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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l 24. 2023

그런 사과는 없습니다

개념의 허상

사과를 떠올려보면 각자 나름의 사과를 생각한다

어떤 사과를 생각하고 상상하든 

그 사과는 진짜 사과와 같을 수 없다

어떤 표현을 해서 사과를 나타내든

온전히 사과를 드러낼 수 없다

그냥 내가 생각하는 어떤 사과를 떠올릴 뿐이다


진짜 사과는 저기 사과나무에 달려있고

그 사과를 직접 따서 

사각하고 씹어먹으면 그만인데

그 사과는 어떤 단어나 표현으로도 

비슷할 뿐 그 자체를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어떻게 '나'를 규정하든

어떤 이름으로 나를 부르고 불리든

나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름은 없다

아무리 자세히 나를 표현해도 

좀 더 근접해서 가까워진 것 같지만 

그 간극은 끝내 채워지지 않는다


우리의 말이 명칭으로 부르는 대상은

사회적 약속일 뿐이고

우리가 하는 대화는 

서로 다른 개념의 절충적 접근으로

실체와는 거리를 둔 인식으로 

차이를 묵시적으로 묵인한 상황에서 겨우 공감한다


그래서 그런 사과는 없고

그런 나는 없다

그렇게 불리고 이름 지어져 부를 뿐이라


사과가 없으면 세상이 없다

세상이 없으면 나도 없다

그렇게 없는 내가 

그 속에서 담담히 살아간다

실체는 모르면서

그래도 잘 살고 있다, 아주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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