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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Feb 18. 2024

고등어는 사랑을 싣고

#25

#25 고등어는 사랑을 싣고

골프를 SEX로 비유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골프의 정체성은 SEX 보다는 사랑과 더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사람이 하는 게 사랑인지라 정도도 의미도 행위도 다르지만요.


골프를 좋아하는 마음이 주체가 되지 않을 때, 라운드를 하지 않을 때도 골프를 하고 싶은 골퍼들이 모이는 곳이 동호회 같습니다. 온라인에서 골프와 관련된 생각을 수담(手談)으로 나누는 재미는 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동문이나 지역 혹은 지인의 추천으로, 이미 있는 인연 위에 골프가 얹힌 모임도 있고 오직 골프로 시작된 동호회도 있습니다. 골프를 향한 사랑의 경연장이기도 하고 골프로 맺어질 수 있는 인연을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자신만의 진심으로 동회를 찾습니다. 물론 그 진심의 색깔과 기준, 모두 다르기는 합니다. 


동호회를 통해 만났거나 알게 된 사람들 중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던 러브스토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 


20년도 넘은 케케묵은 기억이라 흐릿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고등어가 이렇게 맛있을 수 없다는 글이 X 동호회 게시판에 튀어 올랐습니다. 고등어? 신선하고 엉뚱한 단어였습니다. 그러더니 비슷한 글이 죽순 솟듯 솟아 터져 오르기 시작하더군요. A가 보낸 고등어였습니다. A가 살던 곳은 전라남도 여수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제게도 고등어가 찾아왔습니다. 깨끗하게 손질된 고등어가 진공팩에 들어 있었습니다. 두 마리로 기억하는 데 이것도 정확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기다렸던 터라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고등어를 올렸습니다. 고등어는 피를 얼마나 잘 빼는 가가 중요한데 (잘 뺐는지)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더군요. 비리지만 않으면 맛이 없기 힘든 고등어 구이과 반주를 곁들여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A는 X 동호회에 새로 가입한 신입회원이었고 서울에서 열리는 정기모임에는 자주 참석이 어렵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며 회원 모두에게 고등어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때 동호회 회원이 대략 80명에서 100명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정모에 스폰을 하거나 식사를 쏜 회원은 보았지만 가입된 회원에게 한 명도 빠짐없이 마음을 보낸 경우는 처음이라 정말 큰 화제가 되었었죠.


나중에 A를 만난 날, 왜 고등어를 보냈는지를 묻기보다는 A의 고등어에 실어 보낸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A는 잘 웃었고 따듯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욕심도 없어 보였고요. 


https://youtu.be/xEABhVSaaV8


Y 동호회에서 한 회원이 책을 출간했습니다. 구력도 많고 골프 다방면에 해박한 B는 여러모로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는 고참 회원이었습니다. 평소 게시판에 재미있는 농담도 올렸지만 못지않게 교훈적인 이야기도 많이 올린 분이라 회원들의 축하 댓글이 어마어마하게 달렸습니다. 워낙 점잖은 분이라 자신의 책을 사달라는 부탁을 직접 하진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책 출간 신고글이 올라온 다음날 B의 글이 하나 더 올라왔습니다. K, P, Y, L, R 등 몇몇 회원을 콕 집어 주소를 알려달라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들에게는 책을 한 권씩 꼭 보내주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분들에 대한 B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Z 동호회에는 유독 경제적인 상류층이 많았습니다. 물론 많은 골프 동호회에는 그런 경우가 많지만요. C는 그중에서도 상승곡선을 그리며 최상류 층으로 뻗어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워낙 바쁜 와중에도 정모에는 꼬박꼬박 참석을 했고 무엇보다 술을 잘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소주 말고 다른 술이요. 그런 C가 동호회의 회장이 되었습니다. 대개는 회장을 시켜도 고사하는데 C는 회장이 되고 싶어 했었고 재력이 좋은데 잘 베푸는 사람이 회장이 되는 건 현실적인 면에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C가 회장이 되기 전 한 해 동안 회원들에게 쓴 술값이 수천만 원이 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C가 매번 술을 사며 얼마씩 썼는지를 메모 해 놓았는지 아니면 대략적인 계산이었는지 몰라도 놀랐습니다. 금액은 C의 재력으로 보면 그리 크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그보다는 그가 그걸 계산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습니다.


...


사랑도 골프도 대강 하는 건 어렵습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하니까요. 마음 하나 혹은 불알 딱 두쪽만으로 사랑을 이룬 다는 건 옛날 80년대에나 간혹 가능했던 전설이 된 지 이미 한참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사랑은 준비 같습니다.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돈, 심지어 미래까지 준비를 마쳐야 시작할 수 있는 사랑. 


취미에 불과한 골프가 사랑과 비교될 수 있는 이유는 일단 시작을 하고 빠질 경우 눈이 멀어 버린다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골프를 향해 달려가는 마음에 끌려가던 이성이 넘어져도 잠깐 뒤를 돌아보기만 할 뿐 전속력으로 계속 달리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돈을 충분히 준비한 골퍼도 마음까지 투자를 합니다. 뻔히 마음의 가치는 바닥을 쳤는데도 말입니다. 


그곳에 산이 있어 그냥 오른다는 그냥 그런 마음이 아니라면, 그 산을 오르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된다면 골프는 사랑보다 더 잔인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준비를 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더 힘들겠죠.


하지만 사랑도 골프도 준비 없이 시작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준비된 사랑은 가장 사랑다운 사랑과는 거리가 있는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골프도 시간과 돈이 무한대인 사람에게는 그만큼 절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치 보고 짜내고 만들어야 하는 상황은 골프에 대한 사랑을 훨씬 더 깊고 진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골프가 잘 안 될 때도 혹은 떠나야만 하거나 멈추고 싶을 때도 마음이 다치기 쉽습니다.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들인 시간과 노력, 돈, 그리고 마음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헤어져야 한다면 골프채건 골프옷이건 없애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사랑의 추억이 담긴 것들을 버리는 마음처럼요.


아 저는 고등어에 담겼던 사랑이 제일 좋았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은 언제 떠 올려보아도 미소가 돕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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