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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 courage Oct 26. 2023

품위에 대한 존경

어제 외래로 D가 왔다. 예약된 진료가 아니라 당일 접수를 했기에 상태가 안 좋아졌나 걱정이 앞섰다.

D는 전립선암 다발성 전이 환자로 수차례 수술과 방사선치료, 항암치료를 받으며 버텨 왔지만 최근에는 병이 많이 진행되었다. 1-2달 전 D는 보호자 없이 나와 둘이서만 면담을 원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더이상 치료는 하고 싶지 않아요. 너무 지쳤고 쉬고 싶습니다. 다만 마지막에 힘들까봐 무섭고 걱정되긴 합니다." 
평소에 늘 의연하고 말수가 적었던 D가 이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마음이 아팠다.
"D님 생각을 잘 알겠습니다. 마지막에 고통스러우면 제가 덜 힘들게 도와드릴거에요. 걱정마세요."

외래로 온 D는 몇일 전부터 제대로 걸을 수가 없고 음식도 못먹고 계속 잠만 잤다고 했다. 잠깐씩 깨어날 때도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해서 D의 아내는 많이 놀란 상태였다.
외래진료 중에도 D는 의식이 뚜렷하지 않았는데 눈을 감고 있어 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혈액 검사상 신장수치가 심하게 나빠져 요관 패쇄가 의심되었고 당장 양쪽 요관에 관을 삽입해야 될 상태였다. 하지만 관을 꽂아도 회복될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뿐만아니라 뇌전이 병변의 진행으로 인한 신경학적 증상도 발생한 상태였기에 상황은 참담했다.

"D님, 입원해서 관을 꽂아야 할 것 같아요." 하자 D가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곤 아내에게 "당신은 좀 나가 있어."라고 하고는 천천히 그렇지만 또렷하게 나에게 얘기했다.
"전 그거 안 할거에요. 제가 요즘 정신이 없어요. 생각도 제대로 할 수 가 없고요. 지금 얘기 할께요. 난 그거 안하고 싶어요."
"알겠어요. D님. 그래도 입원은 합시다. 너무 힘드시니까요."
"네, 내일 입원할께요. 안 힘들게 해주세요."
D의 아내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자녀들과도 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D는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어제 밤 10시부터 경기를 해서 응급실로 왔다. 뇌전이로 인한 뇌압 상승때문에 경련이 반복되고 의식도 없었다. 30-40분 간격으로 2-3분씩 경기를 했는데 할때마다 고통으로 얼굴을 찌푸려졌고 숨쉬기도 어려워했다.

이제 내가 D와의 약속을 지킬 때이다.
D의 아내와 자녀들에게 얘기드렸다.
"편안하게 해드리기로 약속드렸어요. 경기 멈추도록 진정제를 쓰면 더 빨리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 드리는게 좋겠어요."

암덩어리가 뇌를 파고 들어 의식도 희미해지는 가운데서도 의연하게 마지막을 맞은 D은 진정 품위있는 분이다.


마음 속 깊은 존경을 담고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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