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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Feb 11. 2024

댓글 아리아

#20

스무 번째 이야기

#20. 댓글 아리아


갑돌이와 갑순이 노래 아시죠?

한마을에 살았더라는 두 사람. 모르는 척했더라는 두 사람. 궁금합니다. 그 노래 속 마을에 사는 다른 사람들은 두 사람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몰랐을까요?


시작된 이유나 상황은 다르지만 골퍼들만 사는 마을이 많습니다. 우린 그런 마을을 동호회라고 부릅니다.


세상에 마을이 몇 개 없을 때 양지바른 곳, 온라인 한편에 마을을 만들고 세상에서 제일 빛나는 마을이 될 것 같다는 꿈도 꾸었고, 같은 모습, 다른 정취를 찾아 여러 마을을 찾아다녔습니다. 

어떤 곳에선 오랫동안 마을을 위해 열심이었고 또 어떤 곳에서는 구경꾼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어느새  열 곳이 넘는 마을을 둘러보았네요. 대부분의 마을은 골프가 가진 특징 때문인지 허리아래쪽이 잘려나간 피라미드 모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봤자 마을 안에 들어 서면 역시 세상과 똑같은 피라미드 일 뿐이었습니다.  


M(Money)으로는 똑같은 최고급 차를 타지만 재벌가 언저리부터 사기꾼까지...

D(Diploma)로는 박사보다 더 높은 지식부터 가방끈 확인이 필요 없는 지혜까지...

H(Handicap)로는 5십 원짜리 만한 까맣고 동그란 임팩트 자국을 가지 웨지의 소유자부터 갓난아이 얼굴만 한 페이스도 모자라 크라운까지 공 자국이 넘어온 드라이버의 소유자까지...

LLL(Look, Like, Love)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마을 의사들이 영양제가 담긴 주사기를 가져와 애써 라운드 전에 바늘을 꽂아 주고 싶어 하는 갑순이부터 온갖 칭찬이 난무하지만 외모만은 농담이 돼야 하는 갑돌이까지...

그리고 A(Age)...


하지만 마을에는 게시판이라는 마을 회관 덕분에 그 차이가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골프장에 들어서면 가진 것과 아는 것보다는 핸디 혹은 실력과 구력이 중요해지는 것처럼 게시판에서도 MDHLA는 분명히 작용을 합니다. 그럼에도 게시판은 호모사피엔스 다움이 발현될 수 있는 장치가 되고, 마을 사람들 모두를 인간이라는 공통분모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최소한 생각에 대해서 만은 MDHLA에 좌우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https://youtu.be/jOoxyfRxK8U


골프가 삶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완성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한 골퍼가 몇 년 혹은 몇십 년 간의 노력 끝에 꿈에 그리던 69타를 쳤습니다. 그 순간 그 골퍼의 골프는 완성이 되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69타를 치고 난 다음 골프는 무엇이 되는 걸까요? 

사업의 매출이 1조가 되는 목표를 달성하면 그 사업은 완성이 된 걸까요?

대개는 68타와 2조를 목표로 또 나가지 않을까요? 물론 스코어에 매달리지 않는 골프와 사업에서 은퇴를 하거나 1조 매출이 유지되는 것에만 신경을 쓰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제 69타를 친 골퍼가 오늘 81타를 쳤습니다. 이제 그는 골프를 완성했고 이미 목표를 이룬 사람이니 어떤 사람은 평생 한 번도 쳐보지 못하는 오늘의 81타도 너무 행복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골퍼에게는 어떤 행복이 찾아올 수 있을까요?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F(Feel)를 느낄 거란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성으로는 조절할 수 없는 감성. 이성이 합리화로 생산한 기쁨과 슬픔은 남들은 혹시 가끔 사줄지 몰라도 그것이 가진 가치를 나 자신은 압니다. 장난으로는 짝퉁을 살 수 있지만 진심이라면 불가능합니다. 

삶과 골프가 끝은 있지만 완성이 불가능하다는 가정이 성립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끊임없이 작용하는 F 때문입니다.


사랑도 했고 생활이 되기도 했던 마을들을 이젠 많이 떠났습니다. 왜냐고요? F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어느 순간 바늘이 돼버린 댓글로 F가 아파지는 걸 참을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을 속 사람들과 공감하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 들어간 마을이었으니까요.


회원 간의 평등과 매너가 돋보이는 동호회 게시판을 보던 어느 날 문득 안 보이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아니죠. 이미 다 보고 있었는데 더 이상 못 본 척하기 싫어졌던 거죠.


게시판에는 나름 생각과 시간을 들어 올리는 글들이 있고, 그냥 애연가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는 것 같은 짧고 노력이나 생각이 그다지 들어가 있지 않은 글들이 있습니다. 물론 후기나 장비나 스윙 문의와 토론등 실생활에 필요한 그런 글들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정성스레 마음을 담아 올린 제 글에는 댓글을 거의 달지 않는 마을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올린 짧은 글에는 정성껏 빠지지 않고 댓글을 달더군요. 인지상정입니다. 당연합니다. 잘못도 아닙니다. 서로의 글에는 그렇게 카톡 대화방 같은 인정과 호감이 담긴 댓글들이 포도송이처럼 달리는 걸 보면서 마을에는 또 작은 마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 속 마을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그 대가로 달리는 포도송이 댓글이 과연 내게 어떤 만족감을 줄 것인가만 생각했습니다. 고민은 짧았습니다. 그 마을을 찾았던 이유를 생각하니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명확해지더군요.


원래도 그랬지만 그때 이후 골프 동호회 게시판에 글을 읽고 나면, 담배 한 개비 문 것 같은 글이 아니라면, 꼭 댓글을 남깁니다. 그건 제가 선택한 시간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한 마을 사람이건 아니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하니까요. 지금도 아주 큰 마을에서는 그러지 못하지만 일단 읽고 나면 반드시 댓글을 실천합니다. 특별히 제 의견이나 생각을 표현할 게 모자랄 땐 이모티콘으로 대신합니다.


그리고 저 나름대로 제 F를 관리합니다. 얼마 전까지는 댓글에 인색한 사람에게는 댓글을 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예 그런 사람들의 글은 읽지를 않습니다. 읽고 댓글을 안다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분명 누구나 호불호는 있을 텐데 읽은 글에는 댓글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는 사람을 한 명 압니다. 다른 걸 다 떠나 존경스러운 사람입니다. 물론 저는 아닙니다. 


이젠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비슷한 인간적인 바탕을 가질 거라는 미신 같은 낭설에 대한 희망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믿습니다. 사람이 느끼는 것만은 비슷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엔 이모저모 잘 맞는 골프 동반자와 F의 차이를 느끼며 자연히 멀어졌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대로 여러 가지 차이에도 불구하고 F영역이 잘 맞는 동반자와는 오래도록 인연의 끈이 끊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요.


어쩌면 F에 가치를 얼마나 두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그 사람이 나와 어울림이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좋은 척도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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