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오패스 사용설명서_8화

곱창돼지 오영오-8화

by 주원

성공한 인생이란 어떤 것인가. 사실 인간은 결국 성공을 느낄 수 없도록 설계되었다. 물론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일시적인 기쁨은 느낄 수 있겠지만 곧 또다시 새로운 목표가 생기며 그걸 이루길 갈망하고 괴로워하는 게 인간이다. 한국에서 가장 돈이 많다는 이재용 회장도 본인 스스로가 성공한 삶이라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고 일치감치 목표를 이루는 것에 너무 치중하기보다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행복을 찾는 것이 개인의 입장에서 가장 성공에 가까운 인생이라 볼 수 있다. (이재용 : 모래 병신아)


나는 마음을 다잡고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영오에게 빼앗긴 돈을 찾는 과정을 즐기자고 다짐했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심심할 때면 영오에게 카톡을 해 음식점 관련 지출계약서 증빙을 내놓으라는 등 영오가 곤란할만한 요구사항을 늘어놓았다. 그때마다 시시각각 바뀌는 영오의 거짓말을 보면 언제부턴가 그저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중에는 영오의 행동이 어린아이가 눈에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과 겹쳐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소시오패스의 강한 무기 중 하나는 동정심을 유발하는 스킬이다. 자칫 방심하다간 영오가 또 나쁜 마음을 품을 수 있기에 내키진 않지만 간간히 '오늘 회사 끝나고 당장 동업자들 만나러 음식점에 찾아간다' 혹은 '네이트판에 사연을 올리려고 글을 작성 중이다' 등의 실행하지 않을 협박을 하며 영오를 호되게 나무라기도 했다. 그렇게 영오를 스노볼에 가둬두고 신나게 흔들면서 놀다 보니, 어느덧 6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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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이오스 투자금 육천오백만 원을 변제받기로 한 달이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영오한테선 육백오십만 원도 받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차일피일 추심을 미루다가 월 말이 다가왔을 때 영오에게 약속된 달이 되었으니 투자금을 갚으라고 했다.


추심이 시작되자마자 영오의 애절한 빚 인증 공세가 시작되었다. 카카오뱅크에서 제공하는 기능 중 다양한 출처의 채무를 한화면에서 보여주는 서비스가 있다. 영오는 그 화면을 캡처해서 보여주며 본인은 정말 변제할 능력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본인이 진 채무의 총량은 나와 어떠한 상관관계도 없지만 모든 걸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소시오패스 영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코인 투자금 외에도 음식점 투자 비용까지 돌려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그의 헛소리를 묵묵히 들어주어야 했고, 강하게 다그칠 수만은 없었다. 소시오패스와의 싸움은 말로 하는 체스게임과 같다. 항상 몇 수 뒤까지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나는 나이트(이오스 투자금)와 비숍(음식점 투자금)이 빠진 핸디캡을 가진 상태로 경기에 임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초등학교 이후로 잘 써먹지 않았던 퀸을 사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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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영오 5화를 보면 미래에 혹여나 벌어질 법정 소송에 대비하고자 영오에게 이오스 투자는 엄마가 나한테 맡긴 계좌로 진행했다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해 내게 1월 국세청에서 나온 아빠의 상속세금고지서를 캡처해 기한과 이름을 포토샵으로 고쳐놓았다. 기한은 며칠뒤인 6월 30일까지로 수정해 놓았고 이름은 엄마 이름을 영오가 알게 되는 게 싫어 내가 싫어하는 과장 부인 이름을 써놓았다. 나는 그 위조된 공문서로 그물망을 만들어 돼지고기 자투리를 모아 만들어진 영오라눈 더러운 햄덩어리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형 사정은 딱하지만 엄마가 상속세금이 필요해 코인계좌에 다시 엄마 돈을 넣어야 해요. 저도 지금 형이 한다는 음식점에 여유자금을 다 투자한 상태라 제 돈으로 메꿀 수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빌려서라도 보내주세요"

"정말 미안하지만 난 지금 돈이 하나도 없고 빌릴 사람도 없고 은행에서도 대출이 안 나오는 상황이야"

"형 슈퍼카도 많고 시계도 많다면서요. 차 담보로 대출을 받던지 아니면 시계를 팔던지 해서 6월 29일까지 송금하세요"

"나 자동차도 다 이미 한도까지 대출받았고, 시계는 사실 다 가짜야.. 미안해 정말 돈이 없어"

"하...(트윙클) 어쩌나. 그럼 우리 엄마 채무자 만들 거예요?"


마치 서로 폰(체스말)만 앞뒤로 왔다 갔다 두는 것처럼 진전 없는 대화만 되풀이 됐다. 중간중간 영오의 빚인증은 늘어만 갔는데, 어느새 차 관련된 대출 스크린샷도 쌓여왔다. 지금 글을 적으면서 생각난 건데 혹시 영오도 포토샵을 썼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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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지속될수록 점점 서로 유치해졌는데, 나는 6월 29일까지 송금을 안 하면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현재 상황을 알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엄마의 불같은 성격상 형을 찾으러 음식점에 쳐들어갈 확률이 높다는 최후의 블러핑을 날렸는데 결과적으로 체크메이트였다. 백만원도 없다던 영오는 그제야 헐레벌떡 여유증으로 늘어진 가슴밑에 숨겨놓은 이천만원을 꺼내놓았다. 하지만 나는 크로와상처럼 겹겹이 쌓인 영오의 눅눅한 지방지갑 안에 꽁쳐놓은 돈이 조금 더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영오가 순순히 이천만원을 말한 건, 적어도 가용할 수 있는 금액이 사천만원 이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총 받아야 할 돈에서 2500만원은 8월로 미뤄주겠지만, 이천만원이 아닌 사천만원이 계좌로 들어오지 않으면 엄마에게 모든 사실을 말한다고 하고 대화를 마쳤다. 그리고 며칠뒤인 28일에 내 계좌로 사천만원이 입금되었다.


9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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