불안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인가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희숙이다.      


  다시 영화의 도입부로 돌아가 보자. 첫 장면에서 희숙이 병원문을 열고 들어간 이유는 그녀가 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알리 없는 딸도 엄마에게 함부로 대한다. 엄마를 대놓고 무시하는가 하면 화가 난다고 엄마 얼굴에 물을 뿌리기도 한다. 보미의 과격한 반항적 태도는 불안정한 가족과 늘 위축되어 있는 엄마를 보며 자란 시간의 결과물이다. 로커를 자신의 곁에서 떼어내려 했던 엄마를 떠나려는 딸을 붙잡고 희숙은 그제서야  자신이 암에 걸렸으며 무섭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희숙은 딸에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엄마를 안 싫어할까”를 묻는다.  아버지로부터 학대받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 남편에게 이용당하고 멸시받고 있는 현재의 삶으로 인해 스스로를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모자라는 사람이라고 못박은 모습이 애처롭다. 그래서 그녀는 늘 남에게 몸조차 오그리며 “죄송하다”,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산다. 

    

  누가 보기에도 고상하고 완벽하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연은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심지어 어린 딸 하은이가 식사 기도를 힘들어하자 하은이에게 “사탄이 들었어” “지옥 갈거야”리거 하며 공포심을 주고 우는 딸을 작은 방에 가두기도 한다. 신에게는 순종하며 밖으로는 우아함을 꾸미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말을 통한 소통보다 몸으로 자신의 방식을 따를 것을 강요하는 이중적 여성이다.


  그녀의 내면에 감춰진 차가움과 폭력성은 남편과 비밀스런 관계를 가졌던 교회 성가대원(효정/임혜영)에게 한 은밀한 복수의 방식에서도 볼 수 있다. 어느 날 미연과 여성 성가대는 일박을 하는 기도회에 간다. 모두 잠을 자는데 살며시 일어난 미연은  효정으로 하여금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쓰라고 조용히 명령하고는 발로 효정의  얼굴을 지그시 짓누른다. 그런데도 미연은 다음날 다른 사람들이 효정이를 걱정하자 아마 효정이가 아픈가보다 하면서 걱정하는 척한다. 그때 나타난 효정의 얼굴에는 미연이 밟았던 폭력의 흔적이 붉고 퍼렇게 남아있다. 그런 그녀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남편이 이혼을 원하자 이혼을 쾌히 받아들이들이는 것 같지만 살던 아파트와 아이들 그리고 모든 경제권을 남편으로부터 빼앗고 그의 귀에 대고 소곤거리듯 저열한 욕을 하며 떠나는 그녀의 조용한 차가움은 아버지의 폭력성을 닮아버린 모습이다.    

 

  망내 미옥은 천방지축인 것 같지만 남편의 아들에게 새 엄마 노릇을 잘하고 싶은 애틋한 마음이 숨어있다. 아버지의 바람기, 폭력으로 인해 자신의 어머니도 제대로 딸들에게 엄마 노릇을 못했을 것이니 그런 가정에서 아이들이 정상적인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랐을리 없다. 제대로 엄마 노릇을 해보고 싶지만 자라면서 제대로 된 엄마의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좌충우돌이다. 언니 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진짜 엄마가 뭐하는지 모르겠어” “엄마가 뭐해야 되는지 가르쳐 달라”고 할 만큼 그녀가 엄마가 되고 싶어하는 마음은 간절하다.  

  그러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간절함은 마음과는 다르게 반사적 행패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들 학교 상담에 자기 대신에 남편의 전처가 대신 간 것을 알고 학교로 쫓아가 선생님들에게 나도 엄마로서 잘 하고 싶으니 아이의 상담을 하게 해달라며 취중 행패를 부린다. 이렇듯 자기의 마음을 말로 전달하는 것보다 몸으로 전달하는 것이 습관이 된 미옥의 모습도 과거 취중이면 폭력적이 되었던 아버지 모습의 일부이다.  

 마음과는 달리 자꾸 미끄러지는 엄마 자리 찾기는 미옥이 아들 편을 드는 방식도 폭력이 먼저다. 미옥은 새 엄마를 ‘돌 아이’라고 이름 지은 것을 알고 아들을 때리는 남편을 오히려 마구잡이로 두드려 팬다. 이것이 아들을 위하는 미옥의 방식이다. 그렇지만 그런 소동 이후 처음으로 아들과 남편을 위해 밥상을 차릴 만큼 그녀의 본래 심성은 선하다. 내심 맛없는 음식을 억지로 맛있다고 하는 남편과 아들에게 앞으로 저녁은 온 가족이 함께 먹을거라는 규칙을 세우고 엄포를 놓는 그녀의 모습은 귀엽기 조차하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미옥이 나아질 수 있을거라는 희망은 미옥이 자신의 표현 방식이 어떻게 틀리는가를 깨닫게 되고 더 나은 방법을 묻고 대답을 찾는 간절한 마음에서 보인다.    

 

시간을 되돌리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아버지의 생일을 맞아 모두 고향 식당에 모였을 때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버지가 목사를 모시고 모두 식사를 즐기려는 찰나 아버지가 학대했던 망내 아들 진섭이 나타나 아버지와 식탁에 그야말로 오줌을 갈기는 순간이다. 졸지에 생일 축하 자리는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둘째 딸 미연은 동생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버지에게 “우리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라”고 고함을 친다. 그러면서 말한다. ‘어릴 적 기도하기를 내일 아침에 자고 나면 아버지 빼고 우리 모두 죽어있게 해달라고. 죽은 우리 모두는 천국 가서 행복하게 해달라"고 했다고. 그 순간 아버지는 식당 유리벽에 이마를 찧고 피를 흘린다. 아버지의 자해로 인해 식당의 소란은 일순 멈추게 된다. 그렇지만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었던 딸의 폭발에도 끝내 아버지의 사과는 없었으니 아버지의 자해는 자신의 당황스러움과  자책감을 견딜수  없었던 자괴감의 표출이 아니었을지...이때도 아버지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은 엄마다.    


  그 와중에 분위기를 무마시키려는 큰딸 희숙이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친다. 아버지의 학대로 주체로서의 존재감이 없었던 희숙의 마음에 맺었던 화는 엉망이 된 아버지의 생일상에서 꾸역꾸역 음식을 입으로 집어넣으며 ’밥 좀 먹자‘고 악을 쓰던 순간 터져 나온다. 그 고함은 자신의 마음에 꽁꽁 숨겨 놓았던 화를 그 화의 근원인 아버지에게 내쏟았던 목소리였을 것이다. 이런 혼란의 와중에 희숙의 딸 보미가 소리 친다. ”왜 어른들이 사과를 못하느냐”고. “평생 병신처럼 살다가 이제 우리 엄마 암 걸려서 죽게 생겼다고...“. 일순간 소란이 놀라움과 정적으로 바뀌고 미연과 미옥이 염려스럽게 희숙의 곁에 온다.     


  마지막 장면은 세 자매가 바닷가를 찾아와 웃는 모습이다. 모처럼 만에 세 자매 모두가 행복하고 자유로워 보인다. 이때 미연이 말한다. ”아버지를 닮은 우리라고“. 그때 바닷가에서 희숙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제안한다. 이번에도 희숙은 사진을 찍자고 부탁하는 동생들에게 쭈뼛거리며 ‘미안하다는 말을 또 한다. 동생들과 같이 사진을 찍자는 것도 '미안한' 언니의 부탁으로 세 자매는 바닷가에서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우린 앞으로 더 많이 찍을 거잖아"하는 미옥의 말은 앞으로는 서로 도와 희숙이 암을 이겨내도록 할 것이며 보다 밝은 삶을 함께 살아가리라는 희망의 표현인 것이다. 상처의 치유는 상처를 주었던 아버지의 참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상처를 안고 있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상처를 회복하는 것은 과거의 부정이나 망각이 아니라 상처와 결핍을 서로 보듬어주고 희망을 심는 다가오는 시간들에 담겨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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