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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Apr 30. 2023

寒邪直中의 깊은 기침

후유증의 후환을 없애려

계절의 바뀜은 우리가 늘 겪는 날씨와 기온의 변화일 뿐이지만 그중 봄의 변덕은 가히 좀 잡을 수 없다. 하루의 기온차가 10도 이상 차이가 나면 많은 사람들이 적응에 애를 먹고, 심하면 감기 걸리기 딱 걸맞은 날씨가 된다. 겨울에도 걸리지 않던 봄감기에 목소리가 변한 어떤 노인은 올해는 특히나 윤 2월이 있어 벚꽃도 일찍 피고 아카시아 꽃도 일찍 피어 꿀벌들도 헷갈리는 드물디 드문 날씨라고 연신 왼다. 


나 또한 이런 날씨에 조심조심하며 몸 관리를 했어도 밤의 냉기는 떨치기 힘들었다. 며칠 계속된 심한 일교차로 인해 몸의 적응력이 약간 힘들어지고 피로 상태에서, 차마 응하지 않을 수 없는 술자리로 인해 과음을 하게 됐다. 다음날의 산행임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야 뭐 그리 심하게 무리가 될까 싶었는데 오산이었다. 


기상하기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어도 모임에 앞서 몸이 벌써 무거웠다. 이미 두 달 전에 잡힌 산행 약속이라 불참하기엔 너무 준비가 많이 이뤄졌다. 차량 렌털과 숙소 및 식당이 이미 예약이 완료되어 있었고, 날씨와 무관하게 예정대로 일정을 밀고 나간다고 산행을 약속할 때부터 내가 먼저 선을 그어 버렸던 것이다.


비가 아주 많이 온다면 산행은 당연히 어려울 수도 있지만 다행히 날씨는 흐리고 가끔 비소식 정도였다. 어지간한 정도라면 우천 시의 등산은 산에서의 변덕스러운 날씨라 하더라도 때에 맞춰 진행해야 맞다. 그래야 지금껏 준비한 친구의 면목을 세워주기도 만만하다. 


그러나 정작 내 몸상태가 별로였다. 나름 컨디션 조절을 한다고 했어도 날씨에 약간 시달린 지속된 피로와 전날의 갑작스러운 음주로 생체 리듬이 흐트러져 버렸다. 그렇다고 나만 빠지고 나머지 친구들에게 가라고 할 수가 없다. 가기로 했고, 그냥 간다.


오후에 모여 차량에 각자 배낭을 싣고 출발을 했다. 산 아래의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 겸 반주로 한잔씩 돌리는데 역시나 나의 몸속에서 불협화음의 징조가 나타났다. 버섯전골을 시켜 끓이면서 밥 한술 떠먹고 막걸리 한 잔씩을 돌리는데 뭔가 속에서 계속 치받는다. 아랫배가 저릿했다. 그래도 그러려니 했다. 


전날의 숙취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장이 되리라 기대한 반주는 나의 기대였을 뿐이었다. 몸이 긴장을 일으킨다. 대충의 식사 후 방배정을 마치고 각자 방으로 가서 짐을 풀었다. 내일 새벽에 산행을 시작해서 이른 시간에 하산 후 회식을 한다. 그 일정을 맞추려면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대장이 이른다. 오늘은 가볍게 그리고 일찍 취침하고 내일 산행 후에 제대로 한잔 하자는 게 대장의 제안이었다. 


그리고 다들 다소 이른 취침. 그런데 그렇게 오래된 친구들 사이라고 해도 밥이나 술을 먹는 정도였지, 같이 잠을 자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내 성격상 수면에 있어서는 아무 곳이나 웬만한 장소면 크게 불편함 없이 나름 잘 잔다고 자부하던 터였데 이게 웬걸. 뭔가 체한 듯 속이 불편한 것도 문제였지만, 같이 자는 친구의 이갈이 소리는 처음 겪는 힘듦이었다. 잠이 들려는 순간 눈밭을 밟을  때의 뽀드득 소리로 잠이 달아났다. 다시 잠에 몸이 빠져드는 순간 반복해서 들려오는 빠드득거리는 소리는 그 소음의 규칙에 맞춰 잠이 들다 깨다 왔다 갔다 선잠으로 시달리게 했다. 


어지간한 소음에도 무난했었는데, 뻐그득 소리는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화장실 가느라 깨고, 소리 자극에 깨고, 속이 불편한 상태라 몸이 예민해서 그 소리는 더  했고, 그렇게 새벽의 여명이 밝았다.


신기한 건 그래도 몸은 움직여졌다. 이른 아침. 김밥과 커피로 간단한 요기 이후 산행을 시작했고, 혹 산행 중간 비에 젖으면 곤란하다며 대장은 준비해 온 비옷을 한벌씩 나누어 준다. 


비바람이 부는 날의 산행이 힘든 건 비옷을 입고 걸으면 속에서 열이 나고, 비가 그쳐 비옷을 벗으면 찬바람에 몸이 너무 쉽게 식어버려, 더웠다 추웠다를 계속 반복한다는 것이다. 비가 오지 않는 날씨라면 겉옷을 입고 벗으며 체온을 조절할 수 있겠지만, 비로 옷이 젖으면 몸이 더 무겁고 속에서는 땀으로 힘들다가 정상으로 갈수록 추위에 시달린다. 유독 돌이 많은 산이라 다들 더 힘들어했다.


정상을 밟고 사진을 찍는 순간에도 바람은 안개를 몰고 몹시도 옷가지를 흔들고 시야를 가렸다. 무사히 8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마무리 회포로 한 잔씩을 걸치고 나서야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다음날 무릎과 다리의 근육긴장을 호소하는 소리들이 많다. 나도 약간의 하지통이 있었으나, 그보다 나는 몸이 찌뿌둥하고 무거운 몸살 기운이 지속되었다. 알 수 없는 등의 통증이 나타나더니 속에서의 찬 기운이 계속 올라오고 배변도 흩어지며 힘들었다. 식욕도 없어 거의 허기만 가시게 하는 정도로 끼니를 줄였다. 계속 몸을 데워도 오한이 엄습하며, 졸음이 쏟아져 일찍 자도 정신이 맑지 않았다. 


감기인가? 인후통이나 기침 가래 등의 증상은 있지도 않았지만, 더 깊은 곳에서의 신호가 계속 감지됐다. 며칠이면 끝날 감기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한랭한 기운이 몸 깊이 침입하여 심하면 목숨까지 좌지우지하는 한사직중 寒邪直中의 형태는 아니지만, 단순 감기의 증상을 지나 속에서 얼음 알갱이가 박혀있어 숨에서 냉기가 느껴지는 호흡이었다. 


급기야는 말을 하려면 기침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어미경이해語未更而咳의 정도까지 나타났다. 즉 호흡이 얕고, 심호흡이 이뤄지기 전에 숨이 깊이 들이마셔지지 않는 상태. 이쯤 되면 보통의 일반 감기약으로는 어림도 없다. 속을 따뜻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장작으로 데우듯 속을 후끈하게 데워야 냉기가 가신다. 이 냉기는 오래 둘수록 손해다. 팔다리의 관절은 물론이고 심하면 장부의 기능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호흡이 코나 기관지에서 일어나는 공기의 흐름이라고 하지만, 단순치 않은 호흡들도 있다. 천식도 그렇고 가끔씩 보이는 마른기침이 그렇다. 감기에서 시작됐을 수는 있지만 감기가 아니다. 호흡呼吸이 제대로 부드러우려면 오장五臟도 같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날숨은 아래를 거쳐 폐를 통해 나가고, 들숨은 상초를 통해 아래까지 내려와야 자연스럽다 (呼出心肺 吸入肝腎). 그래서 기침으로 요실금이 나타날 정도의 사람이라면 단순 비뇨기과적 처치로는 아쉽다. 이미 수렴하는 흡입의 기운이 많이 약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알아도 피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아는 정도에서 최대한 후유증을 없애야 한다. 그래야 후환이 덜하다. 그렇게 속고 또 그렇게 당해도 무리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럴 수밖에. 그렇게 그렇게 시달리지 않으려, 애쓰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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