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ner courage Nov 11. 2023

일출

새벽 3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기계적으로 휴대폰을 쥐었지만 정신이 없어 떨어뜨렸다가 겨우 받았다. M이 토혈과 혈변후 쓰러졌다는 신참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횡설수설하는 노티에 신경이 곤두서  날카롭게 되물었다. "그래서 바이탈은요? 지금 멘탈은 괜찮나요? 멜레나(혈변), 헤마테메시스(토혈) 양은요?"

상황이 좋지 않아 급하게 오더를 하고 손에 잡히는 아무 옷이나 껴입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엉망징창인 머리를 보고 연신 머리를 쓸어내리다 포기하고 병원으로 갔다.

출혈은 계속되고 있었고 승압제로 혈압은 겨우 유지되고 있었다.
M은 전이성 대장암 환자로 십이지장 바로옆 림프절에 전이가 되었고 점점 커져 십이지장을 침투한 상태였다. 치료후 림프절 크기는 줄었으나 너무 빠르게 확연히 줄어들면서 십이지장과 림프절 사이에 구멍이 뚫려 연결되어 버렸다.

이곳에서 출혈이 생겼을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위치상 내시경적 지혈술도 수술도 어려워 보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화기내과와 외과에 문의했지만 예상했던 답을 들었고 아무래도 혈관을 막아 지혈하는 색전술 밖에 방법이 없을 듯 했다.

영상의학과에 문의하자 색전술을 해볼 수는 있으나 큰 혈관을 다 막아야할 것같아 잘 지혈 된다해도 50프로 이상에서 간부전이 올 수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출혈은 계속되었고 색전술 시술 준비까지 M이 버텨 줄 지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M은 남편이 없었고 딸과 아들이 한명씩 있었다. 아직 20대 초반인데도 M의 딸은 항암치료 내내 똑똑하고 씩씩하게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해왔었다. 그 딸이 남동생을 데리고 나한테 뛰어왔다.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렸고 동생 팔을 잡고 있는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앴다.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되나요? 우리엄마는 어떻게 되나요?" 묻는 M의 딸이 너무 애처로왔다. 이 아이들에게 엄마의 연명치료 여부를 묻는 것은 너무 가혹했다.

결국 나는 M과 직접얘기하기로 했다. M는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색전술에 동의하였다. 그리고 힘든 얘기를 꺼냈다. "M님, 많이 힘드실 텐데 지금 이런 얘기드려서 죄송해요. 따님한테 맡기기엔 아직 너무 어려요. 따님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혹시 상황이 안 좋아지면 연명치료는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꽉다문 M의 턱이 떨렸다. "살고 싶어요. 그런데 애들한테 부담되고 싶지 않아요. 연명치료는 안 할께요." M의 옆에서 딸과 아들이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나도 이런 거 하고 싶지않아'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고 세수라도 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새까만 밤이 어느덧 옅어져 있었고 눈 앞에 해가 뜨고 있었다. 붉은 태양이 세상을 끌어안고 나를 어루만졌다.

그래 다시 병원으로 가자. 나의 일을 해야지.


작가의 이전글 이름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