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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Mar 02. 2024

G에게

#38

G 오빠야. 

겨울에 체력 보충한다고 하더니 어떻게 잘하고 있니?

이번 겨울은 워낙 따듯해서 올 한 해 기대가 크다.


너네 집에만 가면 느꼈던 게 있는데 막상 가면 까먹기도 하고 또 이야기해 봐야 별다르게 들어주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아 너에게 편지를 쓴다.


아무래도 아쉬운 것부터 말하는 게 낫겠지?


라운드를 마치고 시원하고 따듯한 샤워와 탕은 꿀맛이지! 그런데 지난번에는 기분 좋게 샤워를 마치고 물기를 닦으려고 수건을 집어드는데 쉰내가 풀풀 나는 거야. 근데 문제는 처음이 아니었다는 거지. 종종보단 자주가 맞을 거야. 


직원분에게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이게 외부에서 빨래를 해오는 건지 세탁공장이 클럽하우스 지하에 있는지 몰라 말을 안 했어. 아니다. 솔직히 말할 게. 사실 너무 화가 나서 이야기를 꺼냈다간 내가 제풀에 화가 커질까 봐 안 했지. 


이런 사태는 좀 막아주면 좋겠어. 나도 생각해 보았지. 이게 무척 어려운 문제잖아. 수백 장 수건을 빨아 상쾌한 냄새가 나게 만드는 건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더구나 G처럼 신경쓸데가 많은 곳은 말이야. 


그래도 앞으로는 이러면 좋겠어. 락카 들어가는 입구에 그린 스피드처럼 오늘의 수건 쉰내지수를 표시하면 좋을 것 같아. 그럼 그 지수를 보고 나처럼 까다로운 사람은 탕으로 들어갈 때수건을 한 장 가지고 들어가서 정성스레 빨아서 쉰내를 최대한 없애고 있는 힘껏 짜서 물기를 뺀 수건으로 대강 몸이라도 닦을 수 있게 말이야. 그치? 생각하면 할수록 참 좋은 방법이다. 디테일한 고객감동 서비스 정신도 보여주고 골퍼들은 악력과 전완근 강화운동도 하고 말이야. 일석이조네.


수건은 그렇게 처리하면 되고 이번엔 돈이 좀 들어가야 하는 데 바로 주차장이야. 주차장에 흰 페인트 주차공간 구획선을 새로 그려야 하는데 말하기가 좀 미안하다. 요즘 웬만하면 매출대비 순수익률이 겨우 30%밖에 안 되고 전국 1등도 60%도 안되는데 말이야. 어휴~! 그래도 말해볼게.

https://youtu.be/NzcRt5do-lA


요즘 골퍼들이 좀 많이 가잖아. 그러다 보니 웬만한 G는 주차공간이 항상 모자라더라. 그것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주차 공간 사잇길이 좀 좁아. 그런데 차까지 직각으로 세우니 주차간격도 좁고, 차를 넣고 빼는 게 너무 빡빡하더라고. 뭐 좁은 골목 주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말야.


아니지 가만있어보자. 혹시 이런 편지 보냈다고 블랙 컨슈머 리스트에 올라가는 건 아니겠지? 요즘 같은 시절엔 밤샘 조사받을 수도 있는데 어후... 내가 자기 검열을 좀 더 해야 하나?


G! 주차 공간은 그냥 없던 걸로 해줘. 사실 대각선으로 주차 구획선을 그리면 정말 편하거든. 안전하고! 근데 없던 걸로 하는 게 낫겠다. 내가 류관순 누나도 아닌데... 남들은 다 괜찮다고 하는데... ㅠㅠ


그럼 다시 락카로 가볼게. 락카를 쓰려 가다 보면 참 신기해. 나만 그런 건지. 바로 옆이나 맞은편 라카를 사용하는 사람 때문에 불편한 적이 많더라. 다른 데는 텅텅 비어 있는데 말이야. 그때마다 번호표를 무시하고 아무 데나 열린데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법은커녕 규칙만 어겨도 고소당할 수 있으니... 겁나서 그럴 수도 없고 말이야.


요즘 아파트 주차장을 보면, 주차 공간 위에 빨간색 녹색 표시등이 있잖아. 그것처럼 락카에 사용 중이면 빨간불 비어있으면 녹색불이 들어오면 어떨까 싶어. 둘러보고 주변에 빨간색이 없는 락카를 골라 사용하는 거지. 마치 버스를 타면 두 명이 앉는 자리에 우선 한 명씩 고르게 퍼져 앉는 것처럼 말이야.


아... 아니다. 생각해 보니 이것도 돈이 몇천만 원이 들지도 모르는 일이네. 일 년에 순수익이 겨우 몇십억 원인데 이런 걸 요구하다니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는 걸까? 


편지를 쓰려고 펜을 들었을 때만 해도 당당했는데... 왜 이렇게 미안하고 불안해지냐...


아이참...

난 왜 이렇게 만족을 모를까?

뭐가 문제라서 이렇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잘하고 있는데 사기를 꺾으려는 걸까?


참 속상하다.

내가 이러려고 네게 편지를 쓴 게 아닌데...


미안해.

앞으로는 눈 가리고 귀 막고 입 닫고 살게.

아니구나 펜을 드는 손가락도 '이놈! 떼찌!' 할게.

다신 못하게.


고마워.

대신 앞으로도 지금처럼 골퍼들을 위해 희생하는 자세 유지해 줘.


봄에 보자.

아~! 아니구나...

난 주로 해외로 다닐 거니까...


암튼 잘 지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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