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성장하는 자취 초보
한국에 있을 때는 샐러드를 자주 챙겨 먹었다.
치킨,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혈당은 잡아보겠다는 내 마지막 발악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가볍게 챙겨 먹을
채소를 찾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잎채소가 그렇다.
채소에 대한 욕망이 극에 달했을 무렵,
SAWA CITI라는 르완다의 프랜차이즈 마트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Chinese Cabbage'. 2,400 RWF.
무려 배추다.
이름에 'Chinese'가 붙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이곳 사람들은 배추를 잘 먹지 않는다.
계산대 직원도 양배추와 헷갈려 가격을 잘못 찍었다.
참고로 양배추는 반값도 안 되는 1,000 RWF이다.
(배추는 2,400 RWF)
물론 그대로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나는 양심적인 Korean이기에 정정했다.
르완다에 한인이 200명밖에 안 된다는 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리고 막막함은 그다음이었다.
배추가 너무 크다.
자취 초보는 배추가 이렇게 큰 채소라는 걸 처음 실감했다.
요즘은 양을 줄여 30 포기만 김장하신다는
할머니가 떠올랐다.
배추 하나가 이 정도인데 김장을 스무 포기만 해도
장정 한 명 쓰러지겠다 싶었다.
양손으로 배추를 낑낑 안고 20분을 걸어 집에 도착했다.
도마 위에 턱.
배추 한 통에 주방이 꽉 찼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두고두고 먹으려면 소분이 답이다.
겉잎을 떼고 큼지막하게 사등분해서
지퍼백에 담아 냉장고로 보냈다.
그리고 이 배추는 생각보다 아주 훌륭하게 소비되었다.
코인 육수와 계란을 넣어 배춧국도 끓이고
쪄서 쌈장에 푹 찍어 먹기도 하고,
무엇보다 제육볶음에 넣었더니 김치찜처럼 깊은 맛이 났다.
혼자 앉아 먹으면서
내가 했지만 좀 놀라운 맛이라고 생각했다.
냉장고에 소분된 배추가 있다는 게
이렇게 든든한 일이란 걸 처음 알았다.
냉장고가 알차질수록 마음도 괜히 단단해지는 기분.
밖에서 사람 대할 때도 묘하게 자신감이 생긴다.
누가 니하오 하고 따라와도
'나는 소분된 배추 오너다'라고 중얼거리면 배짱이 생긴다.
알고 보니 내 배짱은 냉장고에 있었다.
배추로 시작된 소분, 그렇게 재미가 붙었다.
고마운 동료가 마늘을 한가득 나눠주셨다.
이전 같았으면 냉장고 한쪽에서 시들게 뒀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나는 소분의 매력에 빠졌다.
검색을 통해 다져 얼리는 게 정석이라는 걸 알아내
바로 실천에 돌입했다.
TV에서 보는 이연복 셰프처럼 중식도로 쾅하고 내려쳐
0.1초 만에 통마늘을 다진 마늘로 만들 수는 없을 테지만
나도 한 5분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출근 전 가볍게 소분해 놓고 나가려다
아침부터 30분간 마늘과 진하게 싸웠다.
하루 종일 손끝에서 풍기는 마늘 냄새는 덤이다.
그래도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칸칸이 자리 잡은 배추와 마늘, 대파를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하다.
자취를 안 했다면 몰랐을 감정이다.
이런 사소한 성취들이 나를 생각보다 많이 지탱해 준다.
막간 코너: <아무도 안 알려준 르완다>
Simba와 함께 르완다의 마트 양대 산맥인 SAWA CITI.
쾌적한 내부.
실내조명 따윈 켜지 않는 르완다지만
마트에 가면 훤한 불빛을 볼 수 있다.
베이커리 코너도 잘 되어 있다.
크루아상 등 페이스트리류가 저렴하고 맛있다.
정육점도 위생적이고 깔끔하다.
특히 SAWA의 정육점은
German Butchery라는 큰 정육 브랜드에서
납품 받아 품질이 좋다.
원하는 대로 잘라도 준다.
망으로 포장된 고기의 경우 그램으로 살 수는 없고 한 덩이를 다 사야 하니 주의.
아이스크림 등 냉동식품도 있다.
음료 종류도 많은 편.
냉장 보관 음료도 있지만
실온에 있는 멸균팩 음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수입 과자와 초콜릿이 비싸다.
스니커즈 7,000 RWF,
리터스포트는 9,500 RWF.
(원화와 르완다프랑은 환율이 거의 1:1 )
르완다에는 초콜릿을 많이 챙겨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