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YUKANG Feb 19. 2024

회원권의 초대

#27

# 회원권의 초대 

드디어 명문 S골프장을 가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골프장 설계자의 대표작품(?)이라 한번 꼭 가봐야지 했던 참이었는데 멤버의 고마운 초대였습니다. 클럽하우스는 특별히 명문다운 차별은 없었습니다. 더 크거나 작지도 유별난 고급스러움도 없었습니다. 이유는 우리나라 골프장의 평균적인 클럽하우스가 너무 크고 고급스럽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코스는 역시 훌륭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골프장의 관리 상태가 최근 몇 년간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좋았었네요. S골프장은 그중에서도 대단한 코스상태였습니다. 호쾌하고 즐거운 라운드를 마치고 계산을 위해 프런트 앞에 섰습니다. 당시 캐디피도 프런트에서 받았기 때문에 모두가 모여있었습니다. 초대가 고마워 캐디피는 제가 낸다고 했습니다. 멤버가 조금 당황을 하더군요. 안 그래도 된다고 했지만 저는 꼭 제가 내고 싶었습니다. 물론 다음에 또 초대를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요. 그제야 멤버가 웃으며 허락을 했습니다. 


그날 이후 다른 분의 초대로 다시 한번 S골프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목욕탕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먼저 캐디피를 지불하고 싶어 캐디피는 제가 내겠다고 했더니 회원님이 먼저 캐디피를 정산하셨다는 프런트 직원의 말이 돌아왔습니다. 할 수 없이 그린피만 계산하려고 하니 금액이 너무 낮았습니다. 

'이상하다. 지난번에는 이 금액이 아니었는데....'

정산서를 쳐다보고 잠깐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카운터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회원 그린피 포함해서 1/n 하라고 하셨어요."

'이럴 수가... 초대를 해 주신 것도 고마운데 캐디피까지...' 

'거기에 그린피까지 1/n을...'

그날 저녁을 어떻게든 제가 내려고 했지만 저녁까지 내시더군요. 그러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나중에 인생 후배들에게 베풀면 돼. 나도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https://youtu.be/4blqgKwILZ4


미국에서 처음 프라이빗 골프 멤버의 초대를 받고 골프장으로 향했습니다. 

'키야... 드디어 나도 프라이빗에서 쳐보네...' 기대로 설렜습니다.


주차장에 들어서니 엄청난 차도 있었지만 차로는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더군요. 준수한 차와 털털한 차 사이에 주차를 했습니다.


적당한 크기의 클럽하우스 외부는 유별나게 어닝(awning)이 많았습니다. 깨끗한 차양에 부딪쳐 더 환하지만 연하게 차양아래 테이블과 의자들을 비추는 햇살로 분위기가 참 화사했습니다.


클럽하우스로 걸어가는데 왼쪽으로 넓고 넓은 홀(Hole) 하나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린이 여러 개 있고 무슨 긴 '뚝'같은 티박스에는 삼각형으로 쌓여있는 공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었습니다. 매트 같은 건 하나도 없었지만 그곳이 연습장이란 걸 금세 알았습니다. 페어웨이가 멀리에서 봐도 두툼한 게 꼭 정규 홀 같았고 그린은 약간의 언듀레이션까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골퍼 한 명이 홀로 연습을 하고 있는 연습장을 옆으로 흘리고 클럽하우스로 향했습니다.


멤버는 이미 도착을 해서 시가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멤버는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나가자고 일찍 오라고 했었습니다. 티타임은 몰랐습니다. 처음 초대를 할 때 멤버는 그냥 점심 먹고 나가면 된다는 말로 티타임이 언제냐는 제 질문에 답을 했었으니까요. 


날씨가 좋으니 밖에서 먹자는 멤버를 따라 식당 앞 어닝 아래 야외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메뉴판을 펼쳤습니다. 다양한 메뉴가 보였는데 이상하게 가격이 적혀있지 않더군요. 질문을 하지 않고 상상을 했습니다. 

'흐음... 고급이라 그런가?'


멤버는 프렌치어니언수프를 시작으로 간단하지 않은 점심을 먹더군요. 그때 하도 맛있다고 해서 저도 프렌치어니언 수프를 시켰는데 세상에나 얼마나 짜던지... 그런데 그 멤버는 너무 맛있다며 그 소태 같은 수프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더군요. 신기해하며 생각했었습니다. 

'저 사람은 미국에 정말 적응을 했나 보네. 이렇게 짠걸 맛있다고 하는 걸 보니...'


커피도 마신 후 스타트 에어리어로 향했습니다. 스타터(Starter)가 멀리에서 멤버의 이름을 부르며 반겼고 멤버는 적지 않은 금액을 스타터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27홀 코스 중 아무 데나 나가고 싶은 코스로 나가라고 하더군요. 


몇 분 간격인지는 몰라도 앞팀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음사이로 물과 음료수가 숨겨진 아이스박스가 매홀 티박스 옆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거 있죠. 공짜면 더 마시고 싶어지는... 하지만 곧 매홀마다 있는 아이스박스는 목이 마를 때 열면 되는 정도의 의미로 전락했습니다. 지갑이 두둑하면 마음도 부자가 된다는 말이 생각나더군요.


18홀을 돌고 나니 스타터가 멤버의 이름을 부르며 오늘은 27홀 안치냐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관리가 잘된 특히 그린이 빠르고 표면이 일정한 골프장에서의 라운드는 정말 만족감이 큽니다. 라운드를 마치고 그린피를 물었습니다. 


괜찮다고 하더군요. 식사비용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라커에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마치고 라커에 있는 나이 지긋한 스페인혈통의 직원에게 팁을 건네준 멤버를 따라 골프장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습니다. 멤버가 그린피와 식대를 내는 걸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프라이빗의 멤버십은 한국과는 다른 멤버십입니다. 한국형 멤버십이 요즘은 어딘가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은 멤버들이 돈을 내서 직원들 월급도 주고 잔디도 깎습니다. 물론 신입회원의 경우 입회비가 있는 곳도 있지만 골프장 운영에 필요한 돈을 멤버들이 1/n로 내는 시스템입니다. 멤버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멤버스듀(member's dues)라고 부르며 골프장 상황마다 다르지만 대개는 몇만 불 정도의 금액입니다. 


멤버스듀는 골프장을 사용하기 위해 내는 돈이 아니라 골프장을 운영하기 위해 내는 돈이라 골프를 치건 안치건 무조건 내는 돈입니다. 마찬가지로 레스토랑듀도 있는데 이 돈은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과 상관없이 내야 하는 최소금액입니다. 대부분 멤버들이 생업도 있고 또 없어도 골프 말고도 다른 취미가 있고 또 많은 경우 집이 두 군데 있거나 겨울에만 가는 지역의 골프장인 경우도 있어서 매일 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미국에서 멤버십을 가진다는 건 그래서 자연히 베푸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혼자 고독하게 혹은 가족과만 칠 수도 있겠지만 매일 치지 않는다면 별다른 이익이 없습니다. 멤버끼리 쳐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념적으로는 적게 치고 혼자 칠 수록 그린피는 높아질 뿐이죠.


한국이나 미국이나 프라이빗 멤버십을 가진 골퍼는 정말 골프를 좋아해야 하고 동시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멤버십을 가진 골퍼들은 인심이 좋습니다. 최소한 골프에서만큼은 자신의 성공을 나누고 베풀며 기분 좋아하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물론 예외는 당연히 있습니다.


문득 제가 예전에 자주 가던 J골프장이 생각납니다. 아주 오래전 때 회원권을 살까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릇 내가 사업을 하는데 모든 돈을 사업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내 사업은 무엇이 된단 말인가?"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바로 접었습니다. 그때 회원권 가격이 3천만 원이었는데 불과 3년 사이에 1억이 되었고 지금은 3억 정도 하려나요? 


어쨌거나 멤버듀처럼 매년 몇천만 원을 무조건 내는 것도 아니고 그린피도 싸게 치는데 시간이 지나면 돈도 버는 한국식 멤버십. 비싼 그린피를 내는 비회원들이 와주지 않으면 운영이 불가능한 골프장이 내밀었던 초대장을 받았어야 했을까요?


(지금이야 어차피) 능력이 없으니 의미 없는 답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는 알 것 같습니다. 베풂이 즐겁지 않은 골퍼라면 미국식 멤버십보다는 한국식 멤버십이 훨씬 더 편리할 것 같네요.


회원권의 초대!

언젠가는 저도 그 초대를 흔쾌하고 넉넉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을 꿈꿔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등어는 사랑을 싣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