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오패스 사용설명서_12화

곱창돼지 오영오

by 주원

당시만 해도 영오는 남에돈을 편취해서 사람들이 한번쯤 꿈꾸는 삶을 살았다. 압구정쪽 도로가 좁은 이면도로에 위치한 5층 건물을 통으로 임대해서, 층별로 각기 다른 테마의 사업장으로 사용했었다. 소속 아티스트 없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부터 프로그램 회사, 촬영용 스튜디오 등이었다고 들었는데, 제대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어 보였지만 어디가서 본인을 홍보하기 좋은 사업체들만 골라 잡았다고 생각했다. 영오는 사기치는 능력 하나 빼고는 지능이 매우 낮아서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 어떻게 망하지 않고 지속되는지 신기했다.


재석이는 당시 가상화폐 채무도 그렇고 음식점 투자비용 반환 때도 그렇고 영오가 약속한 날을 지키지 않자 나에게 말을 하진 않았지만 엄청나게 영오를 압박해 사이가 조금 소원해진 상태였다. 나는 재석이와 밥을 먹고 영오에 대한 얘기를 하며 영오가 항상 말하던, 본인 본가는 엄청나게 재력가지만 지금 잠시 부모님한테 찍혀있기 때문에 돈을 못 받는 상황이라는 게 거짓말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한 재석이한테 자꾸 자동차나 사업장 규모 보고 영오를 믿는 것 같은데 그런 걸로 현혹되다가 언제 한번 크게 당한다라고 잔소리를 이어나갔다.

"야 이 시계도 영오가 빌려준 거야.. 영오 가난한 사람 아니야.. 이것만 해도 4천만원 넘어"

재석이가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서 나한테 건넸다.


"18K......네"

시계를 건네받은 내가 중얼거렸다.


"야 원래 시계나 귀금속은 18K로 해. 24K로 하면 모양이 안 잡혀서 악세서리를 만들 수가 없어. 너는 그런 것도 모르니?"

내게서 빈틈이 보였다고 생각한지 재석이는 피식거리면서 나에게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18 게이같다고 형 이거 짭퉁이야."


보통 이미테이션 시계를 살 때 금으로 만든 제품은 잘 사지 않는다. 진짜 금이 아닌 이상 너무 티가 심하게 나기 때문이다. 가끔 진짜 금으로 가짜 시계를 만드는 사람들도 있는데, 돈은 돈대로 들고 자세히 보면 이미테이션 제품인지 알기 때문에 잘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짜시계를 보고 차를 타고 집에 가면서 그전보다 더 재석이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는데 갑자기 재석이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런지 돌발행동을 했다. 영오가 사기꾼이 아니라는 증거로 영오의 압구정 요새를 보여준다고 차를 돌린 것이다. 초딩인줄..


이윽고 압구정의 너저분한 이면도로에 평행주차를 하고 벽면에 운전석 쪽으로 차를 세워 낑낑거리면서 나온 재석이가 영오의 사무실로 비장하게 걸어갔는데, 용쟁호투에서 악당의 요새에 쳐들어가는 이소룡이 겹쳐 보였다. 뭐가 그렇게 당당했을까 싶다. 아마도 복싱마스터인 날 옆에 두고 한층한층 걸어 올라가면서 영오가 바지로 세워둔 업장별 밀입국 노동자 사장들과 싸우는 상상이라도 한 걸까?

을왕리 무한리필 조개구이집 쓰레기통에서 주운 조개껍질로 쌓은 것만 같은 비린내 나는 요새에 가까워졌을 때, 재석이는 다리에 힘이 빠져 맥을 못 추고 주저앉았고, 나 역시도 충격을 금치 못했다.... 원래 이쯤에서 다음화로 넘어가야 하는데 적은 분량으로 민원이 폭주하기 때문에 마저 이어가겠다.


영오의 요새에 붙어있던 싸구려 간판들이 다 떼어져 있었고, 이른 초저녁에 모든 불이 소등되어 있었다. 나도 재석이도 영오가 야반도주한 줄 알고 당황하고 있었는데 재석이가 생각해 보니 오늘 낮까지만 해도 자기 친구가 영오랑 같이 밥을 먹었다고 얘기를 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재석이는 곧바로 그날 낮 영오에게 사료를 맥인 재석이 친구A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A는 재석이의 중학교 동창인데, 얼굴이 제법 잘생겼으며 원래는 다른 곳에서 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임금 상황을 고려했을 때 노동착취를 당하고 있어 6월부터 재석이의 권유로 영오의 곱창집에 정직원으로 근무하게 된 형이다. 재석이는 친구A에게 영오의 사업장 관련된 질문을 했는데, 영오가 하는 엔터/스튜디오 사업을 접고 소프트웨어 사업만 한다고 축소하며 위치를 이전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재석이는 갑자기 나를 보고 씨익 웃더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스피커폰을 켰다. 그러고 나서 친구 A에게 음식점에 대한 질문을 했다.

"친구A야, 혹시 영오형이 곱창집에 투자한 투자금이 총 얼만지 알어?"

"오천만원!"

친구A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몇 달 동안 궁금해하는 액수를 말해주었다.


재석이의 당황한 표정을 근 20년 만에 보았다. 초등학교 때 놀이터의 땅을 판다음 신문지를 위에 덮고, 모래를 다시 위에 뿌려주는 방식으로 함정을 만드는 놀이를 즐겨했다. 나는 당시 재석이가 자주가는 놀이터에 함정을 만들어두고 멀리서 숨어서 재석이가 올 때까지 지켜보면서 다른 아이들이 오면 함정위치를 알려주고 재석이가 걸릴때까지 기다린적이 종종 있다. 20년뒤까지 앞을 내다보고 함정의 대한 조기교육을 시켜준 내 입장에선 다분히 개탄스러운 일이다.



친구A에게 음식점 투자금 관련 상세한 얘기를 들었는데, 5천만원씩 각출하고도 얼마가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동업자 두명은 열심히 일하는데 영오는 투자금을 지불했다는 명목으로 사장행세를 하며 일은안하고 알바들 상대로 갑질과 추태를 부리고 으스대기만 해서 직원들이 다들 싫어한다고 알려줬다.


새어나오는 통화내용을 듣는와중에 내눈에 영오가 야반도주한 요새 우체통함에 수북이 쌓여있는 채납고지서가 포착되었다. 영오가 다수의 사업을 접고 당시 소울메이트인 재석이한테도 말하지 않고 돼지굴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걸 결정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3개월은 걸렸을 것이며 당연히 그전부터 주머니사정은 심각하게 안 좋았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소시오패스들이 많이 보이는 특징 중 하나는 통제권을 쥐고싶어하는 습성이 있다. 사람을 급으로 나누고 본인보다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필요이상의 아첨을 떨지만 반대급부로 본인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도구로 생각하거나 심한 경우 인간 이하라도 생각을 하며 괴롭히는 특성이 있다. 영오는 회사에 들어올 능력이 안 되는 저지능 소시오패스이기 때문에 을왕리 해수욕장 조개구이집에서 상해서 버린 조개껍데기에 붙어있는 진주를 채집해 완성한 썩어빠진 진주목걸이를 목에 두르고 사회로 진출해 사기로 편취한 돈으로 창업 후 직원들을 착취해왔을 것이고, 사정상 그게 여의치 않자 자그마한 곱창집에서 내 돈으로 지분을 취득한 뒤 왕노릇을 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 오히려 더 안심이 되었다. 영오에게 곱창집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의미가 컸던 것이기 때문이다.


통화를 마치고 재석이가 어리바리하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그라데이션으로 분노가 상승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나는 지난 5화에서 영오가 가상화폐를 매도하고 남은 금액을 환전해서 보내달라고 했을 때, 드라마 우영우가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 돌고래가 환상에서 헤엄치는 장면처럼 영오와 소송을 하고 있는 미래가 보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미래가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멍청한 속임수에 속은 재석이가 영오에게 거짓말 친 것을 따지고 들어 내가 몇 개월 동안 설계한 작전을 망칠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재석이는 또 곧바로 차를 돌려 음식점에 쳐들어가서 모든 사실을 말하겠다고 했다.


그것만큼은 가장 하면 안 될 행동이다. 영오가 마지막 은신처로 정한 더러운 돼지굴만큼은 지켜주어야 한다. 소시오패스의 마지막 가면을 벗겨내는 순간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썩은 피부에서 흐르고 있는 고름이 분자상태로 공기에 노출되며 가까이 있는 내 얼굴까지 닿아 성인 여드름을 유발할 수 있다. 지금이 100년만 전이였어도 다신 나에게 피해를 줄 생각을 못할 정도로 두들겨 패고 마지막 은신처를 불태우고 가면을 벗겨낸다음 이마에 사기꾼 불도장을 찍을 수 있겠지만 이미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기에 독자들도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모든 걸 잃은 소시오패스가 몸에 기름을 두르고 나에게 돌진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마지막 가면까진 벗기지 않을 것을 추천드린다.


나는 그때 재석이를 앉혀놓고 소시오패스의 습성과 그에 따른 공략법을 천천히 말해주며 내가 설계한 대로 이행해야 남은 돈을 다 안전하게 받을 수 있으니 가만히 있으라고 타일렀어야 했지만 그날은 내가 강아지와 약속한 산책날이었기 때문에 자세히 이유에 대해 선 설명하지 못하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빠져있으란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날을 후회하고 있다. 강아지 산책을 시킨 건 물론 후회하고 있지 않지만, 차에서 헤어지지 않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조금 더 재석이에게 차분히 설명했더라면 훗날 벌어질 비극을 예방할 수 있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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