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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Feb 09. 2024

홀당 2천 원. 너무 비싼 걸까요?

#18

열여덟 번째 이야기

#18. 홀당 2천 원. 너무 비싼 걸까요?


친구 J와 또 라운드를 갔습니다. 스트릿 스마트한 사람이라 골프장에서도 명쾌하고 즐거운 동반자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두 번째 홀부터 J의 샷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뭐 샷이야 나비효과로도 흔들릴 수 있으니 그런가 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잡히지가 않았고 뭔가 마음에 엉키는 게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다 사람에 대한 배려와 매너가 뛰어난 J가 캐디를 대하는 표정과 말투가 평상시와 다르다는 걸 알아챘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날 그 캐디의 서비스는 좋지 않았습니다. 잘못하다간 그날의 라운드를 망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반이 끝나고 마침 40분이나 기다려야 했고 막걸리를 따랐습니다.

"J, 내가 요즘 골프채 당근 좀 하잖아. 근데 좀 멀면 가는 게 너무 귀찮더라고. 그래서 정말 채가 마음에 들면 커피 쏠 테니 혹시 가져다주실 수 없는지 물어봐. 아니면 아예 만원 드릴 테니 좀 가져다주십사 하기도 하고."


한잔 비우고 작은 종지에 담긴 김치를 한 점 집어 먹었습니다. 막걸리에 뛰어든 김치가 텀벙텀벙 수영을 하더군요. 위벽이 더 싸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직접 가려니 내 인건비가 얼만가 생각이 나는 거야. 근데 왕복 거의 30분 이상을 써야 하는데 운동삼아 걸어가기엔 너무 멀고 차 타고 움직이려니 싸서 하는 당근인데 뭔가 계산이 안 나오는 거야."


J가 쳐다보는데 속으로 그러는 것 같았습니다.

'뭔 소리야?'


"근데 갑자기 골프 생각이 나는 거야. 만약 내가 어떤 이유로 내 골프채를 맡아서 가져다주는 사람을 구한다면 얼마를 줘야 할까?라고 말이야. 와... 근데 정말 구하기 어렵겠더라고. 우선 골프장이 대개는 워낙 인총이 없는 데 있는 데다 거기까지 오는 시간 하며... 엄청 비쌀 거 같은 거야. 그래서 계산을 해 봤지. 캐디피를 15만 원이라고 치면 일인당 4만 원이고 4만 원을 18홀로 나누니까 한 홀당 2천 원 정도가 나오더라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캐디피가 너무 싼 거야."


J는 살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오.. 그런 생각은 전혀 해 보지 않았는데... 새로운 걸!"


워낙 이해가 빠르고 말이나 글에 담긴 메시지를 귀신같이 파악하는 J라 한 마디만 덧붙였습니다.

"J, 나도 오늘 캐디는 별로야. 근데 별로인 캐디에 따라 오늘 라운드가 좌우되면 우리가 캐디를 위해 공을 치는 것도 아닌데 너무 억울하고 바보 같잖아. 그냥 노캐디라고 생각하고 치자."


골프는 조금만 싫어져도 하기 어려운 '것'같습니다. 정말 좋아해야 할 수 있는 '것'이고요.


그린피가 좀 낮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지만 그건 바람 같은 것일 뿐 거부나 이별을 쳐다 보기엔 턱없이 부족한 핑계가 됩니다. 카트피로 골프장이 좀 과한 이익을 취하는 게 아쉽지만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대등한 세상에서 뭐 유별난 케이스도 아닙니다. 시장이 충분히 받아주니까 가격을 올려 받는 건 너무 훌륭하진 않지만 잘못은 아니니까요. 


가끔 골프를 좀 덜 좋아할 수 있는 좋은 게 없나 살핍니다. 너무 좋아하니까요.

저의 경우에는 그린입니다. 


그린이 좋으면 모든 게 용서가 됩니다. 아무리 그린피가 비싸도 괜찮습니다. 끝내주게 그린을 관리하는 골프장에서 한번 치는 것과 그냥 그렇게 그린을 관리하는 골프장에서 3번 치는 것 중 어느 것을 고르라고 하면 저는 언제나 좋은 그린입니다. 그래서 그린이 좋은 걸로 유명한 골프장을 예약할 때는 물론 그런 골프장은 홈페이지에 공지가 뜨는 경우가 많지만 안 그럴 경우 전화를 걸어 에어레이션 스케줄을 확인합니다. 그린이 안 좋은 골프장을 다녀오면 평상시 보다 다음 골프까지의 인터벌이 조금 더 길어집니다.


두 번째는 캐디제도입니다.


저 같은 경우. 첫 홀 대기할 때 캐디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웬만하면 채는 내가 직접 뽑겠다. 

티박스에서 나는 일부러 홀 설명을 안 들을 테니 오해 말아라. 

그린에서는 날 빼고 3명만 있다고 생각하라는 당부입니다.


잘난 척하려는 게 아닙니다.

내가 판단하고 내가 선택하고 그걸 실행하고 그 결과를 보는 재미가 각별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여러 가지 정보가 차고 넘칩니다. 카트에 있는 패드에는 총천연색 야디지북은 물론 그린 언듀레이션까지 보여줍니다. 또 허리뒷춤에 찬 레인지 파인더 덕분에 미심쩍은 거리는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패드에 나오는 정보를 저도 참고는 하지만 그린 언듀레이션만은 쳐다보지 않습니다. 그린에서는 온전히 내 눈으로 보고 느낄 뿐입니다. 기계적인 모든 것을 내려놓습니다. 홀컵에서 공까지 걸음으로 걸어 수치로 환산하지도 않고 오직 감으로만 퍼팅을 합니다. 간혹 감각이 그린 선을 따라 홀로 빨려 들어가는 공을 보며 기계적인 수치에 바탕한 실행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본능적이고 섹시한 황홀감에 빠져 듭니다.


배가 산으로 갔네요. ㅎ

저는 그래서 캐디가 거의 필요가 없습니다. 노캐디를 선호하지만 일단 캐디와 함께 하는 라운드에서는 캐디를 정말 좋아합니다. 또 한 명의 동반자이고 나는 아니지만 다른 동반자에게는 도움이 되는 분이니까요. 또 캐디가 없다면 진행이 얼마나 느려질지... 일종의 코스 마샬과 동반하니 최소한의 진행 속도는 보장이 되니까요.


가끔 초보 캐디도 만나고, 전날 과음을 한 캐디도 만나고, 연인과 이별을 했는지 멍 때리는 캐디도 만났지만 세상 다른 곳에서 보다 확률이 유별나게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잘하고 공감도 좋고 골퍼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캐디를 만나는 확률이 세상 다른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저는 더 높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든 골퍼가 저 같을 수는 없겠지요. 다만 캐디에 대한 안 좋은 기억과 덜 좋은 혹은 너무 기분 나쁜 기억은 덜 가질수록 골프는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는 게 내 골프를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까요?

캐디는 돈을 버는 사람이고, 나는 즐거움을 위해 돈을 쓰는 사람이다.

캐디는 내 돈을 받는 사람이고, 나는 그 돈을 직접 주는 사람이다.

거의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저는 굉장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무료 봉사 진료를 해주는 의사에게도 불만과 불평을 하는 환자가 있는 것처럼

돈을 떠나, 마음이 선하지 않은 사람은

캐디 중에도, 또 골퍼 중에도 있겠지요. 

https://youtu.be/rcahpBVm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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