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 후 친한 동료들과 커피타임을 가졌다. 요 몇일 바빠서 얼굴도 못보다가 몇일 만에 만난 자리여서 무척 반가웠지만 한편으로 좀 피하고 싶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동료 B의 말이 거슬리기 시작했고 가끔은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B는 실력있는 의사이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으며 소신이 뚜렷하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경우, 비판과 비난을 숨기지 않았다. 예민한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 하며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으며 각자의 배경과 사정이 있음을 받아드리지 않고 자신만의 잣대로 다른 이를 평가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점심시간이 불편해졌고 핑계를 대며 모임에 빠지곤 했는데 갑자기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나이 40이 넘어 아이들처럼 '그만 놀아'하는 것도 우습고 내마음만 넓어지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독여 커피타임에 참가했다.
모두들 B를 자극할 민감한 주제를 잘 피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한 동료가 어머니 핸드폰을 바꿔드려야 하는데 Z플립을 사드릴지, 보급형 A시리즈를 사드릴지 고민이라는 얘기를 꺼내며 ‘엄마가 접는 폰이 좋더라’ 하는게 아무래도 Z플립을 갖고 싶으신 것 같다며 웃음 지었다.
작년 아버지 핸드폰 바꿔드린 일이 생각나 "어른들 사드리는 거면 좋은 거 사드리는게 좋지 않아? 나는 제일 좋은 거 사드리는 편이야."라고 했는데 B가 바로 "그게 가장 돈 낭비야. 기능 사용도 못하는데 좋은 게 왜 필요해? 오히려 많이 사용하는 젊은 사람이 최신형을 써야지"라고 받아 쳤다. 별일 아닌 일에 기분이 상해버렸다.
부모님 좋은 폰 사드리는 게 왜 낭비일까? 우리라고 해서 탑재된 기능을 다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만에 하나 어른들이 그저 좋은 것을 갖고 싶어하셔서 사드린다고 해도 그게 낭비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누구나 어떤 부분에선 허영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좋은 차에 집착하는 사람도, 명품 옷이나 가방이 중요한 사람도, 최신 아이폰이나 에어팟, 맥북에 목을 매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작년 우리 아버지 핸드폰을 바꿔드렸다. 5년 가까이 사용하던 핸드폰에 이상이 생겨 더이상 사용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당시 최신형 폰으로 바꿔드리자 쑥쓰럽게 웃으며 좋아하셨고 가족 모임에서 고모들에게 우리 딸이 사줬다며 자랑하는 모습을 보고 혼자 웃었었다.
우리 아버님은 은퇴 후 친구들과 종종 골프를 치는데 최신 스마트 워치 골프 에디션을 사드리자 아이처럼 좋아하셨고 자랑도 많이 하셨다. 두 분 모두 최신 기계의 기능을 다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이 선물이 낭비같이 여겨지진 않는다.
나는 수년째 중고 핸드폰을 사용했다. 친한 친구가 중고 핸드폰 사업을 하고 있어 싸고 기능 좋은 폰을 추천해 주기 때문에 사용하는 데 문제도 없었다. 그 대신 나는 부모님들께 제일 좋은 폰을 사드렸고 앞으로도 제일 좋은 것을 드리고 싶다.
별일 아닌 일로 속상한 내가 문제일까? 당분간 거리를 두고 마음을 다잡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