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월 May 31. 2023

길 위의 고양이

각자의 길이 다름이니

외부 계단을 통해 올라야 2층 집으로 들어간다. 2층의 단독 주택이다 보니 노출된 방부목 층계로 길고양이들도 이 계단길을 같이 이용한다. 현관 대문 앞의 2층 계단참에는 햇볕이 잘 들어 낮동안 집안 출입이 드문 시간엔 늘 졸린 고양이 한 두 마리가 해바라기를 하느라 누웠다. 처음부터 이 놈들이 여기에 나타난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놈들이 나타나더니 볼 때 바다 여러 종류의 길양이들이 하나씩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물론 이들도 나를 이웃으로 생각하는지 이젠 도망가거나 움직임이 더디다. 처음엔 눈을 마주치기가 무섭게 달아나더니 이젠 내가 그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행동이 없는 걸 간파했다. 나를 봐도 길을 비켜주질 않는다. 오히려 내가 가끔 고양이를 피해 걸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곳을 처음 온 놈들은 낯 선 나를 경계하며 도망가지만.


한 번은 밖으로 나가려고 대문을 미는데 뭔가 문이 뻑뻑하게 열린다. 고양이 한 놈이 누워 아예 일어날 생각도 않고 문 여는 힘 그대로 같이 밀린 체 누워서 꼼짝을 안 한다. '야, 나도 출근 좀 하자.'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여전히 햇볕을 쬐고 누웠다. 덩치도 큰 표범무늬가 고양이다.


여러 길고양이들이 이 계단을 오르내렸어도 잠시 왔다 가는 걸로 그만이다. 그러나 가끔은 아예 눌러앉는 놈도 있다. 물론 계속 이 계단참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두 놈은 떠나질 않고 자주 눈에 띈다. 몇 년 전에는 노랑 줄무늬의 고양이가 주로 보였다. 이놈은 버리려고 내놓은 화분 위에서 졸길 특히 좋아했는데 최근엔 안 보인다. 한동안 소강상태의 공간에 작년부터는 예의 표범무늬의 검은 줄무늬 고양이가 보였다. 이놈은 오른쪽 눈에 상처가 있는 큰 수고양이다. 그냥 보기에도 성질이 사나워 보인다. 계단에 누워있다가 내 발소리에 슬쩍 실눈 한번 떠서 나인줄 확인하고는 다시 잠든다. 결코 먼저 자리를 비켜주는 놈이 아니다. 가끔은 이 표양이의 몸짓에 내가 섬찟하다. 누가 이 공간의 주인인지 모르겠다. 이 놈이 출근길에 가끔 문 앞을 점령하는 놈이다.


길고양이라고, 버려졌다고, 주인 없다고, 대충 생겼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넉넉한 털에 흰 모피를 두른 듯 귀티가 나는, 인간인 내가 보기에도 뭔가 우아하고 자태가 나는 고양이도 있다. 어느 날 집 계단을 오르내리다 눈에 띈 흰양이가 그놈이다. 흰 바탕에 노랑 둥근 털이 군데군데 박힌 암고양이다. 인간의 미적 기준과 고양이의 미적 기준이 비슷할 지도 모른다. 즉 어떻게 생겼고, 어떤 인상인지를 판단하는 인간의 기준과 동물들의 판단 기준이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내가 봐도 예쁘게 생겼네 하는 그 흰양이 주변엔 자주 다른 털색의 길양이들이 보인다.  


최근 약 보름 전부터 이 층계참에 고양이 식구가 한가득이다. 5마리의 새끼 고양이. 셋은 표범무늬고, 둘은 흰 바탕에 노랑 고양이다. 세상의 모든 어린것들은 정말 예쁘다. 자기들끼리 뒹굴고 올라타고 난리다. 층간 소음이 있을 리 없는 주택에 최근 밤낮으로 쿵쿵 우르르 소리가 잦다.


새끼를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흰양이에겐 경계심이 강하다. 계단을 올라오는 나를 본 흰양이는 잠시 일어나는 듯하더니 안도를 하는지 다시 드러눕는다. 마치 아, 너구나 하는 폼이다. 어미가 일어나려다 다시 누우니 어딘가 숨어있던 다섯은 금세 어미의 젖을 물려고 달려든다. 


심지어 한창 젖을 물리다 문 열고 나오는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어미가 큰 요동이 없으니 새끼들은 인기척이 있어도 그대로 하던 일을 연신 한다. 젖을 빨리는 흰양이나 젖을 빠는 오형제나 나를 그림자 취급한다. 그래, 그건 너희들의 일이고, 나는 내 할 일을 할 뿐이다.


몇 해전 화단 옆에 쓰러진 놈이 있었다. 죽었나 하고 가까이서 살펴보나 아직 배가 약하게 오르내린다. 평소에 나와 익숙지 않은 놈들은 나의 인기척에 놀라 달아나거나 뭔가 액션을 취하는데 이놈은 반응이 없다. 눈을 살펴보니 살짝 넋을 잃은 모양인데, 힘들어 그렇겠거니 했다. 오후에 사라졌기에 다른 곳으로 갔나 싶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다시 그 자리에 누워있다. 이번엔 입을 벌리고 송곳니가 드러난 채로. 복부의 움직임이 없다. 파리 한 마리가 앉았다 날아간다. 갔구나. 


보통은 조용한 곳이나 한적한 곳에서 생을 마칠 것 같은데, 노출 계단 옆의 이 개방 화단 옆은 그래도 사람들의 이동이 좀 있는 곳이라 고양이가 이곳을 죽을 장소로 정한 게 의외였다. 처음 겪는 일이다. 화단에 익숙하거나 화단을 좋아하는 놈인가 하는 생각에 화단에 묻을까 생각하다가 말았다. 무연고의 길고양이라도 내 임의로 처리한다는 게 맘에 걸렸다.


공식적인 루트를 찾고자 구청에 문의를 했다. 공유지에서의 동물 사체는 지자체에서 처리를 하지만, 사유지 내의 동물 사체는 종양제 봉투에 넣어 버리면 된단다. 종양제 봉투에 넣어 버리라는 말은 쓰레기 취급인데, 좀 난감했다. 


최근 지인이 찾아왔다. 지옥을 경험했다며 얘기한다. 처음 시작은 호흡이 원만하지 않은 정도였다고 한다. 운동 중독일 정도로 근력이 좋은 그에게 호흡곤란이라니 선뜻 이해가 안 갔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더니 상담을 하자마자 대학병원으로 가라는 말만 하더라는 것이다. 병명이라도 일러달라고 했더니 간질성 폐질환이라는 말만 들었다고 한다. 숨은 더 차서 흡기가 힘들 정도인 데다 큰 병원으로 빨리 가서 정밀검사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이렇게 가는구나 싶었단다. 대학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고 진료를 하기 전까지의 시간이 온갖 상상으로 힘들었단다. 죽을병에 걸렸을 것 같은 공포가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는 불면의 시간을 보냈단다. 


대학병원 호흡기내과에 가서 조직검사와 정밀검사를 한 후 의사는 폐섬유종의 일종인데 그 원인으로 혹 기생충의 감염일 가능성도 있으니 일단 그쪽으로 복약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고 한다. 결과는 다행히 약을 복용하면서 호흡곤란의 증상이 조금씩 나아졌고, 검사상으로도 호전 변화가 있어 지금은 거의 완치가 됐다고 한다. 근 몇 개월을 이러다 가는구나 하는 절망에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고. 


그 기생충(톡소 플라스마증)의 감염 원인이 큰아들이 어느 날 유기묘 한 마리를 데리고 온 것에서 시작됐다는 나름의 유추가 내려졌다. 고양이를 불쌍히 여기는 아들놈의 제안을 거절하기도 힘들었고, 또 고양이의 하는 짓이 귀여워 키우는 것을 허락한 게 이렇게까지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계단 층계참의 양지바른 곳의 오형제는 오늘도 즐겁다. 이젠 제법 동작도 민첩하고, 뛸 때마다 쿵쿵쿵하는 발소리도 커졌다. 가끔씩 나와 마주치는 눈들이 아직은 경계의 눈빛이지만, 여전히 똘망똘망하다. 그러나 거기 까지다. 그렇게 일부의 공간을 서로 간섭 없이 공유할 뿐이다. 나는 출근하고 너희들은 햇살을 쬐고. 때가 되면 각자의 길로 떠나가는.



작가의 이전글 자화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