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오패스 사용 설명서_7화
곱창돼지 오영오-7화
남자는 살면서 원치 않아도 크고 작은 전쟁에 임해야 할 때가 있다. 흔히들 이길 수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패색이 짙은 싸움이라도 무서워하지 않고 맞서 싸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를 창출해 낼 수 있다. 대학교 때 복싱을 몇 년 반짝 열심히 배운 적이 있다. 어느 정도 배웠을 땐 주말 낮에 관장님이 자리를 비울 때 두세 시간씩 체육관을 봐주기도 했었는데 어떤 학부모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자녀분이 몸이 약해서 동급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데 복싱을 배우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냐는 내용의 상담을 했다. 나는 그 학부모님께 복싱을 배우는 것보단 그냥 전학을 추천드렸다.
소시오패스는 한번 타깃으로 삼은 먹잇감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특히 소시오패스가 고차원적일수록 먹잇감을 고를 때 단계별로 본인만의 다양한 검증절차를 밟아 신중하게 대상을 물색한다. 아마 복싱장에 부모님이 찾아올 정도라면 자녀분은 이미 동급생을 괴롭히는 소시오패스의 가장 애착이 강한 먹잇감일 확률이 높다. 한국사람이 쌀이 없이 밥을 먹을 수가 있겠는가. 쌀값이 지금의 10배로 뛰어도 어떻게든 한입이라도 먹으려고 비싼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그 학생도 마찬가지다. 한번 낙인찍힌 학생이 소시오패스에게 맞서 싸운다고 복싱을 배워 리벤지를 할 수 있는 상태까지 수련하여도 결과적으로 소시오패스는 그 학생을 자기 통제권 안에 넣는것을 포기하지 않을것이다. 오히려 피해 학생의 어설픈 반항은 소시오패스와 그의 친구들에게 발로 차 싸커 노래에 맞춰 몰매맞을 결말만 야기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시오패스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보다 답은 간단하다. 초반 그들의 검증단계에서 본인을 탈락시켜야 한다. 위 같은 사례만 하더라도 차라리 무예를 배우지 않았더라도 처음 괴롭힐 기미가 있었을 때 맞서 싸웠더라면 한번 줘터지더라도 일진 소시오가 다른 괴롭힘 대상을 찾았을 것이다. 이르면 학창 시절부터 사회생활 내내 크고 작은 기싸움을 걸어오는 피곤한 무리들이 있다. 껄끄럽고 어렵겠지만 그때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한두 마디만 똑바로 받아친다면 본인이 엄청나게 메리트가 있는 사람이 아닌 한 대부분의 소시오패스는 떨어져 나간다. 말 한두 마디로 끝낼 수 있는 괴롭힘을 자칫 방치하다가는 어느새 커터칼을 꺼내야 하는 상황이 온다. (그렇다고 너무 모두에게 초반에 날 선 반응을 보인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수 있으니 상대방의 의도 파악과 완급조절을 잘하기 바란다.)
그럼 전쟁은 언제 하는 게 가장 좋은 것인가? 전쟁은 커터칼 같은 수단이다. 정말 이도저도 할 수 없을 때 마지막으로 꺼내는 카드다. 영오에게 마음 같아선 전화로 사기꾼새끼 만나면 죽여버린다며 욕을 쏟고 싶었지만 돈을 받아내는 게 더 중요하기에 마이 안주머니에서 뽑았던 주머니칼을 다시 쏙 하고 집어넣었다. 영오가 날 속이고 있는 걸 인지했지만, 나는 거짓말 치는 주체가 영오가 아닌 영오의 동업자들이라고 가정하고 영오에게 영오도 속고 있는 거라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오는 동업자들에게 내 자본이 투입됐다고 말을 하지 않았고, 나도 괜히 귀찮을까 봐 딱히 내 존재를 알리는 것을 요구하지 않았었다. 다음은 유선상 대화한 내용이다.
"형 제가 오늘 음식점에 가봤는데, 음식점 인테리어를 보면 절대 2.8억이 들어갈 수 없어요. 아마도 형이 형 친구들한테 속고 있거나, 형 친구들이 인테리어 업자한테 사기당한 거 같아요. 일단 제 주변에 인테리어 업자도 있고, 법률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사람도 있으니 여태껏 체결했던 계약서 좀 다 보내주세요."
"아 안 그래도 나도 조금 비싼 거 같긴 한대, 아마 식기들 비용도 있고 부엌 설비도 포함된 가격이라 그럴 거야 그리고 나도 그런 계약서 같은 건 받아보지 못했어.."
"미슐랭 쓰리스타 음식점도 식기값이 그 정도로 들진 않아요. 아무튼 제 돈도 들어가 있으니 여태껏 들어간 모든 비용 계산서 받아서 보내주세요. 인테리어 업자와 한 계약서도요."
"응 알겠어 한번 달라고 해볼게..."
"그리고 홍보해 주는 연예인 누구 데려오는지 리스트 가져오고 나서 홍보비 송금 드릴게요. 그것도 계산서 떼온다음에 후불로요. 아니다 이럴게 아니라 그냥 친구 두 분이랑 자리 마련해 주세요."
"알겠어 곧 자리 마련해 볼게 나도 홍보비는 좀 많은 것 같아서 고민 중이었어. 일단 나중에 다시 연락하자."
당시 내 기준 영오는 상대하기 쉬운 소시오였다. 싸우기 힘든 상대는 서울역의 노숙자처럼 잃을 게 없는 존재인데, 영오는 본인의 떳떳하지 않은 행동을 타인에게 알리는 걸 두려워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독자들은 아마도 영오가 느끼는 두려움의 사유가 본인이 한 행동이 수치스러워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몇천억 부자라고 떠들고 다니면서 고작 몇천만원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하지만 소시오의 특징 중 하나는 대체적으로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짐작한 영오의 두려움의 근간은 나의 폭로로 인해 본인이 구축한 부자 이미지가 깨지면 앞으로의 사기 행보에 지장이 갈 것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점을 이용해 통화 이후 며칠 동안 지속적으로 카톡을 통해 동업자들과의 자리를 마련하라고 했고, 영오가 만들지 않으면 직접 음식점에 찾아가서 투자 내용을 밝히며 앞선 요구사항을 말할 거라고 했다.
다급해진 영오는 갑자기 카톡으로 본인이 언급했던 투자 내용이 틀렸다면서 몇 가지를 정정했다. 그중 가장 큰 건은 면제된 줄 알았던 보증금에 대한 이야기다. 알고 보니 보증금은 따로 내야 했으며, 보증금으로 일억 원이 쓰였다고 말했다. 내가 투자한 7000만 원 중 약 2500만 원이 보증금으로 지출됐다고 말하며 영오는 가게를 닫는 날 2500만 원은 돌려받은 돈이라며 실 투자비는 4500만원이라는 어설픈 거짓말을 하며 나를 달래려고 노력했다. 불과 며칠전만 하더라도 홍보비 명목으로 2000만 원을 갈취하려던 영오는 전화 한 통과 카톡 몇 번 만에 나에게 역으로 2500만 원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런 질 낮은 눈 가리기식 대응은 오히려 내 화를 돋웠다. 그때 나는 이미 출발한 기관차 같았다.
- 8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