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는 뷔페의 나라
이곳 르완다에서는 어렵지 않게 르완다식 뷔페
'멜랑제(Mélange)'를 발견할 수 있다.
멜랑제는 프랑스어로 '뒤섞다'라는 뜻이다.
르완다의 공식 언어는 키냐르완다어, 영어, 스와힐리어
그리고 불어까지 총 네 개인데,
불어는 벨기에 식민지 시절의 흔적으로
중장년층은 영어보다는 불어를 유려하게 구사하는 편이다.
'멜랑제'라는 이 우아하고 낯선 단어도 아마 그 시절을
기억하는 하나의 흔적일 것이다.
멜랑제의 룰은 간단하다.
단 한 접시만 허용된다.
접시 하나에 양 제한 없이 마음껏 담을 수 있지만
두 번의 기회는 없다.
두번째 접시부터는 추가금이 붙는다.
그러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나의 위장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접시 위를 지능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물론 가끔은 외국인 특유의 나 몰랐어요 어리바리가 통하기도 하지만 매번 쓸 수 있는 카드는 아니니 주의할 것.
처음 멜랑제에 갔을 때 당황스러웠던 것은
모든 것이 탄수화물이라는 점이었다.
감자, 카사바, 팥, 쌀.
그리고 정체 모를 또 다른 탄수화물.
고기 메뉴가 하나씩 있긴 하지만
한 사람당 하나씩 가져가는 것이 이곳의 예의이자
암묵적인 룰로 탄수화물 비율에 비해 단백질이
현저히 부족하다.
평소 영양성분을 깐깐히 따져가며 먹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눈앞에 펼쳐진 탄수화물의 향연을 보니
식사 후 밀려올 질긴 식곤증이 눈에 선했다.
그래도 ‘천 개의 언덕’이라 불리는 이곳에선
매일 만 보 이상 걷는 게 일상이니
결국 서로 상쇄되는 셈이라 생각한다.
매일의 메뉴는 거의 변동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어떻게 똑같은 메뉴를 매일 안 질리고 먹겠는가.
완벽히 똑같을 순 없다.
어제의 감자가 세로로 길게 잘렸다면
오늘의 감자는 가로로 넓게 잘린다.
어제는 찐 카사바였다면
오늘은 튀긴 카사바.
어제는 샐러드였던 채소가
오늘은 기름에 볶여 나온다.
익숙한 메뉴 속에서 사소한 변화를 포착하는 일.
꽤나 재미있는 관찰이다.
"르완다 음식은 어때?"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생각보다 아주 입에 잘 맞는다."라고 답한다.
르완다에 와서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내 입맛이 생각보다 꽤나 무던하다는 것이다.
동료들과 멜랑제에 갈 때마다
깨끗하게 비워진 내 접시를 보며
가끔은 현지인 다 됐다는 농담을 듣기도 한다.
르완다의 음식은 향신료가 강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메뉴가 많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한몫하는 듯 하다.
오히려 미식의 천국이라 불리는 유럽에서 경험한
천차만별의 음식 퀄리티를 생각하면
르완다의 음식은 항상 중간은 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멜랑제의 가장 큰 장점.
바로 저렴함이다.
이 심리적 만족감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멜랑제의 가격은 보통 2,000RWF~3,000RFW.
1RWF(르완다프랑)이 한화 1.02원으로
르완다 프랑과 원화는 거의 1:1로 계산하면 되기 때문에
멜랑제 한 끼는 대략 2,000에서 3,000원 사이다.
자취생에게 3천 원대의 한 끼는 기적 같은 가격이다.
서울에선 편의점 도시락도 이 가격에 사기 어려운데
따뜻한 밥 한 끼, 그것도 원한다면 산더미처럼
쌓을 수 있는 뷔페가 3천 원이라니.
밥을 먹다가도 감격스러울 지경이다.
르완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