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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n 19. 2023

양성 캐릭터

거침없는 질주

딱 벌어진 어깨에 큰 목소리. 그녀의 걸음걸이는 멀리서 봐도 금방 눈에 띈다. 그녀의 말하는 폼은 차근차근한 모양과 거리가 멀다. 먼저 손동작이 나오고, 얼굴표정에서 이미 어떤 내용의 말인지 드러난다. 목소리 큰 거친 사투리에 과장된 몸짓이 오히려 그렇겠네 하듯이 자연스럽고 재밌다. 


그런 그녀의 주변에는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넓은 인맥과 그녀의 가벼운 솔직함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는가 보다. 명쾌하고 쾌활한 그녀의 성격에 친화력까지 갖춘 그녀는 주말에도 여러 분류의 사람들과 함께 놀러 다니느라 바쁘다.


고민이나 숙려의 과정이 그녀에겐 없어 보인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녀 스스로의 결론이 내려져있다. 이럴까 저럴까 판단을 하고 말고 가 없다. 어떤 가게를 찾아가는 삼거리 갈림길에서도 여긴가저긴가하는 고민이 없다. 이쪽이야. 분명히 이쪽이다. 혹 길을 잘못 들어 삥 둘러가더라도 그녀에겐 뒤돌아서는 일이 거의 없다. 결국엔 목적지에 도달하므로. 


음식을 요리하는 과정도 비슷하다. 쿠킹 클래스에서든 주변인에게서든 배우고 감을 잡으면 끝이다. 섬세하고 예민한 점도 없진 않으나, 아! 이렇게 하면 되겠네라고 스스로 감을 잡으면 그걸로 바로 실행에 옮긴다. 뚝딱뚝딱 음식도 잘한다. 정해진 레시피가 없지만, 생각 속엔 이미지가 그려져 있고 그럭저럭 맛이 난다. 그러나 일정한 맛을 내지는 못하고 맛이 들쑥날쑥한 점도 있다. 물론 영 아닌 경우도 있다. 그러면 여지없이 그냥 폐기다. 어? 잘 안되네. 이걸로 다다. 어쩌나 어떻게 하지가 그녀에게는 없어 보인다.


그녀의 무용담을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30년 전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뭘 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잠시, 그녀는 바로 오퍼상으로서의 사업을 펼쳤다. 본인 특유의 발 빠른 부지런함과 예술적 안목을 고려하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단다. 그 자신감의 배경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변의 보세가게를 보면서 저런 식의 옷장사라면 외국으로 가서 직접 옷을 떼와 장사해도 그보단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영어도 못하고, 장사 밑천도 넉넉지 않은 그녀였지만 일단 부딪쳐보자는 식으로 그녀는 유럽행 비행기를 탔다. 너무나 고맙게도 파리에서는 영어가 크게 필요가 없었다. 어눌하기는 그들이나 본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물건을 구매하는 방식도 우리와 다를 리 없었다. 벼룩시장을 가고, 가격을 흥정하고, 파리의 메종 오브제를 다니면서 성에 차지는 않지만 그녀는 그렇게 첫 스타트를 끊었다.


해 온 물건을 펼치자 그녀의 지인들은 함성을 지르며 물건들을 사갔다. 일단 정품이며, 가격은 백화점에 비해 거의 반 값 수준이었다. 그녀가 입은 옷이 그녀에게 잘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판매하는 옷들은 스타일리시했다. 서너 번의 진행으로 그녀 주변인들은 단순 구매를 넘어 다음엔 뭘 사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하고, 물건을 해오면 먼저 연락을 달라고 넌지시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녀의 계획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물건을 살 사람들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그녀는 물건을 하러 파리와 로마로 향했다.


처음부터 소품이나 그릇, 가구를 수입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계획안에는 그러한 품목들이 즐비했다. 사업이 진행되면서 그녀의 구상대로 의류 외의 다른 소품들을 조금씩 가져와 판매를 하면 곧잘 완판이 되었다. 그녀는 그녀의 넘치는 아이템에 미치지 못하는 자본력을 늘 아쉬워했다. 


그녀의 그러한 자신감 넘치는 배경이 뭘까 궁금했다. 물론 타고난 성격이지만, 살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들에 부딪치면서 그 어쩔 수 없음으로 인한 좌절과 포기를 통해 우리는 나름의 자숙이나 반추를 통해 타고난 성격의 변화를 꾀하기도 하지 않나. 


그녀의 성공과 우여곡절의 삶 얘기를 듣는 건 항상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현실적 어떤 문제에 대한 조율과 토론이 필요한 경우에 그녀와의 대화는 그녀의 일방적 주장을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아 마찰도 많다. 선택을 머뭇거리는 동생에게 뭘 그렇게 생각하냐며 바로 어떤 결정을 내려버려 아직 준비가 덜 된 동생은 마음에 몇 차례 깊은 상처가 지어졌다. 물론 시간이 흘러 결론적으로 그녀의 판단이 옳다고 해도, 그건 너무 결과론적 관점이었다. 당시의 동생에게는 그 후로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기가 어려워졌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한다.


삶에서 크게 실패를 겪어보지 못해서 그녀가 그런 성향을 굳혔다고 보진 않는다. 그녀라고 힘듦이 없었을 리 없다. 다만 항상 잘한다거나 옳다는 생각까지는 아닐지라도 본인이 잘못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다. 아니 어쩌면 그녀는 어떤 일이든 그걸 실패니 좌절이니 하는 단어와 결부시키지 않고, 그렇게 하는 자체가 아무 의미 없는 짓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야말로 아니면 말고.


그녀의 주장에는 심심찮게 모순적 발언이 나타난다. 장사하고 사업을 해보면서 돈의 힘을 절실히 느꼈으라. 뿐만 아니라 나이 들면 결국은 돈이면 모든 게 해결되더라며 그래서 돈이 제일 중요하다고 누누이 말을 한 적 있다. 그러나 주변에 누군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을 갔다 와서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늙고 병나면 소용없으니 건강이 제일이라고 입 마르도록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건강을 위한 어떤 꾸준한 활동은 없다. 운동도 별로 안 하지만, 밤새워 티브이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밤샘도 그렇지만 시차 적응도 타고난 체력만큼이나 별 문제가 없다.


그녀를 보면 흔히 말하는 노빠꾸 느낌이다. 그런 무한 질주의 그녀에게 만약 지금과 다른 변화가 생긴다면 그 변화에도 과연 그녀의 양성 캐릭터를 그대로 유지할까? 그녀는 고요한 심리적 안정이니 명상이니 하는 단어와는 너무 거리가 멀다. 일상적인 꾸준함과도 약간 멀다. 뭘 해도 금방 싫증을 내는 것 같다. 세상은 늘 신상품이 늘려있고, 갖가지 신기하고 새로운 물건이 끊임없이 나오는데 왜 그렇게 살아? 


아니 어쩌면 그녀도 그런 음적 차분함을 추구할런지도 모른다. 내가 몰라서 그런 면만 보고 있을 수도 있으니. 만약 그런 수렴하는 음적인 뭔가가 없다면 타버릴 수도 있을 테니. 활기차고 활동적인 그녀가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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