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는 나를 지우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킨 채로 누군가를 품는 일이었다.
늦은 밤, 숏폼을 보며 잠을 미루던 중
생각에 잠기게 하는 장면을 마주했다.
영상 속 상황은 이랬다.
한밤중, 옆집 할머니가 찾아왔다.
집 외부 조명이 너무 밝아 잠을 잘 수 없다며 꺼달라는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이 문제는 이미 전날 한 차례 이야기되었고,
경찰도 와서 외부 조명이 옆집까지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그 사실을 차분히 설명한 뒤, 이렇게 말했다.
“근데 그렇게 해드릴게요. 10시가 되면 불을 끌게요.”
할머니는 놀라며 되물었다.
“그렇게 해주겠니?”
그리고 곧,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기까지 보고 나서, 사실 상황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남자가 참을성이 대단하고 착한 심성의 소유자라는 건 알겠는데,
왜 할머니는 고맙다기보다,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꺼냈을까?
이후에 이어진 남자의 말 덕분에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외로울 땐 언제든 오세요.
대화하고, 밥도 같이 먹고, 와인도 마셔요.”
할머니는 혼자 살고 있었고,
오랜 외로움 끝에 결국 대화를 원하는 마음이
다소 어긋난 방식으로 표출되었던 것이었다.
남자가 참 생각이 깊고 섬세하다고 느꼈다.
겉으로만 보이는 할머니의 태도에 휘둘리지 않고,
그 이면에 담긴 마음의 진짜 이유를 바라보려 한 것이다.
만약 내가 동일한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했으니, 더 이상 말해봤자 소용없다.’
상대가 내 말을 이해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나는 그 관계를 풀기보다 끊어내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달랐다.
단순한 친절을 넘어서, 관계를 이어가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한두 번의 대화만으로는
상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 영상을 통해 마음으로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내 나름대로의 노력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마음에 깊이 남은 장면이 있다.
남자는 단순히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입장을 먼저 충분히 전달했다.
문제는 어제도 이야기되었고,
경찰도 다녀갔으며,
실제로 조명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또박또박 설명했다.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그렇게 해드릴게요.”
나는 이 말이 참 깊고, 무겁고, 따뜻하다고 느꼈다.
무조건적인 양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말한 뒤에 건네는 “괜찮아요”에는
책임 있는 배려가 담겨 있었다.
상대방에게도 ‘내가 어디까지 배려하고 있는지’가 전해지고,
무엇보다 자신도 후회 없이 자신의 마음을 지킬 수 있는 방식.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그리고 내 마음도 함께 지켜내는 일.
그 둘은 동시에 가능하다는 걸,
한 사람의 태도에서 배웠다.
나는 그동안
배려란 결국 어느 정도의 희생을 동반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때로는 배려한 뒤
마음 한 켠이 허전하거나,
시간이 지나 후회로 남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하지만 그렇게 할게요.”라는 그 한마디를 통해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헤아린다는 건,
내 마음을 지우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마음을 충분히 전한 뒤,
상대의 마음을 품는 일이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내 입장을 놓고,
그 위에 다정함을 얹는 일.
그건 포기가 아니라,
결단에 가까웠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선택.
관계를 이어가려는 용기.
그리고 나를 지키며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따뜻함.
“하지만, 그렇게 할게요.”
이 말은 단순한 수용의 언어가 아니라
배려를 가장 단단하게 표현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다음엔 나도 그렇게 말해보고 싶다.
단호하지만, 따뜻하게.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본 다음,
상대의 마음에도 조심스레 다가가는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을 외면하는 방식이 아니라,
나를 지키며,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 한 문장이 건네는 온기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