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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er courage Jul 19. 2023

그와 나

오후부터 계속 가슴이 답답하다. 작은 일에 화가 나고 대화에도 집중하기가 어렵다. 오랜만에 우리집을 방문한 어머니께도 살갑게 대하지못했다. 내가 왜 이럴까?

늦은 오후 통화 후 부터다.

급성담낭염으로 패혈증성 쇼크가 와서 사경을 해매다 회복한 E의 진료가 내일이다. 입원당시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은 어려웠고 담낭에 담즙배액관을 넣은 후 회복하여 퇴원한 환자이다. 보통은 담낭절제술을 위해 외과로 보내면 되지만 E는 좀 더 주의가 필요했다.

E는 전이성 대장암 환자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간과 종격동 림프절에 전이가 있어 완치가 어려웠다. 장폐색을 일으킨 대장만 절제하고 항암치료를 하다가 우리병원으로 전원을 왔다. 여러 약제로 수차례 항암을 했지만 더이상 항암에 반응이 없고 병은 더 커졌다. 고령의 몸은 더욱 약해졌고, 남아있는 항암제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매우 고가였다. E와 E의 가족과 상의 후 치료를 좀 쉬어보기로 했다. 좀 더 시간을 벌어보기 위해 커지고 있는 간전이에 고식적 방사선치료도 했다.

2달후 검사 하고 보기로 했던 E가 명절 연휴에 응급실로 실려 온 것이다.

몇번의 고비를 넘기고 회복한 E는 퇴원을 했지만 여전히 배액관을 꽂고 있었다. 관을 빼주고 싶지만 담석이 많아 담낭염이 재발할 가능성이 있었고 수술을 하자니 대장수술과 간전이 방사선으로 인한 유착이 심해 걱정이 되었다. 또한 여러약제에 내성이 생겨 향후 효과적인 항암제가 없어 기대 여명이 길지 않았다. 

환자를 만나기 전 외과와 상의하려고 연락을 했다. 나의 고민을 함께 해주길 바랬으나 그는 다른 곳에 꽂혔다.  

"이해가 되질 않네요. 왜 간 수술할 생각을 안했나요?

"종격동 림프절 전이가 있어서 수술 대상이 아니셨어요." 

"그것도 떼주면 되잖아요? 대장암은 tumor burden(종양의 크기)을 줄여주면 좋은거 아닌가요?"

"아니지요. 그건 표준 치료가 아니에요..."

"간절제도 하고 종격동림프절도 절제하고 주변 림프절도 절제합시다."

"환자분은 많은 항암제에 노출되어서 효과적인 약제가 거의 없어요. 수술적 절제후 금방 다시 전이병변들이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표준치료도 아니고요. 제가 좀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당황해서 얘기도 제대로 못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하나? 과연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암은 전이가 있으면 수술이 무의미하다. 혈액이나 림프를 통해 암세포가 온몸을 돌아다니고 있으므로 이미 전신질환인 것이다.

암이 있는 곳만 떼어내는 국소치료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장직장암은 특별하다. 간이나 폐에만 전이가 있는 경우 전이병변을 남김없이 절제한 경우에는 완치를 바라볼 수 있다. 간전이만 있어 완전절제한 경우에는 항암치료까지 잘 받은 경우 1/3의 환자가 완치가 된다. 매우 경이로운 수치이다. 4기암 환자가 완치가 되다니..이때문에 적극적으로 전이암 절제를 하고 있지만 완전절제가 되지 않은 경우에는 효과가 없고 반드시 항암치료 받는 것을 전제로 하며, 간,폐 이외의 다른 부위전이 절제는 추천되지 않는다

최근에 많은 의사들의 노력으로 다양한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으며 실제 암센터에서도 highly selective patient(극소수의 선택된 환자)에서는 다른 시도도 고려해 보고 있다.

즉, 항암치료에 매우 잘 듣고 국소적인 복막전이나 1-2개의 복강내 림프절전이의 경우에는 절제를 하는 경우가 있다. 여전히 대부분의 환자가 재발을 하지만 소수의 환자는 분명 생존기간이 연장되었다. 

이때문에 무조건 절제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말그대로 highly selective 환자에게 적용되어야할 것이 너무 많은 환자에게 적용되어 완전절제가 되지 못하거나 절제하고 왔는데 바로 재발되는 경우가 많다. 심한 절제로 숨쉬기가 어렵거나 배뇨를 하지 못하는 등 삶의 질은 떨어졌지만 회복과정 중 여러곳에 재발한 경우는 매우 안타깝다. 술후 합병증으로 항암치료를 못받거나 늦어져 재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환자들을 자주 만나고 그들과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종양내과의 입장에선 의미없는 수술로 고통받는 환자를 줄이고 수술이 도움이 되는 환자를 잘 선택하고자 노력하게된다.

전화를 끊은 후 답답한 마음에 우리과 의사들을 만났다.

"어쩌면 좋을까요? 표준치료를 따르지않아요. 너무 답답해요."

"나참, 가이드라인도 모르나보네요. 공부를 안하는건지.. 어설프게 아는게 더 무서워요."

"그런데, 진짜 완전절제 안되더라도 그냥 자를수있는 만큼 자르는게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었어요. 환자를 위해 그렇게 해야한다고요."

"그러니 더 무섭네요."

한바탕 풀어놓고나니 좀 나아진 듯 하다.

맑아진 머리로 다시 생각해본다.

환자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이다. 덜 힘들게 오래 살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

생각해보니 그는 급진적이고 나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것같다. 생명을 다루는데 무엇보다 신중해야겠지만 새로운 시도 없이는 발전도 없다. 

나는 의견의 대립과 다툼에 약하다. 쉽게 상처입고 조리있게 잘 싸우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있음으로 해서 급발진을 막아주고 그가 있음으로 해서 새로운 영역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렇다. 힘들지만 우리 모두 환자에게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속상함과 답답함을 내려놓고 그와 다시 얘기해봐야겠다. 무엇보다 환자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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