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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 courage Jul 05. 2023

젊은 의사 예찬

'젊은 의사'라 해도 진짜 젊은 나이는 아니다.


제대로 의사 노릇을 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의과대학 6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펠로우(전임의) 2년에 군복무를 하게 되면 3년 추가된다. 쉼없이 13-16년은 달려야 한다. 제때 입학했더라도 30대 중반은 되어야 수련이 끝나는 것이다. 재수나 삼수를 해 입학이 늦어졌거나 대학에서 낙제를 하거나(의과대학의 경우 낙제하는 경우가 제법있다) 의사면허시험이나 전문의자격시험에 떨어진 경우에는 더 오래 걸리게 되어 40이 넘어야 비로서 진정한 의사가 된다.


다른 사회에선 이미 경력이 쌓인 인재가 될 무렵, 의사는 그제서야 '젊은 의사'가 되어 자신의 길을 가기 시작하다.


모든 의사는 '젊은 의사'인 적이 있다. 

처음 자신의 이름으로 환자를 진료하게 되었을 때를 잊지 못할 것이다. 드디어 제대로 된 의사가 되었다는 뿌듯함과 오랜 수련으로 쌓은 풍부한 지식(곧 가소롭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직 젊은 몸의 에너지로 무장하여 뭐든 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곧 막중한 책임감으로 작은 일에도 결정장애를 얻게 되고 아는 것이 없음에 절망하게 되고 경험의 부족을 사무치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열정만은 차고 넘치어 펄펄 끓고 있다


암환자의 진료에는 많은 부서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다. 오로지 담당의와 환자 만의 일이 아니다. 

CT 촬영을 하더라도 처방을 내면 간호부가 영상의학과 직원과 예약을 잡아야 하고 조영제 넣기 위한 정맥라인은 간호사가 잡는다. CT 촬영은 영상기사가 하고 판독은 영상의학과 의사가 한다. 

내시경을 하게 되면 소화기내과 의사가 하게 되고 필요시 조직을 채취한다. 그 조직의 처리는 임상병리사가 하고 판독하는 것은 병리과 의사이다. 

수술이 필요할 땐 외과와 상의해야 하며 심장이 안 좋거나 당뇨가 있거나 콩팥이 나쁘면 심장내과, 내분비내과, 신장내과와 상의가 필요하다. 

항암치료를 하게 되면 더 복잡해진다. 약제의 보험여부에 대해 심사팀과도 상의가 필요하며 임상연구에 등록 가능할지도 상의가 필요하다. 각종 합병증 발생시 타과 혹은 타부서와의 상의는 필수적이다. 


이렇듯 거미줄 같이 복잡한 관계 속에서 종양내과 의사는 조절자(modulator)로서의 역할을 해야한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설득하고 부탁하며 때로는 싸우기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이지만 매우 지치는 역할이기도 하다. 


'젊은 의사'시절엔 참 많이도 부탁하고, 빌어도 보고 화도 내고 엄청나게 싸웠다. 사실 그렇게 해보아도 결과가 달라질 경우는 100번 중 한번, 아니 200번 중 한번이다. 이 한번을 위해 '젊은 의사'는 파이터가 되어 인간관계는 파탄나고 피와 살을 깎아가며 일해 몸은 망가진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걸레짝이지만0.005를 위해 기꺼이 불사지른다. 


시간이 지나면 더이상 그렇게 살 수 없게 된다. 싸우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며 더이상 살을 깎는 일은 하지 않게 된다. 그때엔 이미 '젊은 의사'가 아니다.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가 너무 애송이 같은가? 경험이 없어보여 걱정인가?

연륜있는 의사에게 가봐야 하는지 걱정되는가?


'젊은 의사'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열정이 있다.

당신이 모르는 곳에서 그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사정하고 있을 것이다. 불같이 화를 내며 싸우고 있을 것이다. 


오직 당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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