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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드릭 Sep 24. 2021

이천에 왜 오셨어요?

이천에 왜 오셨어요?

“다들 서울에 들어가지 못해서 안달인데, 왜 이천으로 오셨어요?”

이천으로 이사 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가운데 하나이다. 아이의 교육 문제를 생각하면 서울로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내가 이천으로 이사 온 가장 큰 이유는 ‘원석이의 건강’ 때문이다. 입덧 한 번 없이 시기에 맞춰 좋다는 음식을 잘 먹으며 10달 내내 그렇게 잘 먹고 자연분만으로 건강한 출산을 했는데도 공기 나쁜 서울에 태어나서 그런지 기관지가 좋지 않아 늘 콧물, 기침, 감기를 달고 살았다. 집 안 공기를 좋게 해 보려고 공기 청정기, 아로마 요법 등을 써봤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태어날 때 없던 아토피 피부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자 더 이상 서울에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천으로 이사 온 다른 이유는 ‘원석이의 교육’ 때문이다. 서울을 포기하고 이천에 온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의 교육 문제다. 서울은 모든 것이 다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바로 ‘자연’이 없는 곳이다. 매연과 먼지를 새까맣게 뒤집어쓴 서울의 비둘기는 예쁜 새라는 느낌보다는 더럽혀진 불쌍한 생물이고 보면서 자연 본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 사람이 너무 많은 곳이라 버스를 오르내릴 때 서두르지 않으면 밀려서 다치기 십상이었고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에게 묻히지 않으려고 아이의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자가용을 탈 때도 심각한 주차전쟁을 치러야 한다. 사람이 그립고 반가워야 하는데 서울은 사람이 무섭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천으로 이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남편 직장이 서울에 있어서 출퇴근이 큰 부담이었고, 내 근무지 발령도 이천으로 된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경기도 어디에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꼭 이천으로 이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아는 분의 소개로 산 밑에 위치한 아파트의 베란다 풍경을 보면서 남편과 나는 동시에 반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천에 와서 처음 비가 내리던 밤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산의 나무들과 풀 위에 솨- 하고 내리는 빗소리는 얼마나 아름답던지. 시멘트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와 차원이 다른 자연의 소리였다. 남편과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와인을 마시면서 그 소리에 푹 빠졌다.


산 밑이라 공기가 좋고 1층이라 원석이하고 마음 놓고 뛸 수 있는 게 무엇보다 좋아 보였다. 이곳이라면 공해 걱정도 덜고 사람에 치여 살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원석이에게 좋은 환경이 될 듯했다. 주변에 어린이집을 찾아보다가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있는 어린이집을 들어가게 됐는데 원장 선생님 방에 <오세암> 책이 있어서 “정채봉 선생님 좋아하시나 봐요?” 여쭸더니 “우리 남편이에요.” 하시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남편과 나는 ‘다른 거 알아볼 필요 없이 여기로 정하자.’ 하는 눈빛과 미소를 나눴다. 돌아가신 시인 정채봉 선생님의 부인이 운영하시는 곳이니 원석이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었다. 또, 내가 퇴근할 때까지 있을 시간을 감안하면 넓을수록 좋은데 1,2층 공간을 합치면 500평이 넘고 앞마당 놀이터, 텃밭까지 합하면 600평 넘었다. 정채봉 선생님의 정신을 이은 교육철학은 자연스럽게 어린이집 프로그램뿐 아니라 먹거리에도 이어졌다. 강원도에서 직접 농사지은 배추로 담그신 김치를 먹이시고 직접 띄우신 메주로 된장을 만들고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음식과 친환경 간식을 위해 애쓰고 계셨다.


지금 돌이켜봐도 복잡한 서울을 떠나 이천으로 이사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 난데없이 베란다에 들어와서 풀쩍 풀쩍 뛰는 청개구리와 온갖 풀벌레들, 지렁이, 다람쥐, 베란다에 매달린 벌집을 보며 원석이가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말을 걸며 노는 것을 보면 자연이 주는 가르침이 어떤 교육보다 위대하다는 걸 실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석이의 건강 문제가 해결되어 늘 달고 살던 콧물과 아토피 피부염도 옛날 얘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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