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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 courage Oct 21. 2023

군밤의 계절

밤 공기가 쌀쌀해서 옷깃을 여몄다. 드디어 군밤의 계절이 온 것이다. 


날씨가 쌀쌀해질 무렵에는 아버지 퇴근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저녁 8시 좀 넘어서 퇴근하셨는데 시계바늘이 8시를 가리킬 때부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불이 나캐 현관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매일 퇴근할 때마다 병원 근처 시장에 들러 군밤할머니가 연탄불에 구운 군밤을 한봉지 가득 사서는 찬바람에 식을까봐 코트 안에 넣어서 안고 오셨다. 불룩한 코트가 눈에 보이는데도 "아빠, 군밤은?" 하면 "어떻하지? 오늘은 깜빡했네." 하며 미안한 표정을 짓다가 "짜잔!"하고 코트 안에서 군밤봉지를 꺼내셨다. 그래서인가 밤공기가 차가워지는 계절이 다가오면 항상 군밤 생각이 난다. 


어릴 적엔 밤을 구워 파는 할머니가 시장마다 꼭 계셨는데 점점 사라져서 역앞에 가야지 만날 수 있다가 요즘은 그마저도 모두 사라져버렸고 대신 손가락만 몇번 움직이면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도록 칼집까지 넣은 밤이 집 앞까지 배달된다. 에어프라이어에 15분만 돌리면 노릇노릇 잘 구어진 밤이 한접시 가득이다. 


어릴 적 군밤을 먹을 때면 검둥재가 묻어 손은 까매지고 껍질조각에 손톱 밑이 찔리곤 했다. 열심히 까보아도 결국 잘 벗겨지지 않아 속껍질이 군데군데 붙은 밤을 입 안에 넣고 씹다보면 부드러운 속살 속을 거친 속껍질이 헤엄쳐 돌아다녔다. 이제는 손만 데면 껍질이 쉽게 벗겨져 오직 보드라운 속살만 입 안에 가득하다. 


에프에 구운 알밤을 먹으며 아버지가 매일 밤 품안에 넣고 오시던 그 군밤을 기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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