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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Feb 04. 2024

세 번째 청첩장

#13

골프가 좋은 이유 101가지 

열세 번째 이야기

세 번째 청첩장


얼마 전 하얗고 이쁜 청첩장을 받았습니다. 살면서 세 번째 받는 청첩장인 것 같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결혼식도 다섯 번이나 갔으려나 싶고 아버지와 여동생의 장례식장을 빼면 장례식 참석도 엇비슷할 것 같습니다. 왜 그런지는 언젠가 따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직장에서의 시간을 빼고 거의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다는 소망을 꺼내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두 사람의 마음속에 예전 내 모습과 지금 내 모습도 보여 가슴이 박하향으로 차오릅니다. 


청첩장 이야기가 나왔으니 얼마 전 있었던 결혼식이 생각납니다.

하객도 없고 친구 두 명 중 한 명이 사회를 다른 한 명이 주례를 맡았던 정말 간소하고 소박한 결혼식이었습니다. 


둘이 각별해진 건 2022년 후반부터였습니다. 해외여행을 가면 항상 같이 다녔지만 간혹 국내에서도 함께 하기 시작했죠. 그때만 해도 서로 그렇게까지 붙어 다니다 결혼까지 할 줄은 몰랐답니다. 그러고 보면 둘을 맺어준 국내 골프장 사장님들에게 큰 절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신랑 골프군은 최소한 2023년 중반에는 그린피 버블이 꺼질 거란 희망이 있었다고 합니다. 설마는 사람을 잡는데 버블은 골프군을 잡아버렸습니다. 버블대신 골프군이 가졌던 상식이나 판단이 무너지며 마음에 상처를 입었지만 터지기 힘든 버블이 없다는 말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합니다.


https://youtu.be/_lut6uSruh4


골프군은 나름 차선책을 찾아 수도권을 탈출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해외로 눈을 돌려 일본 규슈를 친구 자취집 드나들듯 뻔질나게 들락거리더군요. 하지만 집을 너무 오래 비워만 둘 수도 없고... 일본으로 가지 못하는 시간 동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이 깊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때 여행양이 떠올랐고 여행양과 함께 충청은 기본이고 익산, 삼척, 경주, 광주, 울산, 남해, 순천, 거제, 제주등을 둘러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뭐 그렇다고 경기도를 무슨 투명인간처럼 대한 건 아니었고요. 야간에는 틈틈이 경기도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아~ 이런 말은 사실 안 해야 되는데... ㅋ 골프군이 사실 여행양 이전에 사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행양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고 뭐 대단한 비밀도 아니니 말해도 되겠지요? 


여러분도 잘 아시는 스타, 주말양입니다. 주말양과는 엄청 뜨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자주 만났었지요.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주말양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드물어졌습니다. 눈치를 보다 가끔 지방에서 데이트를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주말양과 어떻게든 잘해보려 했었는데... 잘 안된 거죠. 뭐 이젠 완전히 헤어진 것 같고요. 골프군은 가능하면 편한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말양과 헤어지고 절친 경기군과도 소원해진 골프군에게 가장 큰 장애물은 최소 왕복 5시간의 운전이었습니다. 운전을 싫어하지 않는 골프군이지만 차가 막히는 상황을 잘 못 견디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장거리 운전을 하다 보면 틈틈이 차가 막히는 상황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하지만 골프군이 제일 못 견디는 건 어떤 행동을 이끄는 동기와 이유의 부재입니다. 한마디로 골프만 달랑 치고 오는데 왕복 5시간이 걸리는 건 아무리 골프군이라 해도 그런 선택과 판단의 이유를 찾기가 어려운 거죠. 물론 한두 번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매번은 어려웠겠죠.


그런데 옆에 여행양을 태우고 가면 아무리 먼 운전도 가끔 좀 심하게 막혀도 골프군의 마음은 편안해졌다고 합니다. 골프도 치고 근처 경치 좋은 곳이나 명승지도 느껴보고 로컬음식도 맛보고... 골프군 혼자서는 절대 가볼 수 없는 곳을 여행양 덕분에 가보며 골프군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은 것 같았다고 합니다. 


정말 절묘한 타이밍이었습니다. 골프군이 여행양과 결혼을 하게 된 건 코로나로 인한 판데믹 사태와 골프장 사장님들의 뛰어난 경영전략이 맞물린 바로 그 시점에 둘이 서로의 마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통행료와 주유비용을 계산에 넣으면 경기군과의 우정을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정과 사랑이 결투를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이제 골프군은 여행양이 있어 방방곡곡 어디라도 기쁨과 설렘을 안고 찾아갑니다. 가끔은 비용이 더 들어도 말입니다.


아직도 특수한 경우를 빼고 너무 비싼 그린색윗도리에 빨간 피색바지를 입은 녀석들을 보면 살짝 화가 난다고 합니다. 마치 색맹인 소가 투우사의 빨간 천을 보고 씩씩거리듯이요.


주중에도 자유로운 시간과 가벼운 주머니가 여행양과의 결혼식 사회와 주례를 맡았습니다.


두 사람의 행복한 동반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싶습니다. 서로가 함께 하며 쌓아갈 각별한 추억을 미리축하합니다.


아참 두 사람의 결혼에 진짜 도움을 주신 후원자가 계십니다. 

네이버 골프조인동호회에 골프군과 여행양의 감사를 대신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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