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의 쓸모
1.
캐나다 대학교에서 문과, 그것도 인류학을 전공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을 포함에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던 말은 그 전공으로 뭐 하고 먹고살 건데? 였다.
전공은 결국에 생계를 짊어지는 수단으로 이어져야 하고 배움은 곧 직업으로 환산되어야 하니까.
충분히 일리 있는 질문이었다.
돈과 안정성을 쫓아 현재 분야에서 30년을 지니며
본인이 가슴 뛰는 길을 선택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아빠조차 인류학이라는 학문은 너무나 생소했다.
2.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연을 쫒는 아이라는 책을 읽고
느닷없이 삶을 잃은 난민의 삶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내 나라를 잃는 것, 내 삶을 잃는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왜 어떤 삶은 국경 밖으로 밀려나야 할까?
왜 세계 반대 편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며 난민과 그들이 겪는 삶에 대해 무지 했던 나에게
이상하게도 그들의 삶의 이야기는 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멀게만 느껴지는 타인의 고통은 그렇게, 나의 진로에 대한 고민과 질문으로 이어졌다.
나는 느닷없이 인류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었다.
3.
캐나다에서 보낸 대학 4년의 시간은
나의 무지함을 계속해서 돌아보고 세우는 시간이었다.
세상을 단정 하지 않는 법
당연하다고 믿었던 기준을 다시 생각해 보는 법
다양한 관점에서 무언가를 바라보는 법
내 목소리를 내는 법
한국이라는 작은 세상에서 바라봤던 세계가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 배웠고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나의 기준은 계속해서 으스러졌다.
내 생각과 세상이 돌아가는 일을 묶어
어떻게 나의 의견을 수립하고 표현해야 하는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를 계속해서 배울 수 있었다.
대학에서 보낸 4년의 시간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는 학문을 소화하며 그렇게 세상을 보는 눈을 길렀다.
4.
나는 지금도 이민자이자 마이너로 계속해서 북미에 살고 있다.
겉모습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 안에 속해 있지 못함을 느꼈던 기분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 누구와 같이 이곳에서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지만,
생각과 말을 오가며 사회에서 내가 이방인이라는 기분이 드는 순간들은 그전에도 지금도 계속된다.
보이지 않은 선을 느끼는 순간들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인류학은 이런 나의 경험과 생각들을 언어화해주는 학문이 되어 주었다.
나의 다름, 내가 느꼈지만 설명하지 못했던 순간들,
어딘가 불편했지만 넘기기도 했던 이 시간들을 어루만져 줬고 또 언어화해주었다.
나는 여전히 어딘가 경계에 있다.
공부하는 사람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이민자로
또 계속해서 질문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 그래서 이 전공으로 뭐 해 먹고살아갈 건데? "
대학 가기 전 수 없이 들었던 질문을 지금 다시 듣는다면
어떠한 명확한 직업의 이름으로 어떤 답을 내려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질문을 조금 다르게 받아 드릴 수는 있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하며
어떤 태도로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가 타지에 살아내며 겪은 내면의 성장
부딪히고 흔들렸던 시간들
학문이 나에게 던진 질문들과
나의 길을 찾아가기 위한 경험들을 이곳에 담아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