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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Jan 26. 2024

고뤠?

#7

골프가 좋은 이유 101가지

일곱 번째 이야기

"고뤠?"


2017년 40대 초였지만 일찌감치 주식투자로 생계를 이어가는 후배 H가 멤버십 골프장에 초대를 했다. 비싼 그린피만큼의 명성은 없었지만 구경할 겸 초대를 승낙했다.


후배가 예전에 모셨던 멤버 P가 호스트였고 나는 그와 초면이었다. 날씨도 좋았고 후배도 예전 상관을 모시는 분위기라 그런지 P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도하며 골프를 만끽하는 것 같았다. 첫 번째 파3, 앞에 있는 해저드 때문에 온 그린에 시간을 많이 쓴 앞팀이 3단 그린 위에서도 퍼팅에 애를 먹었다. 

그린이 비길 기다리며 P가 얼마 전 다녀온 한국 이야기를 풀었다.

"이번에 친구 놈들이랑 쳤는데 그늘집 내기를 했거든. 근데 내가 전날 과음을 한 데다 또 술을 마셔선지 꼴찌를 했는데 이 놈들이 그늘집에서 술을 어찌나 퍼 마셨는지 나중에 계산을 하려 보니까 56만 원인가가 나왔더라고."

꼴찌가 독박을 쓰는 내기 같았다. 어떻게 그늘집에서 라운드를 하며 그런 금액을 쓸 수 있는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질문을 날렸다.

"네? 정말요? 그렇게 먹기가 힘든데... 아무리 그늘짐에서 비싸게 받아도요. 그리고 누가 꼴찌가 되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그렇게 먹어요? 먼저?"

P가 쿨하게 답을 하며 껄껄 웃었다.

"우린 원래 그래요. 이게 자존심 싸움이고 사내대장부끼리 용쟁호투니까... 하하하"


P는 과연 재력이 있는 사람 같았다. 한국에 가지고 있는 회원권이 3개인데 그걸 갈아탈 거라는 둥 묻지도 않았는데 줄줄 자랑을 늘어놓았다.

P는 골프를 치는 스타일도 미국식이 아니었다. 왠지 한국에서 접대 골프를 많이 받았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며 파 5에 도착했다. 2 온을 노리는 홀이라 한참 기다려야 한다며 P가 살짝 기가차다는 투로 말을 시작했다.


"아니 근데 말이야... 이미 18홀이 4개와 9홀짜리 2개나 있는데 18홀 멤버십 골프장 하나를 또 산다며? 안 그래도 너무 낮은 그린피를 받는 바람에 주변 멤버십 골프장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는데 말이야! 이러다 멤버십 골프장들 어디 몇 개나 남아나겠나... 원~!"


"아무리 퍼블릭이지만 멤버십 골프장의 3분의 1도 안 되는 그린피를 받는다는 게 말이 되나? 이렇게 땅값이 비싼 동네에서 그게 말이 돼? 골프장 건설에 들어간 투자금은 또 어떻고! 골프장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멤버십 골프장이라고 땅 파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해도 너무하고 지자체가 왜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건지 몰라."


"박리다매 전략을 써서 지역 골퍼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골퍼에게 갈 텐데 말이야."

"처음엔 좋은 것 같지만 결국 멤버십 골프장의 경영이 어려워질 것이고 그럼 고급스러운 골프를 치고 싶어 하는 골퍼들의 선택권이 사라지게 될 텐데 말이야."

앞팀이 빈 스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린이 비고 이제 투온 공략을 하려는 것 같았다.


"골프가 왜 이렇게 대중들을 위한 골프로만 직진을 하는지 모르겠어. 결과의 평등을 중시하는 게 공산주의인데 이건 뭐 공산주의랑 결탁한 자본주의도 아니고 말이야."


"차라리 기회의 평등을 중시하는 게 사회민주주의를 하던가 말이야. 왜 정부가 프라이빗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기회를 없애려고 안달이냐고~!"


"골프는 태생이 영국이잖아. 물론 양치기가 처음 시작했다는 헛소문도 있지만 어딜 봐도 귀족적이고 고급스러운 사교의 행위이지. 그래서 골프는 명확하게 스포츠라고 부르지도 않는 건데 말이야. 참 답답해~!"


라운드가 끝나고 후배 H에게 말했다.

"나, 이제 저 사람하고 안쳐. 알았지?"

"예형! 형이 그런 말 할 줄 알았어요."

후배 H가 씨익 웃었다.


https://youtu.be/s1V899aJRNM


2년쯤 흐른 어느 화창한 초여름. 후배 H의 전화가 왔다.

"형, 공칠래요?"

"언제"

"내일요."

"어딘데?"

"오버펙이요."

"누구랑?"

"형, 몇 년 전에 쳤던 P 아시죠? 그리고 제 친구 한 명이요."

"P?"

"왜요? 별로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P는 퍼블릭 안 좋아하지 않나?"

잠깐 웃던 H가 말했다.

"아니요~! 재작년에 형이 만났던 P가 아니에요. 요즘은 카운티 골프장 좋다고 난리예요. 그린 스피드도 빠르고 싸다고요."

"고뤠? 그거 신기하네. 그 양반 돈 많잖아"

"돈은 많죠. 근데 아깝다고 그때 그 골프장 멤버십도 올해부턴 안 해요. 몇 번 가지도 않는데 일 년에 3만 불씩 내는 게 아깝다고."

"고뤠? 많이 변했네... P."

"ㅋㅋ 멤버십 골프장에 멤버듀(member due: 매년 회원이 공을 치나 안치나 꼭 내야하는 부담금)는 꼬박꼬박 내야 하는데 요즘 카운티 골프장 싸고 컨디션도 더 좋은데 누가 거기 가서 쳐요. 동반자 구하기가 어려워서 더 그런 것 같더라고요. 아무튼 요즘은 맨날 전화해서 카운티 골프장 부킹한 거 있으면 자기 초대해 달라고 해서 귀찮아요. ㅎㅎ."

"그렇구나. 근데 난 안 갈래."

"아유, 형, 형이 그런 건 아는데...  그래도 가요 형. 갈 사람이 없어. 형밖에... P도 많이 달라졌고, 형 오면 아마 좋아할 거야. 가자~! 형!"



버겐카운티(Bergen County)는 뉴저지(New Jersey)에 있는 대전보다 조금 더 크고 인구는 3분의 2 정도 되는 지자체입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분당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카운티 북쪽은 미국 최고의 부호들이 모여 사는 알파인(Alpine)이라는 동네도 있고 대부분 최고의 학군 즉, 부자 동네이고요. 남쪽은 상대적으로 서민들이 살고 있죠. 당연히 골프장은 북쪽에 더 많습니다. 아, 그리고 버겐 카운티에는 팰리새이즈 파크(Palisades Park)라는 작은 도시가 있는데 인구 2만 명 중에 대략 60% 정도가 한인(한국계)인 곳도 있을 정도로 버겐카운티에는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이곳 버겐카운티에 사는 한인들에게 골프는 생황입니다. 이민이나 지상사 파견을 온 초기에는 교회가 생활을 리드한다면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나면 골프가 핵심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골프 없는 미국 생활은 상상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버겐카운티 골프장을 가면 여기가 한국인가 싶을 정도로 한국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미국 자치 단체에서 워낙 골프를 좋아하는 주민들이 많으니 자꾸 골프장을 삽니다. 프라이빗이나 세미프라이빗(open to public) 골프장이 버겐카운티의 퍼블릭(정부 소유) 골프장이 되면 변신을 합니다. 그린피는 3분의 1 수준으로 낮아지고, 그린은 최고급 프라이빗 보다 더 빠르고 좋아집니다. 지방 정부의 노력으로 버겐카운티에 사는 골퍼들은 부동산 가격이 높기로 유명한 동네에 살지만 부담 없이 골프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평일에도 풀부킹으로 채워지는 카운티 골프장들은 버겐 카운티에 수익을 안겨주는 복덩이들이기도 합니다. 


이런 걸 혹시 윈윈(Win-Win)이라고 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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