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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Feb 22. 2024

나도 손흥민, 한일전

#30

가까운 일본 큐슈로 전지훈련을 갑니다. 예전에는 겨울에나 갔었는데 코로나 판데믹 이후 골프장의 골퍼 탄압이 극심해졌기 때문입니다. 제주도와 비슷한 비행시간만 견디면 억압을 벗어나 진정한 골퍼가 되는 것 같은 해방감을 맛봅니다.


골프에서 해방감을 느낀다고요? 일본 골프장을 경험한 골퍼라면 고개를 끄덕일 분이 많으실 것이고 아직 기회가 없었던 골퍼라면 궁금하실 겁니다. 라쿠텐으로 예약을 하고 렌터카를 타고 매일 다른 골프장을 휘둘러 본 골퍼라면 격한 공감까지 느끼 실지도 모릅니다. 해방은 곧 자유를 의미하지만 골프니까 너무 많은 가치를 희생하지 않았을 때 더 만끽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갑이 텅 비어야 가질 수 있는 골프는 관념상 더 소중해질 수는 있겠지요.


말은 전지훈련이지만 언제나 일본과의 한일전입니다. 주로 주말에 매치가 이루어지지만 주중에도 서로를 살펴볼 수 있는 탐색전은 열립니다. 


저는 렌터카를 빌려 매일 다른 구장을 다닙니다. 가능한 한 많은 구장을 돌며 구장도 느껴보고 선수들도 평가해 보고 싶어서입니다. 큐슈의 경우 나가사키, 구마모토를 중점적으로 훑었고 벳푸와 후아힌 온천이 유명한 오이타와 가고시마에 있는 구장도 들려 각 지역마다의 특성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다만 후쿠오카 지역은 가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갈 계획은 없습니다. 이유는 워낙 (큐슈에서는) 비싸기도 하고 많은 한일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라 저 대신 잘 싸워줄 한국 골퍼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NohBZhf81iE


5시 50분. 알람이 울리려면 10분이나 남았는데 잠이 깹니다. '부스럭 바시락' 풀 먹인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납니다. 저와 함께 한일전을 뛸 아내도 벌떡 일어납니다. '치카치카 품 품' 화장실을 처리하고 선수복을 입습니다. 나름 색을 맞춰 준비한 선수복입니다. 


6시 25분. 호텔 조식 부페장 앞에 섭니다. 아참 호텔 조식은 대개 7시에 문을 엽니다. 그래서 6시 30분부터 조식이 가능한 호텔을 잡아야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큐슈는 그리 크지 않지만 화산섬이라 길도 좁고 무척 구불구불해서 호텔에서 골프장까지 거리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언제 어느 날 한일전이 열릴지 모르는데 골프장 도착부터 늦어 한골 먹을 수는 없습니다. 간혹 주중 어떤 날에는 선수는 없고 대신 일본 측 관계자만 만나기도 하지만 크게 보면 그것도 한일전입니다. 


가끔 백을 내려주는 일본 측 관계자가 있는 골프장에서는 굳이 허리를 살짝 굽혀 일본에 온 손님으로서의 매너를 갖추되 대신 자부와 자신, 반가움을 담은 시선을 맞추며 "오하요~!"인사를 합니다. '나는 여유 있는 선수이고 충분한 준비가 된 선수'라는 티를 내는 거죠. 


일본 측 관계자가 웃으며 저를 관찰합니다. '흐음, 이 선수는 간코구(한국) 선수 같아 보이는데 조금 헷갈리네...' 제 생김새 때문인지 의도하지 않은 연막전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연막작전은 카운터에 있는 관계자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나름 니혼고(일본어)를 준비했지만 역부족! 그래도 웃는 얼굴과 맑은 눈동자로 관계자의 마음을 흔듭니다. 결국 관계자도 버티지 못하고 일상의 커튼을 열어젖히고 색다른 미소를 보여줍니다. 승리에는 꼭 상대를 쓰러트리는 승리만 있는 건 아닙니다. 서로의 인정(認定)과 인정(人情)으로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게임도 있습니다.


정작 라카는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점심 먹을 때 필요한 라카키를 받고 건물을 나섭니다. 왼쪽으로 척 보기에 백대는 돼 보이는 카트가 한쪽 편에 나란히... 장관입니다. 27홀 구장의 규모가 느껴집니다. 하지만 카트나 클럽하우스의 규모와 고급스러움으로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한국에 비하면 오히려 소박하고 귀엽고 아련하기까지 하니까요.


카트 배정은 구장마다 다릅니다. 건물을 나서기 전 문 옆 벽이나 혹은 문을 나서면 잘 보이는 곳에 붙어있는 대자보에서 이름과 이용 카트 번호를 스스로 찾는 경우도 있고, 스타트에어리어에 있는 관계자가 이름을 확인하고 카트 번호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예 프런트에서 카트 번호를 알려주는 곳도 있고요.


예상대로 주중이라 그런지 스타트 에어리어에 꼬리가 묶이지 않은 코끼리 열차처럼 서있는 카트가 몇 대 없습니다. 이번 라운드는 몇 대 되지 않는 카트에 실린 장비와 연습그린에서 퍼팅을 하는 선수들을 볼 수 있는 간단한 탐색전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상대가 있던 없던 연습은 실전처럼 상상의 한일전 라운드를 시작합니다.


다음날 토요일. 오랜만에 매치가 성사되었습니다. 사실 저만 허락하면 언제나 이루어지는 매치였습니다. 주말 일본 골프장은 일본 선수들로 언제나 꽈악 찼으니까요. 제가 매치를 두려워해서는 아니고요 주말 일본 골프는 중간에 점심 먹는 것까지 합쳐 6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체력이 좋지 않은 저에겐 쉽지 않은 시간입니다. 물론 그린피가 최소 2배 최대 3배까지 비싼 게 제일 큰 이유이긴 하지만요.


이번 매치는 꽤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한 명도 빠짐없이 룰대로 하는 일본 선수들인데 카트가 페어웨이를 들어가지 못하는 구장이라 일본선수들이 펼칠 장기전에 걱정이 앞섭니다. 하지만 그럴 땐 제게도 손흥민의 감아 차기 프리킥 같은 상대의 허를 찌르고 간담을 서늘케 하는 비장의 무기가 있습니다. 


그동안 큐슈에서 벌였던 주요 한일전은 대부분 한국의 완패였던 것 같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단체로 전지훈련을 하는 구장을 몇 군데 가보고 알았습니다. 그런 골프장에서는 앞팀도 한국선수 뒷팀도 한국선수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앞이고 뒤고 그린에 생긴 피치마크를 수리하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더군요. 


덕분에 골프공만 한 우박을 맞은 것처럼 변해버린 그린은 한국의 패배를 상징하는 녹슬고 부끄러운 트로피처럼 보였습니다. 라쿠텐에서 예약을 하며 리뷰를 참고하기도 하는데 한국 선수들의 패배를 아쉬워하는 일본 선수들의 후기가 보였이유를 것 같았습니다.


한국 선수들의 전용 전지훈련장 같은 골프장을 다녀온 다음날 안 그래도 해외에만 가면 진해지던 애국심에 발동이 걸렸고 그때부터 저는 손흥민이 돼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인 매너, 일상적인 골프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야만 했습니다. 손흥민처럼 표정과 자세, 눈빛, 그리고 골프에 대한 이해와 매너에서 일본 선수를 압도하고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A매치. 역시 체력전이었고 장기 전이었습니다. 오늘 매치를 겨룰 뒷팀과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밍글링을 하고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첫 홀부터 티샷도 세컨샷도 플레이보다는 기다림이 더 깁니다. 


1번 홀 그린 뒤쪽으로 앞팀 카트가 2번 홀 티잉 에어리어가 비워지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습니다. 첫 골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린에 올라 제 피치마크를 수리하고 아내가 퍼팅라인을 살피는 동안 수리기를 들고 보이는 피치 마크를 찾아 부지런히 손목을 놀렸습니다. 마침 제 앞으로 한국 선수들이 꽤 있어서인지 수리할 수 있는 피치 마크는 충분했습니다. 


홀이 진행되며 경기는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점점 더 길어지는 대기시간. 결정 골이 필요했습니다. 


그린을 빨리 나가봐야 기다려야 한다는 걸, 누가 봐도, 뒷팀이 봐도 확실히 알 수 있는 파3 홀이었습니다. 그린에 올라선 후 서너 개 피치마크를 고쳤지만 파3라 그런지 피치마크가 정말 많았습니다. 아내가 퍼팅을 끝냈고 제 퍼팅이 남았지만 저는 피치마크를 찾아 그린을 누볐습니다. 가끔 티잉 그라운드에 서서 그린을 내려다보는 일본 선수들이 wp 행동과 의도를 알 수 있게 앞팀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는지 살폈고 뒷팀 일본 선수들에게도 시선을 날렸습니다. 앞의 앞팀의 티샷을 마칠 때까지 꾸준히 피치마크를 수리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피치마크를 수리하며 뒷팀 일본 선수들에게 속말을 했습니다. 


'나? 한국인이야. 그것도 손흥민이지. 내 모습을 보면 우리 한국 골퍼들의 수준을 알 수 있을 거야. 공만 잘 차는 게 아냐. 마음도 넉넉하고 무엇보다 골프에 진심이야. 그래서 미안해. 근데 이해해 줘. 너희들은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오래전 너희들 나라가 정말 잘나다가 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버블을 만들었고 결국 30년 전(1990-1991)에 터졌잖아. 그 버블이 지기 전 골프가 어땠는지 너희들은 이미 다 체험을 했었잖아. 


지금 한국이 그래. 그때 너희들 보다는 아직 저렴하고 미침(craziness)이 덜하지만 비슷해.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그린을 수리한다는 개념이 없어. 그리고 사실 나는 손흥민이 아니야. 왜냐면 한국엔 나 같은 선수가 너무너무 많아. 아직 너희가 우리 선수들을 다 못 봐서 그래. 오늘 경기 즐거웠다. 너희들도 마저 잘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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