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오패스 사용설명서_11화

곱창돼지 오영오

by 주원

구두상이지만, 지난 7개월간 얽힌 영오와의 계약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는 듯 보였다. 1화부터 구독한 독자들은 공통적으로 두 가지를 느꼈을 것이다. 저런 저급한 사기에 당하는 필자가 어리 석어보일 것이고 내 오랜 친구인 재석이가 영오와 짜고 나에게 사기를 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후에 적을 이야기를 조금 스포하자면, 나는 영오를 사기죄로 고소하였는데 검찰 수사관이 나에게도 동일한 이야기를 했다.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현재 재직중인 직장 등을 고려했을때 이런 말도안되는 조건을 계속 수락한 것에 대한 고소인의 잘못도 있다."

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수사관은 50대 초반의 머리가 조금 벗겨진 깐깐한 아저씨였고, 검사는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심성이 아주 착해 보이는 여성분이었는데, 나는 그때

"재직중인 직장은 엄마의 가여운 모성애에서 기인된 무리한 사교육 떡칠로 인한 부산물로 애초에 나한테 맞지 않은 옷이며, 저는 실제로 무지하고 돈을 제대로 벌어본 적이 없어서 어리숙하게 당한 피해자일 뿐 탐욕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증거로 제출한 카카오톡 대화를 보시면 저는 계속 거절했는데 친한 친구가 계속 졸라대서 투자한 걸 보실 수 있잖습니까."

라고 말했어야 하지만 너무 대화가 길어지는 것 같아 대신,

"검사님이 치마 입고 다니다가 성추행당해도 검사님 탓인가요?"

라고 함축적으로 대꾸했다가 한번만 더 그딴소리를 하면 구속시킨다고 꾸중을 들었다.


영오한테 멍청하게 속은 이유는 1화를 다시 보면 알 수 있다. 재석이는 거진 10년간 나에게 영오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고, 영오에게 빌려온 차로 드라이브를 시켜주기도 하는 등 긴 시간 동안 수사관 아저씨 콧속에 쌓인 미세먼지처럼 신뢰감이 쌓아나갔다.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 페라리 등 접하기 힘든 차들을 영오가 구매했다며 시승시켜 주었고, 나도 개중에 조작이 쉬운 차들은 직접 몰아보기도 했다. 급기야 재석이는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시계까지 맨날 빌려와서 차고 다녔다. 지금은 유투브 등을 통해 온갖 성공팔이강의, 주식강의 등의 부자행세하는 사짜들의 흥망성쇠를 쉽게 볼 수 있는 시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영오는 내 주변에 없던 돼지와 인간의 혼성개체, 즉 신인류였기 때문에 의심을 하기보단 그냥 신기한 생물정도로 인식했던 것 같다.

저팔계.jpg


또한 내 기준에 재석이도 자산이 굉장히 많은 편에 속했다. 아마 내주변 지인 중 회사를 운영하는 집안을 제외하고는 가장 재산이 많을 수도 있다. 이런 재석이가 영오는 절대 사기꾼이 아니며, 만분의 일의 확률로 사기를 당하면 본인이 보증을 선다고 하기에 꺼림칙하지만 코인사건 이후에 다시 영오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도 있다.


재석이 어머님은 낙후된 지역이나 건물을 매입하고 수리한 후 비싼 가격에 파시는걸 90년대 초부터 여러번 반복하셔서 부를 많이 축적하셨다. 사는 곳 주변 부동산들과도 친분이 두터워 시세보다 낮은 아파트 매물이 나오면 제일 우선으로 아셨고,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기 전 여러채를 매입하시기도 하셨다. 재석이 어머님이랑도 우리 엄마도 따로 만날 정도로 집안끼리도 가까운 편이다. 재석이 어머님은 항상 나에게 가지고 있는 재산에서 대출을 일으켜 본인이 봐두신 부동산을 사라고 추천하셨는데 대출 액수가 너무 커서 막상 시도한 적은 없다. 결과론적이지만 그때 대출을 받아 구매했다면 지금 자식 키우는데 한푼이라도 보탬이 되려고 이런 사기당한 이야기나 소설로 쓰고 있지 않고, 입주 여사님을 두고 골프를 치고 있었을 것이다.


재석이는 영오 사건 외에는 모든면에서 내게 도움을 주었다. 하다못해 작은 인테리어나 자동차 수리도 재석이가 알려준 사람을 통해 하면 가격은 처음 눈탱이 맞으며 알아본 예산의 반값정도에, 결과물 퀄리티 또한 매우 우수한 편이었다. 예전에 그림을 모으던 때가 있었는데, 미국에서 그림을 사면 포장하고 한국까지 배송하는데 작품당 비용이 적으면 300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까지 나왔다. 재석이가 그 말을 듣더니 화들짝 놀라며 자기가 지인들을 통해서 싸게 들여온다고 하고 실제로 미국에 사는 지인에게 픽업/포장을 시킨 후 본인이 아는 항공사 직원을 통해 저렴하게 운송을 시켜 지인들 수고비를 포함해 100만원 정도로 저렴하게 그림을 배송해 준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깐 어떻게 한 거지?


아무튼 위의 도움받은 사례가 없었어도 재석이는 나에게 각별한 친구다. 급을 나누긴 유치하지만 굳이 나누자면 친구 등급중 최상위 티어에 있다. 나는 동갑 친구들 다음으론 형들보다는 동생들이랑 친한편인데 재석이는 나보다 나이가 한살 많지만 자주 같이 노는 예외 케이스다. 나는 일이 이지경까지 왔지만, 한번도 재석이를 의심한 적이 없고 병신같은놈을 소개해주었다며 타박하긴 했어도 마음속으로 사기를 당한 대상이 어리숙한 재석이가 아니라 나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스터.jpg 재석어머님과 주원의 모습 예시


나는 음식점 인테리어를 처음 확인한 날부터, 영오에게 할당된 투자금액은 아마 1.4억이 아니고 7천만원 수준일 것 같다고 여러번 재석이한테 얘기했고, 심지어 7천만원 이하일 수 있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재석이는 영오가 조금 과장하고 오버하는 성격이지만 자기 지인한테 사기 칠 사람은 아니라고 계속 영오를 두둔해 왔다. 제발 눈이 있으면 좀 인테리어 상태좀 똑바로좀 봐라 쫌!!


어떻게 재석이는 영오와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지내며 사기를 당하지 않았을까? 그건 우연히 티비를 보다가 발견한 소시오패스의 또 다른 습성에 있다. 소시오패스의 생각을 다 이해할 순 없지만 각자 마음속으로 놓지 못하는 한두 가지가 있다. 티비 내용은 후원금을 횡령한 후원사 대표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는데, 그 대표는 후원금을 받는 방식과 파이프라인이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 대표는 95% 이상의 후원금을 횡령했지만 유일하게 한개의 통로로 들어오는 후원금은 정말로 후원대상자들에게 전달했다고 하고 이점을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누가봐도 파렴치한 사기꾼인데 어떠한 생각으로 일부는 제대로 전달했는지 말이다. 내용이 정확하게 다 기억나진 않지만 의사가운 같은 걸 입은 전문가같이 생긴 아저씨가 나와서 그 행동이 심리적으로 본인이 악인이 아니라고 본인을 속이기 위해 남겨둔 최후의 장치란 식으로 이야기했다. 즉 요점은 자그마한 후원도 후원대상자들을 위한게 아니라 본인을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소시오패스 기질이 심한사람들은 악마 같은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종 분류 자체는 호모사피언스이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처럼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재석이는 영오의 썩고 문드러진 속을 보지 못할 정도로 순수한 사람이다. 영오가 마치 올리브영에서 제품을 테스트하는 척 알바들의 눈을 속이고 파운데이션으로 떡칠한 제사상에 올릴 돼지머리 같은 상판을 들이밀어도, 순수하게 영호를 우상화하는 1호 팬 같은 존재였기에 재석이는 영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마지막 장치라고 유추할 수 있다. 재석이는 영오가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사기행각으로 거둬드린 전유물을 공유하는 유일한 친구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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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고 8월이 됐다. 월초에 영오에게 4500만원을 받기로 한 달인데, 약속된 날짜보다 보름정도 더 걸리고 과정도 힘들었지만 결국 1차 투자금을 반환받았다. (이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반환하지 않으면 동업자들에게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해서 겨우 받아내었다. 앞에 에피소드들과 비슷해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4500만원을 반환받은 시점에서 난 앞으로 가상화폐 투자금과 2차 변제금을 조금 고생하면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돈을 받은 기념으로 저녁을 사줄 겸 재석이를 불러냈다. 그날 저녁을 먹지 않았더라면... 다가올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까?


12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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