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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KANG May 11. 2024

휘닉스파크 CC. 강원도 엄마, 잭니클라우스 아빠

안녕하세요 류캉입니다.


https://youtu.be/fwaxSHBBUlE


며칠 전 강원도 평창 태기산 자락에 위치한 휘닉스파크 CC를 다녀왔습니다. 국내 최초 잭 니클라우스 설계 코스로 유명하고 회원이 700명 수준이지만 회원의 초대가 아니면 가기 힘들었던 대표적인 골프장이었기 때문에 그랬는지 180군데 정도 국내 골프장에서 플레이를 해 보았던 저도 작년에야 처음 다녀왔던 곳입니다. 


휘닉스 파크 CC는 <강원도>와 <잭 니클라우스>가 빚어낸 결과물이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25년을 맞이한 휘닉스 파크는 부모 덕분에 이미 어느 정도 결정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골프장인 것 같습니다. 강원도가 엄마라면 잭은 아빠인데 먼저 아빠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잭 니클라우스는 어쩌면 플레이어보다는 설계자로 그 이름과 명성이 더 오래 전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코스는 인기도 있고 인정도 받습니다. 하지만 잭도 인간일 뿐이라 그런지 그의 설계는 크게 3번의 큰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설립한 더 니클라우스(The Nicklaus LLC) 회사에서 쫓겨나다시피 그만둔 잭이 새롭게 시작한 설계회사에서 태어날 설계는 아마 잭의 마지막 변화를 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잭의 골프장 설계는 프로 생활 6년 차 때 당시만 해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코스 설계가 피트 다이(Pete Dye)에게 컨설팅을 제공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첫 설계부터 마치 벤 호건의 <모던 골프>처럼 잭, 자신만의 고유한 설계 스타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잭은 1974년 코스설계회사, <더 니클라우스>를 설립했습니다. 잭의 초기 설계 코스는 전략과 그 전략을 실천할 수 있는 실력이 없이는 도저히 공략할 수 없는 극단적인 코스가 많았습니다. 탄도가 높은 페이드를 치지 못하면 공략이 불가능한 홀들도 많았습니다. 


잭이 골프장 설계가로 명성을 쌓아가던 1990년대 미국은 부동산 버블 시대로 접어듭니다. 덕분에 신규 골프장 설립도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더 니클라우스도 어마어마한 숫자의 코스를 설계합니다. 그리고 이때 시그니처코스(Signature Course)라는 새로운 등급이 등장합니다. 잭이 코스 건설 현장을 방문하거나 잭이 직접 설계를 감리한 코스에만 부여하는 이름인데 <더 니클라우스>가 설계를 했어도 잭이 하지 않은 코스가 많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990년부터 1999년까지 더 니클라우스가 설계한 코스는 130개가 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고 당시의 상황이었는지 모릅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진 이후 2010년부터 2022년까지 더 니크라우스가 설계한 코스가 36개뿐이라는 사실만 봐도 90년대 버블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990년대 그렇게 많은 잭 니클라우스 코스가 탄생했지만 재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코스는 상대적으로 드뭅니다. 아이러니 같지만 자본의 힘이 너무 커지면 생기는 하나의 현상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자본의 요구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90년대 말부터 잭의 설계에 심미적인 아름다움이 더해졌고 무난하지는 않지만 너무 극단적이지 않은 코스 공략방법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1999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휘닉스파크 CC도 그런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OUT코스인 마운틴 코스는 화려하진 않지만 오히려 공략이 더 까다로운 홀들이 있고 In 코스인 레이크 코스는 아름다움과 확실한 공략방법을 동시에 보여주는 홀들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휘닉스 파크는 고수는 고수대로 초보자는 초보자대로 즐길 수 있는 <강강약약> 코스로 평가받는데 이는 전략과 실력, 선택을 강조했던 초기 설계 특성과 더 많은 골퍼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어 했던 2기 설계의 특성이 혼재되기 시작했던 1990년대 말에 태어난 코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강원도. 엄마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제주도가 여자와 바람, 돌이라면 강원도는 산과 나무 그리고 기후인 것 같습니다. 클럽하우스는 설비와 배수 등의 이유로 코스 전체에서 가장 높거나 조망이 좋은 고지나 언덕 위쪽에 자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바람이 부는 날에는 그래서 클럽하우스 근처가 가장 추운 경우가 많습니다. 


5월 초 정오 때였는데도 휘닉스파크에 도착하니 얇은 냉감티셔츠 하나만 입어서 그런지 좀 쌀쌀하더군요. 그래도 플레이를 시작하며 코스 안으로 들어가면 일단 바람이 덜 불어 따듯하다는 경험을 믿고 퍼터를 뽑아 들고 연습그린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야~! 역시 강원도 산속은 다르더군요. 연습 퍼팅을 두세 번 한 후 다시 캐디백 보관 랙으로 내려가 레인재킷을 꺼내 입어야 했습니다. 


스키장 맞은편이지만 휘닉스 파크는 특히 레이크 코스는 편평한 페어웨이 언듀레이션을 가진 홀들이 많습니다. 코스를 조성하며 산을 깎는 노력보다는 코스의 낮은 지대를 고르게 만드는 토목공사를 많이 하지 않았을까, 즉 아까 말씀드린 <강강약약>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게 됩니다.


아빠와 엄마가 있다지만 휘닉스 파크의 주인은 사람입니다. 즉, 휘닉스 파크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중요한데요. 휘닉스 파크는 수도권에서 당일치기로 골프를 치기에는 조금 먼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겨울이 깊어 시즌이 짧습니다. 회원제가 아니라도 상대적으로 더 여유가 있는 골퍼가 아니라면 선택이 어려운 지리적인, 환경적인 제약을 가진 곳입니다. 하지만 그런 곳에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잭의 설계가 더해지며 회원 위주 골프장으로 자리매김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클럽하우스도 크지 않지만 단아하고 정갈한 멋으로 자연 속에서 숨을 쉽니다. 회원들도 그런 코스를 이해하고 좋아하는 분들이 결국 남게 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잭이 설계한 코스는 인간미가 조금 덜 한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태기산 자락 사이에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풍성하고 따듯해지는 곳이 피닉스파크 CC입니다. 마운틴 코스의 몇몇 홀은 제대로 된 공략법이 눈에 선명하지 않기에 오히려 다음 플레이가 기다려집니다. 멀리 저 아래 호수와 페어웨이, 벙커들이 만드는 곡선이 마음을 흔드는 레이크 코스의 10번 홀과 11번 홀을 보며 떠오르는 삶의 서사들!


한국에 멋지고 좋은 골프장이 여럿 있지만 휘닉스파크 같은 골프장은 드뭅니다. 여러모로 드문 것 같습니다. 기회가 온다면 꼭 3번은 플레이를 해보시길 추천합니다. 휘닉스파크가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받아 보는 행운을 누리시길 같은 골퍼로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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