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상담을 다녀왔다. 세 번째인지 네 번째인지 모르겠지만 끝을 모르는 것도 낫겠다 싶어서 회차를 굳이 세진 않았다. 사실은 마음이 많이 괜찮아져서 할 말이 없었다. 회사 때문에 강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업무적으로 조금이라도 핸들링이 되니 스트레스도 금방 사라졌다.
언제나 평화로울 순 없겠지만 심장도 몸도 다 무너져갈 만큼 컸던 스트레스가 별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상담이 괜히 호들갑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인생을 컨트롤하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고, 잘 살고 싶어서 상담을 가기 전에 문제점을 계속 다이어리에 적어내렸다.
키워드가 여기저기서 날라왔다.
어떤 주제는 예술을 너무 사랑하지만 내가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 같다고 말하며 시작되었다.
나의 눈은 높아져가고 손은 게을러지는 마당에 마음은 더 이상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다고, 이제는 긁어먹을 내용물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무언갈 자꾸 만들고 싶은데 기술도 열정도 따라가지 않는 것 같다며 치기 어린 불평을 한참 늘어놓았다.
머리를 쥐어뜯다가 이마를 짚었다가 내가 이해가 안 간다며 손도 휘적휘적거리며 투덜거렸다.
선생님은 그저 가만히 웃으시다가 운을 떼셨다.
"--씨, 방금 전 회사 얘기할 때와 전혀 다른 거 알아요? 투덜대지만 목소리에 힘이 있고 너무 좋아한다는 게 느껴져요."
(정확한 말은 기억을 못한다)
어디 하나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이었다.
그랬다. 목소리가 힘이 생기는 구간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얼마큼의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싫다고 아무리 투덜거려도 남은 애정이 그 자리에 있다. 사실은 본래의 진심. 알아채지 못했을 뿐 온몸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소리.
자칫 자위가 될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의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피아노를 7년간 다니고 있었고, 느려도 가끔씩 무언갈 만들고 있었던 나에게 사랑하지 않으면 이럴 수 없다고 하셨다. 대신 직업적인 기준을 넣지 말고 그저 계속 투덜거리고 지금처럼 계속 나아가라고 말씀해 주셨다.
자꾸 완성을 시켜야하고 자꾸 잘해야 하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즐기지 못하고 울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나 자신이 느껴졌다.
마음 한구석이 녹는 것 같기도 했고.
슬픔은 유형적이고 행복은 무형적이다.
우울은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즐거움은 포만감 같아서 공기처럼 흩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아픔에서 예술을 얻는 습관을 가지곤 한다. 그게 쉬우니까.
슬플 때 많은 영감을 얻는 건 맞다. 모든 감각이 열려 세상이 모두 절절하게 느껴지는 걸 어떡하나.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3년 전 모든 게 적당히 치유되고 나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다.
특별한 줄 알았던 이야기가 세상의 하나쯤 있을 법한 이야기이고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나니 더 이상 이 이야기는 자극적이지 않았다. 소재거리가 될 수 없다는 말보다는 그만큼 하고 싶은 이야기가 되지 않았다.
나는 괜찮으니까. 더 이상 아프지 않으니까 소리칠 필요가 없었다.
아프지도 않는 나는 그래도 무언갈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의 그 무엇도 길게 이야기할 만한 게 없었다.
자극으로 오지도 않았고 메시지를 주고 싶은 이야기도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사회의 부조리함과 사회적 메시지를 다룰 만한 이야기를 몇 가지 보았지만 집중하고 싶지 않았다. 이슈들과 거리가 너무 가까우니 철저히 외면했다. 남이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지키는 것조차 벅찼다. 여기선 적당히 역할을 하다 얼른 집에 가는 게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엮이는 만큼 상처를 받는 게 당연했고 동시에 부족한 사회성에 비해 사람을 좋아하는 나 자신 또한 발견해버렸다.
인간이 너무 싫었다. 근데 역설적이게도 너무 좋아서 싫었다. 너무 미운 만큼 그 누구도 혼자 돌려보내기는 싫었다. 혼자 가는 길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못 챙길지언정 상처받는 사람은 없었으면 했다. 그러다 보니 오만 상처는 혼자 받았다.
우리 집고양이처럼 그래도 잘해주면 마음을 한 번 더 열어젖히곤 했다. 미숙하고 호구 같아 보여도 그게 나였다. 다 안고 싶고 힘이 되고 싶었다.
한동안 자막이 달린 팝송에 꽂혔다. 번역이 그런 건지 언어가 그런 건지 직설적으로 사랑한다고하고 힘을 내자고 말하는 게 가슴을 부풀게 만들었다.
비유를 좋아하는 나지만 때로는 간단한 단어 몇 개가 발을 구르게 만들었다. 외국어를 모르는 무지가 주는 경쾌함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하고 싶은 얘기가 거기에 있었던 것 같다. 다들 사랑해야 한다고, 미워하지 말자고, 그래도 일어서고, 세상을 정복하자고. 시니컬이 주류가 된 요즘 세상에 몸 속 어딘가 한쪽이 말려 들어갈 법한 이야기들이지만 삶은 단순하다. 시대가 바뀌어도 장르가 바뀌어도 결국 모든 예술은 하나를 외치게 된다. 외롭지 말고 서로 사랑하자. 많이 웃는다면 인간도 햇빛을 만들어낼 수 있다. 광합성이 별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