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라에서 낯선 얼굴로 살아본다는 것
르완다, 이곳에서 나는 인지도는 있지만 인기는 없는 아이돌이다.
거리를 걸으면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본다.
도끼병이나 시적 허용 정도의 과장이 아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가게에서 콜라를 사는 동안에도
늘 나를 바라보는 얼굴들이 있다.
어떤 얼굴은 신기한 듯하고,
어떤 얼굴은 의아하다.
나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나를 아는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들.
그 묘한 기분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연예인인데, SNS 팔로워가 200명인 느낌.
방송 출연은 꽤 했는데
정작 아무도 내 이름은 모르는 비인기 멤버.
그러니까 나는 한국인인데 "니하오!"를 듣는다는 말이다.
가끔 "곤니치와!"나 "카와이!"도 들린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헬로'를 가장 많이 듣는다.)
그래서였을까.
길 맞은편에서 내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학생들의 무리를 본 순간
나는 내가 생각해도 과할 정도로 반가웠다.
지구상에 딱 10명만 존재하는 팬클럽 회원들을 만난 기분이랄까.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였는데도
손을 방방 흔들어 반가움을 표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이곳은 중국 자본이 많이 들어와 있고
확률적으로도 한국인보다 중국인을 만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어떻게 내가 한국인인 걸 알고
단번에 '안녕하세요'라고 했을까.
새삼 한류의 힘이 대단한 걸 느낀다.
혹시 연예인의 삶이 적성에 맞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아프리카 한 달 살기를 추천한다.
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누군가의 시선 한가운데에 선다.
그리고 그 시선은 단순히 힐끗대는 정도가 아니다.
생각보다 매우 노골적이다.
길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행인이
정면에서부터 나를 바라보며 걸어온다.
그걸로 끝이 아니라 고개를 돌려 내 뒷모습까지 확인하는 형상이다.
낯선 얼굴들이 웃음기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경험이다.
그래서 처음엔 "미리웨!"(이곳의 오후 인사말)를 수시로 건넸다.
그들의 얼굴이 타인종에 대한 낯섦에서
우리의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외국인을 향한 반가움으로 바뀌는 걸 볼 때마다 나름의 쾌감도 있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사실 그건 저들의 시선에 적의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종의 생존 본능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도 그렇게 먼저 인사를 건네다 보니
한국에서보다 사회성이 좋아진 기분이 든다.
30분 거리를 걷는 동안
서너 번은 대화를 나누고,
어쩌면 좋은 인연도 만난다.
타국에서 낯선 이와 웃으며 대화하는 것은
분명한 활력을 준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는 이 순간을
한국에도 가져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행자가 아닌 생활인으로서
인종적 소수자로 존재하는 건
어떤 날은 꽤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먼 길을 걸어야 할 때는
(예컨대 70분쯤 되는 거리라면)
나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걷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절대 오늘 안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다.
어느 날, 한 무리의 아이들과 마주쳤다.
"헬로!"
이곳의 아이들은 외국인을 보면 신기한지
꼭 악수를 청한다.
작은 손들이 뻗어왔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에너지에 나도 화답하며
함께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 아이들 중 한 명이
내가 사는 집을 가르키며 말했다.
"너 저기 사는 거 알아."
그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집 발코니에서 때때로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을 스쳐 지나가는 얼굴로 기억했는데
그들은 나를 한 번 보고도 기억하고 있었다.
한국이라는 조그만 나라에서
나는 때때로 내 존재감과 쓸모에 대해 고민한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작은 경상도 크기의 타국에서
나는 군중 속의 익명성을 그리워하고 있다.
불과 르완다살이 열흘 만에.
사람이 참 간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