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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n 14. 2023

누누카페

누군들 누추하게 살고 싶으랴

커피숍과 카페가 아직도 많이 생기고 있다. 양적 팽창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나면 질적 변화가 일어나겠지만, 그런 과열 경쟁에서 어쩔 수 없는 희생이 발생하리란 생각에 안타깝다. 그러나 인간의 속성상 새로운 유행이 시작되면 누군가는 그 파도에 편승하여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후발주자들도 그들 성공 노하우를 발판 삼아 또 다른 성공의 욕망을 키워가는 구조는 어쩔 수 없다. 다만 모두가 성공할 수 없지만, 가볍게 생각하고 뛰어드는 이들에겐 그 나름의 차별성을 갖추지 않으면 쓴 맛을 보게 될 수 있다.


주택가라 집 주변엔 커피숍이 드물었지만, 한둘 있던 커피숍도 고만고만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을 형성한 곳도 아닌데 최근 젊은이가 한 곳이 오픈하더니 연달아 두 곳이나 문을 열었다. 전망 좋은 바닷가도 아니고, 정원이나 숲이 우거진 곳도 아닌데 이 구석진 동네에 커피숍이 세 곳이나 거의 동시에 문을 열었다면 정말 곳곳에 카페가 있다는 뜻이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누누카페를 갔다. 인건비와 불경기 탓이겠지만, 총각 사장 홀로 커피를 내리고 써빙을 하고 바쁘다. 조용한 틈을 타서 물었다. 작명의 의미가 있는지? 사장은 본인의 얘기를 한다. 오랜 방황과 우울증을 벗고 세상을 나와 부딪치고 싶은데 아직은 자신이 없더란다. 그래도 일단은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나와 비슷한 상황의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오픈을 결심했단다. 그때 군들 추하게 살고 싶어 할까 하는 생각에서 '누누'라고 지었단다. 발음하기 좋다고 했더니, 고맙다면서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느낌이라 아직은 밝고 희망 섞인 단어가 부담스럽다고 보탠다. 


보기에 성실하고 잘 웃으며 착할 얼굴이다. 이렇게 용기를 내어 오픈을 할 정도라면 나름 뚝심도 있으리라. 다만 그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은 명명이 다른 식으로 해석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오히려 구나 즐기고 리는 카페였다면 어뗐을까 싶었다. 


커피 맛이 좋다고 했다. 사실 나는 커피 맛을 잘 모른다. 생산지에 따라 약간의 맛이 차이가 있다고 아는 정도다. 산미에 강약이 있고, 볶는 방식에 따라 구수함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아닐까 나름 유추뿐이다. 커피 맛은 몰라도 커피 볶는 냄새는 참 좋다. 


사장과 친해질 겸 연신 또 질문이다. 커피를 좋아하시는가 봐요? 그런데 대답이 좀 의외다. 본인은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리단다. 이것저것 배워보고 수습을 해봤는데 그나마 커피가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선택지였단다. 베이커리도 시도 중이고, 박람회와 타 지역의 유명 커피숍을 벤치마킹하기도 하고 나름 노력 중이란다.


커피 외에 다른 진열품 중에 샌드위치가 유독 눈에 띄어 커피와 곁들였다. 신선하고 맛도 좋았다. 이 상품 괜찮을 것 같다고 했더니 지금 주력으로 밀어볼까 생각 중이라는 사장 말이다. 


모임 있어 늦게 귀가하는데 마침 누누카페에 불이 켜져 있었다. 숙취도 재울 겸 따뜻한 커피를 한잔 시켰다. 아직 퇴근 안 하셨네요 하고 물으니 최근 고민이란다. 샌드위치도 괜찮았고, 밀크티도 맛이 좋았다고 했더니 반응은 좋은데 소득이 별로란다. 샌드위치만 해도 판매비용에 비해 재료의 누수가 많고, 또 당일 내 소진이 안되면 처치하기 곤란하단다. 여하튼 뭔가 경영상의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 같았다. 그 길을 찾아내는 것도 사장 몫이라 나는 힘내라는 말만 남기고 조용히 일어났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동시에 개업한 옆 커피숍에선 젊은이들 사이에 인증숏을 찍으러 오는 유명 카페로 이름이 알려져 문전성시였다. 내 조악한 시선으로는 차이점을 잘 모르겠다. 소문에 의하면 요즘 유행하는 에스프레소 세 잔 쌓기로 유명세란다. 진한 원액 같은 커피가 어떻게? 내가 아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말이다. 차별화로 독창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누누카페 사장의 고민이 이해는 됐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시원한 뭔가가 생각나서 누누카페를 갔더니 문이 닫혔다. 입구에는 조그만 안내장이 붙었다. 공황장애로 당분간 휴업. 사장에게 힘든 일이 생겼는가 보다. 헤어 나오려고 노력하지만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불안증세들이다. 정서적 불안의 원인은 모르겠지만, 빨리 회복하길 바랐다.


어느 날 지나가는 길에 보니 카페 문이 열려있다. 돌아왔는가 보다. 총각 사장의 얼굴이 좀 부어 보였고, 카페 분위기가 한층 어두워진 느낌이다. 밖을 볼 수 있는 큰 통창을 뉴욕 거리뷰가 찍힌 걸개그림으로 가렸다. 조명이 집중도를 높여주고, 은은한 빔 샷이 벽에 조사되고 있다. 차분하고 집중하기 좋은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관점에 따라서는 답답하고 동굴 같은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오셨어요? 예, 목을 좀 축일가해서요. 근데 카페 분위기가 좀 바뀌었습니다. 네, 제 스스로 뭔가 침잠이 필요할 것 같아서 나름 손을 좀 봤습니다. 요즘은 소통, 밝음 뭐 그런 게 대세 아닌가요? 그냥 제 방식으로 가려고 합니다. 커피 외에 쿠기나 스콘, 쇼콜라, 까눌레 등을 납품받아 팔아도 이윤이 적어 효과적이지 않네요. 구체적인 방식을 묻기엔 주제넘은 짓이다. 참 쉽지가 않죠? 그러네요.


이젠 어디서든 누구나 쉽게 들러 쉴 수 있는 커피숍. 그 내부의 고민과 무게를 잠시 엿본 느낌이다. 자기만의 방식이 대중성을 띌 필요는 없지만, 막상 업장을 연 이후라면 경영 유지는 되어야 한다. 유행을 무시할 수도 없지만 무작정 추종만 필요도 없다. 본인의 색깔이 더 다듬어져 보편성으로 융합되길. 오픈하기 전에 충분히 고민해봐야 하는 이유이고, 수차례의 확인 점검작업이 필요한 과정들이다. 쉬워 보인다고 내게도 쉽다는 보장은 없다.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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