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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Dec 22. 2021

내 안의 나, 몬스터 부르기

영화 <몬스터 콜> 리뷰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예정된 죽음 앞에서 어떤 마음과 어떤 모습일까? 더구나 이제 12살 어린 소년이라면... <몬스터 콜>은 다가올 엄마의 죽음 옆에서 힘든 마음을 애써 견디고 있지만 어디에도 기댈 곳 없이 지내는 외로운 12살 소년의 이야기이자 성장담이다.     


 

이야기의 힘

 아픈 엄마 때문에 집안일, 등교 준비는 혼자 알아서 할만큼 어른스럽지만 엄마(펠리시티 존스) 없이 홀로서기에는 턱없이 어린 코너(루이스 맥더겔)이다. 그러니 응석받이는 커녕 깊게 갈라진 절벽에 매달려 떨어지려는 엄마를 안간힘을 다해 붙들고 있다가 놓치고 마는 악몽에 시달리는 코너. 살짝 열린 병원의 문 사이로 언뜻 보았던 뼈만 앙상하게 남은 엄마의 등. 무섭도록 가혹한 꿈에선 엄마의 번번이 손을 놓치고 마는 악몽을 반복한다. 게다가 할머니와는 사사건건 갈등의 연속이고 이혼한 아빠(토니 켑벨)는 현실을 알아야 한단다. 학교에서마저 친구들의 폭력에 시달리는 코너가 설 자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어른이기에는 어린’ 코너가 맞닥뜨린 현실에서 코너가 자기 안에 쌓인 고통을 표현하는 것은 힘들다는 말이 아니라 폭력이다. 화가 나서 할머니 집의 가구를 부수고 자기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친구가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두드려 패서 문제아 낙인이 찍힐 뿐이다.   

  

  그런데 어느날 밤, 굉음과 함께 땅이 꺼지고 교회가 부서지고 주목나무를 둘러싼 묘지의 땅이 쩍쩍 갈라지는 악몽속에서 주목나무는 몬스터(목소리: 리암 니슨)로 변하여 소년의 방을 찾는다. 그리고 몬스터는 소년에게 앞으로 세 가지 이야기를 해 주는 대신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는 코너가 스스로 말해야 한다는 규칙을 말한다.

     

 

  <몬스터 콜>에서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숨겨놓은 죄책감에 짓눌려있는 코너를 구하는 것은 이야기이다. 인간의 삶은 결국 이야기의 연속이고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힘이 외롭고 힘든 코너를 치유한다. 특히 그림과 함께 들려주는 동화는 아직은 아이인 코너의 마음을 서서히 열게 한다.     


  파괴적이기도 하지만 따뜻하기도 한 몬스터는 코너의 분신과도 같다. 몬스터가 둘려 준 첫 번째 이야기와 두 번째 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 내용이 진행되어서 동화적 상상력을 더해준다. 마녀로부터 왕위를 빼앗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죽인 살인자이지만 나라를 잘 다스려 백성들로부터 사랑받은 왕이 되었다는 첫 번째 이야기는 인간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다. “항상 좋은 사람도 없고 항상 나쁜 사람도 없고 대부분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몬스터의 말은 코너가 마음속에 숨긴 죄책감을 이완시킨다. 비록 착한 생각이 아니라도 그건 코너의 잘못이 아니라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는 코너가 당연히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니 괜찮다는 위로가 담겨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딸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신의 믿음을 버린 목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고집쟁이 약제사에게  딸들을 고칠 약을 얻기 위해 믿음을 버린 목사를 비난할 수 있을까를 질문하게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코너는 목사에게 화가 나서 목사관을 부숴뜨린다. 그러나 알고 보면 딸들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치료약에 매달렸던 목사는 바로 코너 자신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경련이 일 때마다 정신없이 약을 찾아 엄마에게 주었던 코너나 할머니는 둘 다 엄마가 죽지 않을 거라는 거짓 믿음으로 겨우 슬픔을 버티고 있는 목사나 다름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면 누군들 뭐라도 해서 그 상실을 지연시키고 싶지 않을까? 

    

 세 번째 이야기는 투명인간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친구들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는 외톨이 코너가 등장함으로써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된다. 같은 반 아이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인간 취급을 받게 되는 코너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무시당하자 역으로 그 아이를 두드려 패게 된다. 자신의 마음속에 숨겨진 자책감 때문에 오히려 아이들에게 맞기를 택하는 자학적인 코너가 자신을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처럼 무시하는 아이들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몬스터가 세 가지 얘기를 마치자 소년이 네 번째 이야기를 할 차례다.  이야기하기를 주저하는 코너에게 몬스터는 "이제 너의 진실을 이야기 해보라"고 한다. 소년은 마지못해 자신을 옥죄었던 진실을 이야기 한다. “엄마를 지켜보는게 고통스러워 이 상황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노라고. 차라리 엄마가 빨리 죽기는 바랬다는 소년의 숨겨진 죄책감 때문에 소년은 밤마다 무너진 절벽에서 엄마의 손을 놓친 것이 아니라 놓아버렸던 악몽을 꾼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자신의 나쁜 마음을 고백한 코너의 용기를 몬스터는 칭찬한다.


내  안에 함께하는  몬스터와 천사

  그렇다면 아픈 엄마가 그만 떠나기를 바라는 코너의 마음이 정말 나쁜 것일까? 그것이 나쁜 마음이라고 재단한 것은 코너가 스스로에게 마음에 낸 상처이다. 몬스터의 이야기처럼 “인간은 복합적 짐승”(humans are complicated beasts.)이니 마음 한곳에 나쁜 마음을 숨기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럼 누가 착한 사람이야?”라고 묻는 코너의 질문에 몬스터는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중간이지“라고. 그리고 몬스터는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코너를 위로한다. 엄마가 떠나기 전 엄마에게 아직 하지 못했던 코너의 진심을 이야기할 시간이 다가 온 것이다. 

    

  마침내 소년은 죽음이 다가온 엄마의 품에 안기며 “엄마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we want be together)라고 말하며 엄마가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엄마의 손을 놓지 않는다. 그토록 서로 어긋나던 할머니(시고니 위버)였지만 마지막 순간 엄마의 손을 놓지 않았던 코너와 할머니는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어갈 희망이 보인다. 할머니의 말처럼 “너와 나는 별로 잘 맞지 않지만 네 엄마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코너와 할머니의 갈등은 증조할머니가 아끼던 커다란 벽시계에 대한 할머니의 애착에서도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코너가 그토록 도망하고 싶었던 과거 그리고 현재의 시간을 할머니는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에 대한 코너의 과격한 반항은 시계와 오래 된 장식품들로 꾸며진 할머니 집의 거실을 때려 부수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그럼 이제 엄마가 떠났으니 시계가 사라진 할머니의 집에서 코너의 미래는 새롭게 시작될 수 있을까?  




치유는 진행형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가 그토록 궁금했던 이층방의 열쇠를 코너에게 준다. 이제 코너의 방이 될 그 방에는 엄마가 태어나서 성장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어린 엄마의 키를 재었던 벽 모서리의 눈금들, 아기의 모습부터 성장한 엄마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 그리고 책상에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으로 자라면서 그린 그림이 있는 엄마의 스케치북이 놓여 있었다. 얼굴이 그려진 귀여운 소녀로부터 시작한 스케치북은 엄마가 성장하면서 점점 추상적이되고 주목나무 몬스터위에 얼굴없는 소녀가 앉아 있는 그림으로 끝난다. 코너의 꿈은 엄마가 어린 코너에게 해주던 이야기들이었던 것이다. 너무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어서 코너도 몰랐던 엄마의 유산인 이야기들이 코너를 어둠으로부터 끌어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엄마의 스케치북을 조용히 덮는 코너가 뭔가 깨달은 듯 눈가가 그렁해진다. 얼굴이 있는 소녀(엄마 자신)로 첫 장을 시작했던 스케치북의 마지막 장은 몬스터의 어깨에 올라앉은 얼굴 없는 소녀이다. 이제 코너가 그 자리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을 차례이다. 이야기는 이어질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비워질 코너의 얼굴에 코너의 아이 얼굴이 그려지겠지. 이야기는 그렇게 상상과 현실, 과거와 미래를 이어가는 고리이며 떠나는 이는 뒤를 이어오는 아이가 스스로 이야기할 공백을 남긴다. 그래서 이야기는 물리적 죽음과 시간을 뛰어넘어 할머니의 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엄마와 코너로 이어지는 삶의 흔적들을 이어간다. 1천1일 동안 밤마다 이야기를 말해서 목숨을 구했던 세헤라자데는 이야기하는 한 누구도 죽지 않는다는 신비를 풀어낸 엄청난 이야기꾼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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