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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May 02. 2023

유치 자찬

타인의 실수로 얻은 소득

코로나로 인해 10여 년을 하던 수영을 못하게 되니 몸이 비틀리고 꼬였다. 다른 방편으로 강변을 따라 걷기와 달리기로 몸을 달랬지만, 물에 익숙하던 몸은 물을 원했다. 물에서 육지로 적응을 하려니 발목과 무릎 부위의 근육들이 어색하게 무리가 되기도 하고, 한편으론 강바람을 얼굴로 맞으니 새로운 맛도 있긴 했다. 실내 운동과 달리 실외 운동은 날씨가 많은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내부 수리를 마치고 다시 수영장이 문을 열었다.  과연 몸이 적응을 할까 걱정도 됐다. 해를 넘겨 사용하지 않았던 수경의 고무는 삭았는지 탄력성을 잃고 툭하니 끊어졌다. 이걸로 징크스 삼을 필요는 없다. 일단 빌려 사용하기로 하고 수영장 풀 속에 몸을 담그고 쭉 뻗었다. 과연 몸은 수영 동작을 기억하긴 했다. 그러나 몸에서 기억하는 수영 동작의 움직임만큼의 근력은 따라가지 못한다. 체력이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한 바퀴를 돌기도 전에 숨이 찼다. 다시 수영을 시작하면서 속으로 몇 번을 다짐을 했다. 무리하지 말기.


같은 수영반 회원의 얼굴을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다. 거친 숨소리와 붉어진 얼굴, 그리고 어깨의 후끈거리는 열감들. 문득 예전의 사건이 생각났다.


한창 수영이 재미있어지는 기간. 대략 수영을 한 지 3년여 지나던 때였다. 수영장 스포츠 센터에서 수영 대회를 개최한다는 공고가 났다. 거의 동네 운동회 수준이었지만, 응? 함 해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와 종목 그리고 가능성을 따져가며 무슨 종목을 할까 고르고 있었다. 40대 남자 평영 50M로 정했다. 자유형은 경쟁이 치열할 것 같았고, 접영은 힘들고, 배영은 익숙지 않다는 나름의 핑계를 갖다 댔지만, 평영은 아마 지원자가 드물 것이란 계산이 깔려있었고, 어쩌면 메달이라도 하나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희망이었다.


아무리 동네 대회지만, 대회는 대회다. 같은 조건에서 기량을 점검하고 순위가 매겨지는 경쟁이다. 앞선 종목마다 팀원들끼리의 파이팅이 시끄럽고, 안면 있는 이들의 격려 목소리가 크다. 그래도 선수로 참가하는 이들의 출발 전 대기조에는 긴장 가득이다. 선수들처럼 몸을 풀고 수경을 다시 매고 수영복의 허리끈 매듭을 질끈 다시 묶는다. 


드디어 내 차례. 누가 몇 명이 참가 신청을 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스타트 발판에 올랐다. 어라 4명. 역시 예상대로 지원자가 적었다. 속에서 약간의 안도감과 은근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꼴찌만 아니면 최소 3등이니 메달권이 되는 거네. 계획대로 되어간다 싶었다. 그러나 내가 제일 못하는 게 평영이라 장담을 할 순 없었다. 


준비 땅! 저쪽 끝 레인에선 엄청난 순발력으로 도약 입수한다. 바로 옆레인의 선수도 근육질을 한껏 자랑하는 몸매다. 출발하면서 곁눈질로 보니 옆 레인의 선수는 숨을 아예 안 쉬는 듯이 동작이 빠르다. 아, 메달은 물 건너가는구나. 나도 열심히 발길질을 해보지만 옆레인의 선수와는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


평영의 생명은 글라이딩이요 물 저항을 최소로 하며 미끄러지듯 몸을 뻗어야 덜 지치고 멀리 간다. 하지만 대회에서의 경쟁이니 만큼 다들 미친 듯이 물을 가르고 나아간다. 포기. 그저 완주를 목표로 한다. 배운 방식으로 하되 그래도 대회니까 좀 열심히 하자라는 생각으로 평영을 했다. 


25M 지나고 30M쯤에서는 다들 지친다. 그런데 옆 레인의 그 미친 근육질의 선수가 그만 멈춰서는 게 아닌가. 처음부터 에너지를 너무 쏟아서 지쳤는가 보다. 그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힘이 난다. 이제 정말 완주만 하면 된다. 그렇게 운 좋게 등수에 들었다. 3등. 동메달. 동네 체육대회이기도 하고, 평형이 인기 종목도 아니고, 인원이 많아 메달리스트들에게 일일이 목에 메달을 걸어주지는 않는다. 등수가 정해지고 나오니 대회 진행자는 내게 투명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누런 도금이 된 동메달을 건넨다. 


내 생애 이런 거 처음 받아본다. 그것도 수영으로. 학생 때부터 달리기나 체력장 시험에서 늘 겨우 턱걸이하듯 살아온 인생 아닌가. 감히 예체능에서의 메달이라니 나에겐 실로 기쁨이다. 칭찬이나 상을 싫어할 사람 있으랴. 나이 들어도 이런 게 좋긴 하네. 집에 와서 혼자 메달을 목에 걸고 거울 앞에 서서 폼을 잡은 내 모습을 연신 몇 번이고 본다. 메달을 손으로 만질수록 반짝임 가루 같은 게 손에 묻어 나오긴 했지만 앞으로 다시 있을 수 없는 영광이다. 그런데 다른 가족이나 형제들에겐 이 엄청난 일을 차마 말 못 하겠다. 그냥 나만의 비밀로 한다. 나 메달리스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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