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돼지 오영오
인생의 정답은 없다. 모두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필자는 개인이 가진 장점이나 흥미를 살려 세상을 티끌만치라도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정답에 가까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정답이 없다고 오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시오패스의 인생은 오답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그들과 함께 하는 여정은 올바르지 않은 길로 이탈할 확률이 매우 높다. 나도 지난날의 나의 행보를 조금은 반성하고 있다. 영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은 건, 인생을 지름길로 가보려다가 함정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하지만 넘어져본 자만이 일어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법, 훌훌 털고 일어나 독자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걷지 않게 이정표를 박아둔다는 심정으로 이 귀찮은 글짓기를 계속하겠다.
재석이와 헤어지고 며칠 후, 회사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재석이한테 연락이 왔다. 음식점 동업자 중 건물주의 조카가 아닌 다른 한 명, 조우현과 만나서 음식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고 나도 나오라는 말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조우현과 건물주의 조카, 영오의 두 명의 동업자는 내가 영오에게 음식점과 가상화폐의 투자금이 담긴 금고를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는데 재석이가 열쇠를 삼키고 바다에 투신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고, 다시 한번 나를 곤경에 빠트림 셈이었다.
재석이한테 왜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하냐고 묻고 따졌더니, 자기 생각엔 지금 곱창집이 잘 되니 조우현에게 곱창집 지분을 넘기고 투자금을 반환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한 일이하고 했다.
"그러면 가상화폐 투자금은?"
".... 아....!!"
눈앞이 캄캄했지만 일단 업무를 마치고 곱창집 인근 약속한 카페로 향했다. 내 퇴근시간에 맞춰 약속시간을 정했고 재석이가 가장 먼저 도착했고 나도 예정보다 10분 정도 먼저 도착해서 음료를 주문한 뒤 재석이에게 모진 구박을 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재석이는 곱창집 투자금은 우현이이게 받고, 가상화폐 투자금은 자기가 어떻게든 받아서 준다고 했다. 조우현에게 직접 음식점 투자금을 받아내는 것은 앞으로 영오를 개망신을 주고 손절하겠다는 건데 무슨 수로 받을 거냐고 물으니, 정 안되면 영오의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받아낸다고 말했다. (재석이는 영오와 중학생 때부터 친해서 영오의 부모님과 종종 식사도 하고 연락처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던 와중 조우현이 도착했다. 한 30분 늦은 것 같았는데 미안하다는 말도 없도 없었다.
"이 친구야? 그 친구가?"
처음 우현이가 건넨 인사다.
"지금 재석이 너 때문에 가게가 어수선하고 상태가 말이 아니다 가뜩이나 매출도 떨어지고 있는데... 하..."
우현이가 하소연하듯 말했다.
"아니 뭐야 어떻게 가게 사람이 다 알아요?"
내가 당황해서 되물었다.
사연을 알고 보니 재석이가 우현이에게 전화해서 만나자고 한 게 아니라, 재석이가 재석이 친구A(곱창집 종업원)에게 영오에 대해서 폭로한걸 주방 포함 직원이 다섯명이 전부인 음식점에서 모두가 알게 되고, 그간 영오에게 핍박을 받던 종원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시끄러워지자 뒤늦게 주워들은 우현이가 재석이한테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재석이는 그간 나와 영오와 관련된 음식점 일을 우현이에게 설명했는데, 우현이의 심드렁한 표정에서 재석이가 생각한 내 지분을 양도하는 게 헛된 희망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우현은 추리닝을 위아래로 입고 21세기 일수꾼의 심벌인 명품 클러치를 한 손에 차고 나타났는데, 난 사실 멀리서 클러치를 들고 올 때부터 오늘 이야기가 좋게 끝나지 않을걸 예상했다. 번외로 이야기하자면 1화 때 말한 것처럼 영오와 재석이는 차문을 잠그지 않고 차키마저 차 안에 넣고 다녔는데, 나도 그러다가 20대 후반 영오처럼 생긴 돼지가 내 차에 있던 신용카드를 훔쳐 코엑스의 루이비통 매장에서 클러치를 사간 전적이 있다. 나도 루이비통 제품을 좋아해 도둑맞은 걸 기억할 겸 같은 제품을 사려고 했는데, 차마 살 수가 없었다.
"상황은 이해하겠는데, 더는 음식점 시끄럽게 하지 말고 너네끼리 알아서 해결해 주길 바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우현이는 관심이 없다는 듯 말했다.
"형 그래서 말인데, 형이 투자금 대신 지불해 주시고 지분 다 가져가시면 안 될까요?"
재석이가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긴 하지만, 난 영오랑 다른 사업으로도 엮인 게 많아서 그럴 수 없어."
영오의 모든 사업은 사기친 돈으로 절대 수익이 날 수 없는 사업을 하며 사회에 환원을 하는 위장 자선단체였지만, 우현이가 알려준 단 한 개의 사업은 실제로 돈을 버는 사업이었다. 영오의 어렸을 적부터 친한 친구 중 유명 고급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아들이 있었는데, 영오가 발레파킹 업체를 차려 해당 프랜차이즈의 모든 주차를 도맡아서 했다고 한다. 그 사업은 사업권만 따면 땅 짚고 헤엄치기 수준의 간단한 일이지만, 영오는 그 사업을 혼자 할 능력조차 결여되고, 초기 투자비용도 감당할 수 없어 우현이랑 같이 시작했다고 한다.
우현이 말로는 발레파킹에서 매달 수천의 순수익이 나온다고 했고, 이 수입은 영오와 사이가 멀어지면 지속할 수 없어 본인이 나의 지분을 인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 우현이가 그날 저 자리를 재석이한테 만들어 달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투자금은 개인적인 문제니 음식점이 직원들에게 더는 얘기하지 말고 장사를 방해하지 말라고 나온 것이고, 그마저도 딱딱한 말투로 겁아닌 겁을 주러 나온 느낌이었다.
나는 무뢰배가 아니다. 겨우 몇천만원 때문에 가게에 찾아가 시끄럽게 영업을 방해할 사람이 아니기에 나에겐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30분이나 늦게 오고, 미안하다고도 안 하며 무엇보다 18k 같은 클러치를 든 것에 열이 받아 문득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하였다.
"아직 투자금을 다 회수 못 받았는데, 이거 먹고 나르면 제가 언제 가서 영오를 몇천만 원어치 패든 아니면 가게 물건을 다 부시거나 가져가든 둘 중 하난 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 근데 영오가 깡패들도 엄청 많이 알아서..그랬다간 너가 엄청 위험해질 거야."
영오의 절친 아니랄까 봐 씨알도 안 먹힐 협박을 시전 했다.(내가 먼저 시작했지만..)
"발레파킹이나 하는 병신이랑 붙어먹는 깡패는 안 무서운데요? 덜떨어진놈들 정신 좀 차리려면 몇 대 맞아야 할 것 같은데 저한테 먼저 오라고 좀 전해주세요."
사실 주원은 20대 절반의 세월을 레슬링과 복싱 수련에 인생을 허비했다. 나름 시합도 나가고 만족스러운 경지에 도달했지만 타고나길 xx처럼 생긴 건 바꿀 수 없었다. 난 열받아서 진심으로 한말이었지만, 우현이는 크게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필자는 어떠한 직업도 무시하지 않는다. 일부러 발레파킹을 비하한 건, 시종일관 나에게 겁박을 주려는 우현이에게 보내는 답으로, 저 발언에 화를 내며 시비를 걸면 원터치로 눈화장을 시켜주는 잽을 두 번 날려 판다로 만든 다음, 영오와 함께 동물 패키지로 디즈니에 넘겨서 쿵푸팬더 실사화 영화를 만들게 할 예정이었다.
그 발언에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싸구려 협박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우현이는 나와 몇 마디를 더 나누더니 이내 겁박을 포기하고 영오의 실체를 밝혔다. 대화의 목적과 톤을 바꾼 우현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우현이는 재석이와 달리 영오가 사기꾼이라는 걸 일치감치 알고 있었고, 그가 어떻게 사기를 치고 다니는지에 대해 몇 가지 일화를 알려주었다. 사실 나는 그날 들은 영오의 사기 수법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정상인들이라면 이 방법을 알고도 양심에 가책을 느껴 사용하지 않겠지만, 사회화되면서 본성이 깨어나지 않은 잠재적 소시오패스의 컴컴한 심연에 숨겨둔 스위치를 자칫 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사상이나 자동차를 처음 산 사람이 고사 지낼 때 돼지머리를 급하게 구할 수 없으면 잠깐 가서 코에 지폐를 꽂게 해주는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을 줄 알았던 영오는 생각보다 스케일이 큰 사기꾼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14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