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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May 21. 2023

자화상

구별 지어 다르지만

시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 수업에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눠주고 각자의 자화상을 그려보라고 한다. 학생들은 본인들의 얼굴을 손으로 만져본다. 눈과 코, 입술, 얼굴 윤곽 등등을 세심하게 살피다 슬슬 장난기가 발동한다. 자기의 얼굴을 만지다 옆 친구 얼굴도 서로 어루만진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라 수업시간은 소란으로 시끄럽다. 그러나 문득 한 학생이 선생님께 질문을 한다.

" 선생님, 제가 보기에는 사람은 다 똑같이 생긴 것 같은데, 누구는 예쁘다 하고 누구는 밉다고 하는 건 왜 그런 거예요? " [세상이 어떻게 보이세요?] 엄정순作.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볼 수 없는 그림 수업에서 과연 그들은 어떻게 표현할까? 그리고 학생의 질문에 선생님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책에선 선생님의 답변이 없다. 그렇다면 나라면 뭐라고 했을까?


남과의 구분은 고사하고, 가끔씩 내 얼굴을 셀카로 찍어봐도 찍힌 얼굴마다 다르다. 뿐만 아니라 화면의 그림과 거울을 통해 보는 내 얼굴도 다르다. 사진이든 실물이든 내가 나를 보는 것도 이렇게 다른데 타인에게 보일 때는 또 얼마나 다를까 싶다.


내가 그렇게 보고, 내가 그렇게 보여도 정작 나는 그대로다. 기분이나 생각에 따라 달리 보이고, 시간이 지나 비슷한 듯 변해 보여도 느낌이 다르다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어 그 변화를 바라본다.


만약 타인과 내가 똑같이 생겼다면 자화상을 그려도 그 그림이 본인 얼굴인지 타인의 얼굴인지 어떻게 알까? 같은 가면을 쓴 모습으로는 구분이 안된다. 구별이 되지 않으면 우린 분류를 할 수가 없다. 즉 같은 것이다.


비슷한데 뭔가 미묘하게 다른 점들을 찾아 구분하고 특징짓고 세분하면서 학문은 발달했다. 그러나 그러한 분석이 생각이나 감각 또는 정해진 틀에서의 판단이라면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상황으로 넘어가면 무의미해질 수 있다. 더 예쁘고 더 맛있고 더 좋다는 평가는 바로 직전의 상황에 대비된 평가라서. 


공통점과 차이점의 구별. 너와 다른 나, 나와 다른 너여야 구분이 되고, 나의 정체성이 이뤄진다. 심지어 자본과 결부되면 더욱 나의 존재를 부각하게 부추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애를 써봤자 나의 존재는 타인과 다른 나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나는 나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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