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기제로 살아온 시간
30이 넘은 지금도 분명하게 기억나는 과거의 기억들이 있다.
그 기억들은 강렬한 감정을 불러오진 않지만,
은근하면서도 확실하게 현재의 행동 양상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 기억들 중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초등학생 시절 굉장히 친하게 지내게 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학과는 다르지만 같은 학교를 나왔고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철부지 같은 어린 시절 모두가 다 싸우면서 자란다고 하듯 참 많이도 다투었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투었고 나이를 먹고 서로 성숙해지면서 다툼이 줄어갔다.
다투었던 경험은 추억이 되고 부정적인 감정은 시간에 희석되어 단단한 신뢰의 바탕이 되었다.
그 중에 시간이 지나도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친하게 지내면서도, 그 기억만 떠오르면 미움의 감정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끝없는 거절의 기억이다.
그 친구는 도대체가 부탁을 들어주는 일이 없었다.
무엇을 잠깐 빌리려 해도, 작은 도움을 구하려고 해도
“싫어.”
오기가 생겨 어쩌다 끈질기게 매달려도 수락을 얻기까지는 한세월이었다.
반대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나는 늘 그의 부탁을 들어주는 입장이 되었다.
그런 태도가 얄미워 나도 한 번쯤 거절해보려 하면,
그는 갖은 수를 다 써서라도 나로부터 수락을 얻어내곤 하였다.
요즘 같았으면 이런 친구는 금세 ‘손절’하고 다른 친구를 만났겠지만,
그땐 ‘손절’이란 말도 몰랐고, 설령 알았다 해도 실천할 용기는 없었다.
초등학생 시절 내내 시달리다 중학생이 되며 상황이 점차 나아졌다.
아마 그 친구도, 나도 조금씩 성숙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친구가 아니더라도 부탁만 하는 이기적인 아이들은 많았다.
비슷한 상황이 올 때마다 초등학생 시절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나는 기를 썼고,
나는 어느새, 받은 만큼만 되갚는 계산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스스로의 그런 태도가 내 뜻대로 조절되지 않았다.
거절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내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싫은 만큼 상대방에게도 내가 싫다는 소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먼저 내게 주는 호의는 어떻게든 다 받아내고 싶었다.
될 수 있으면 친절하게 굴되, 웬만하면 무언가를 요청하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정 요청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그 뒤에 따라올 거절을 미리 각오한다.
실제로 거절을 직면하게 되었을 때, 결단코 아쉬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합당한 요청이 거절당한다면 나 또한 마찬가지로 거절할 수 있다.
호의를 먼저 받으면 최대한 늦더라도 되갚아준다.
그렇게 십수 년을 살아온 지금, 어딘가 고장난 느낌이다.
적당히 친절하고 착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이리저리 재는 모습이 징그럽다.
관계가 가까울수록 진면모가 감추지 못해 드러나서 더 따지고 살갑지 못하다.
나는 여전히 거절이 두렵다.
내가 건넨 마음이 가벼이 여겨지는 것이,
나라는 사람 자체가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까봐.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내게 다가오면
그 사람의 속마음을 저울질하고, 나의 손익을 계산하게 된다.
그렇게라도 나를 지키고 싶은 걸까.
그런데 이게 정말 나를 지키는 방식일까? 점차 의문이 커진다.
나는 언제쯤, 누군가에게 조금 더 솔직해져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을까?
거절을 마주하는 법도,
내 마음을 온전히 꺼내는 일도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나를 돌아보고 글로 적어보는 일,
어쩌면 그게 첫걸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