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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May 14. 2023

할매 주공아파트

실버타운은 아니지만

80넘은 노인이 거주할 집으로 14평 내외의 좁은 평수에 복도식 아파트를 정할 때 약간은 망설였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는 계단식 아파트가 더 편할 수도 있지 않을까? 비록 혼자 살지만 이전 아파트가 30평을 넘었는데 그렇게 넓게 살다가 반이상 줄어든 평수가 좁지는 않을까? 형제들과 상의를 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일단은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4개의 동이 한 단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른 동은 20평대와 30평대 아파트로 구성되어 있어, 선택권의 다양함을 고려한, 나름 여러 평수대를 골고루 갖춘 아파트 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좌우 세 가구씩 한 층에 6 가구가 한복도에 거주한다. 옆 아파트 단지에는 또 다른 구성으로 한 단지를 이루고 있었다.


이 아파트로 정할 당시에는 전세난으로 집을 구하기가 힘들 정도로 매물 물량이 너무 적었고,  아파트 시세도 끝 모를 만큼 치솟고 있어, 지어진 지 30년 가까이 된 이 작은 아파트가 나름 합리적 가격이었고, 또 내가 사는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막상 이사를 하고 보니를 놀랍게도 작은 평수로 된 이 동의 아파트에만 유독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거주해 있었다. 거주민의 평균연령이 70세에 육박했다. 간혹 젊은 부부가 있기도 했지만, 거의가 60세를 넘긴 집이고, 아래층에는 90세를 넘기신 분도 계셨다.


약간의 내부 수리와 집기를 들여 이사 온 집에서 엄마의 적응이 걱정이 됐지만, 이내 그건 나의 기우였다. 단지 내에 경로당이 있어 엄마에게 노인 학교로 놀러 오라는 전갈이 왔었던가 보다. 본인은 별 관심이 없다며 그리 내켜하지 않는다. 이미 엄마는 주변을 파악하고 나름의 놀이터도 발견한 터였다. 노인 특유의 친화력으로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 옆집에 누가 살고 아랫집에는 뭘 하지 파악할 정도였다. 이웃을 쉽게 사귀는 엄마의 성격상 오히려 경로당은 내키지 않는 장소였다. 갑갑한 걸까? 굳이 거부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


경로당 가면 친구도 사귀도 좋지 않냐고 했다. 엄마는 그곳 말고 아파트 공원에만 가도 동네 노인네들 많이 있다고 거기서도 재밌다고 한다. 요즘 경로당엔 시설도 좋고, 나름 재정 지원도 많아서 복지가 괜찮을 텐데라고 해도 엄마는 고개를 흔든다. 이 할매가 이렇게 거부하는 데는 뭔가 딴 이유가 있음 직한데 말을 할 듯 말 듯하다 겨우 입을 연다. 텃새.


그러지 않아도 이사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번 가봤단다. 내 생각에 엄마 성격상 덥석 달려드는 성격이 아닌지라 아마도 분위기 파악 겸 간 보기용으로 갔으리라. 그래서? 글쎄 나와는 아니올시다더라. 왜? 척 보면 알지 그걸 말로 해야 아냐? 자식들 뭐 하는지, 몇 평에 사는지, 위아래로 옷차림을 훑는 눈길에서 벌써 주판알이 튕겨지더라는 것이다.


이미 기존의 위계질서가 잡혀있고, 새로 들어오는 이에게 있을 신고식이 엄마는 싫었는가 보다. 또한 경로당이라는 이름으로 관리가 된다는 말은 관계자들이 있다는 말이요, 경제적 유용이 많을수록 누군가에게는 이득으로, 눈먼 돈으로, 권력으로 작용하리라. 그게 나름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고 유지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일 수도 있다. 


이 작은 아파트 단지 내에는 그렇게 나름의 규정과 규칙이 존재하는 경로당파와 오고 감이 자유로운 공원파로 나뉜다. 엄마는 공원파다. 작년 고구마를 키워 본인이 쓸 만큼만 약간 남겨두고는 삶은 고구마를 바구니에 담아 공원으로 들고 가서 두루 나눠 먹었단다.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가 공양주 보살로 일하는 절에서 남은 과일을 한 아름 갖다 주더라며 내가 집에 들렀을 때 배를 깎아 내놓는다. 치아가 빠져 음식을 먹기 곤란한 동안에는 동병상련의 동네 할머니가 미역국을 한 솥 끓였다며 나눠 주더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파트 단지 건너편 길가에 야채와 곡류를 파는 아주머니가 혼밥 하는 모습을 보고 고추장을 조금 떠 나눠줬더니, 물건을 살 때마다 더 얹어주더라는 얘기 등등이 엄마의 생존이요 적응의 방식인 듯하다.


공원파의 노인들은 등나무 아래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눈다. 누가 화장실에서 넘어져 대퇴부가 골절 됐다는, 서서 바지 입다가 넘어져 몇 호집 영감이 다쳐 수술했다는, 올해 물가가 많이 올라 사 먹기가 겁난다는, 어디 가면 더 싸게 산다는 얘기, 어디 병원이 잘 본다는 얘기 등등 온갖 일상의 소소함들이 공원파에서 오간다.


한 번은 못 보던 소쿠리를 보고 왠 거냐고 물으니 분리수거하러 갔다가 누가 내놓길래 가져왔단다. 새것 사줄까 물으니, 얼마 안 있으면 갈 텐데 새 거 필요 없단다. 자꾸 사서 모으면 버리는 것도 짐이 된다고. 


허리 아프고 무릎 아파 노인유모차를 한 대 장만한 게 본인 입장에서는 고액의 지출이었는데, 마침 다른 유모차가 한대 더 생겨 공원의 안면 있는 할멈에게 가져가 쓰라고 줬더니, 다음날 다시 가져왔단다. 자식들이 남 쓰던 거 왜 쓰냐며 타박하더란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사람 가져가세요'라고 종이에 한 장 써달란다. 프린터 해서 유모차에 올려놨더니 1시간도 안돼 누군가 가져갔단다. 


점점 마지막이 다가온다. 여러 형태들이 다양하게 구성된다. 실버타운, 마을 공동체, 엄마의 주공아파트, 요양 시설 등등. 건강하다면 어떤 형태로든 선택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늙고 병들면 그것으로 그만 제한적인 한계상황이 몸을 죈다. 누군가의 글귀가 맴돈다. '홀가분하구나,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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