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 해외에서 차를 렌트 한 적이 있다. 짧은 영어와 혼신을 다한 몸짓으로 차를 인수받기는 했지만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켜자 한숨만 나왔다. 어찌나 핸들을 꽉 잡았던지 손 끝이 하얬다. 표지판을 다 읽기도 전에 지나쳐 버렸고 네비게이션에선 매끄러운 여자 목소리가 들리지만 귀기우려 들어도 알아듣기 힘들었다. 영어듣기평가를 다시 치는 듯했다. 입이 마르고 식은 땀이 났다. 상세한 설명과 함께 우리말로 조곤조곤 알려주던 t-map이 간절했다. 심지어 최단경로, 고속도로 우선 경로 같은 다양한 옵션까지 알려주지 않았던가!
진료실에서 처음 온 환자와 마주 앉았다. 흔들리는 눈동자, 꼼지락거리는 손, 이마에 맺힌 땀방울까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암의 진단은 매우 충격적이지만 이후 만나는 치료의 여정 또한 만만치 않다. 어쩌면 암환자에게 치료과정은 해외에서 렌터카를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겠다. 의학용어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고 복잡한 검사 및 치료 과정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딱딱한 표정으로 모니터만 바라보는 의사에게 다시 질문하기는 쉽지 않다. 계획대로 치료를 받고 있는지, 여기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오리무중이다. 우리나라에 있지만 병원안은 다른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