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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Jul 30. 2023

다운 사람, 로운 세상

지금도 그러한지에 대한 소환

입학할 당시 아직 학년이 다 채워지지 않은 신생 사립 고등학교. 졸업생이 없었기에 대학 진학률로 명문고 여부를 가리는 상황에서 재단에서는 의욕 넘치고 젊고 패기 있는 유능한 선생님을 유치하려고 노력했다. 노련함 보다는 신선함에 더 중점을 둔 교원확보였기에 갓 졸업한 선생님들의 첫 부임지로 우리 학교가 된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학생들에게도 학구열을 높이기 위한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늦게까지 학생들을 학교에 머물게 했다. 전혀 자율스럽지 않은 자율학습의 이름으로. 학교 이미지를 좋게 하고 유능한 신입생을 모집하려면 무엇보다 성적 위주의 교육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물로 대학 진학률을 높이고 서울과 수도권 내 대학의 합격자 학생수를 늘려야 했다. 외부에 학교를 알리는 가장 객관적이고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었다.


나의 국어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지은 급훈을 설명한다. '다운 사람, 로운 세상'은 어쩔 수 없는 경쟁의 현실이지만 삶을 살면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우리들에게 하는 당부란다. 人人人人人의 한자 해석이 한창 유행이기도 했다.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와야 사람이지.


(  ) 다운 사람의 괄호는 예를 들면 학생다운이요, 사람다운이요, 나다운 사람 등등의 말을 넣으면 직위에 지위에 적당하고 스스로 떳떳함의 의미요, (  ) 로운 세상은 자유로운 세상이요, 정의로운 세상이요, 새로운 세상처럼 우리 함께 사는 합리적이며 보편적 세상에 대한 희망이지. 그러면 좀 더 멋진 인생을 우리가 살아가지 않을까?


그렇게 시처럼 급훈을 지은 선생님은 괄호를 지워버리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떤 세상이 되길 꾸미는 수식어는 여러분들이 채워라는 말로 끝맺었다.


옆반의 급훈이 ' 네가 졸 때 경쟁자의 책장은 넘어간다'라는 식의 경각심과 긴장을 유발하는 문구로 옥죌 때,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국어선생님을 동료 교사들도 참신하다고 좋아하는 분도 계셨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문구라며 외면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교칙의 엄격함과 의욕적 학업 분위기를 잘 적응하는 모범생들에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삶을 방황하는 친구들이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동기들에게 학교의 몰아붙이는 식의 교육은 오히려 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쫓기다 부적응처럼 중구난방으로 날뛰는 애들이나 삐딱해지기 쉬운 제자들에게 나의 국어선생님은 은근슬쩍 손짓을 했다.


야간 자율학습이 없는 날, 혹은 주말에 신혼부부였던 선생님 아파트로 애들을 초대해서 막걸리를 따라주면서 격려를 하던 선생님이었다. 인생을 얘기하고 낭만과 예술을 논하던 선생님의 학교밖 수업에 나도 한두 차례 참석했다. 내가 졸업한 후로도 선생님의 파격이 얼마나 지속됐는지는 모른다. 다만 초창기의 졸업생 중 한 사람이었던 나를 선생님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이렇게 사는 게 인생이냐며, 어떻게 사는 게 사람처럼 사는 거냐며 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놈이 너였다며.


막상 현실로 돌아와 고3이 되고, 대입 원서를 작성을 하는 상황에서의 분위기는 대부분 '네 성적으로는 그 대학교 못 가니 낮춰서 하향 안정지원을 해라.'는 쪽이 많았다. 어떤 학생은 원하는 대학을 가려면 비록 남은 시간이 부족하지만 마지막까지 그런 목표를 향해 가겠다는 말을 해도 학교에서는 합격률에 더 신경을 쓰는 느낌이었다. 각자의 취향과 개성 등은 그다음인 듯이.


오랜만에 연락이 온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는데 내가 보기엔 그에게 뭔가 병색이 짙어 보였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냐고, 혹 어디 아픈 곳은 없냐고 몇 번을 물어도 그는 별 이상 없다는 말만 반복한다. 들어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얘기들만 잔뜩 늘어놓는다. 그냥 술 마시기에 앞에 앉혀 놓을 상대가 필요해서 나를 부른 모양이었나? 


너에게 내가 고작 그 정도냐고,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고, 뭔가 할 말이 있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라며 다그치다  '詩的 허용'의 범위로 언쟁이 붙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신 님에게 꽃을 뿌릴 일인가를 두고, 서로 왜 솔직하지 않느냐와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느냐의 감정의 정직함을 따지다가 그가 '그럼, 직접 확인해 보자'며 대뜸 선생님께 전화 걸었다.


저녁 늦은 시각이었지만 선생님은 술 마신 제자들의 전화에 그 '시적 허용'에 대한 의미와 예시의 문장까지 소개하며 수업시간처럼 길게 말씀을 이었지만, 정작 우린 그런 선생님의 말씀을 스피크폰으로 들으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네네 거리면서. 


평소 선생님께 자주 연락하고 만남을 가졌던 그였기에 그도 선생님도 부담 없는 사이였던가 보다. 그러나 나와 둘이서 만나 술 마시다 갑자기 무슨 굉장한 일처럼 선생님께 전화를 하고는 정작 별로 신경 쓰며 듣는 태도도 아닌 그의 행동이 너무 가벼워 보였다. 왜 선생님께 전화드렸냐고 물으니, 그냥 갑자기 선생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졌단다. 골치 아프게 내가 무슨 시적 허용 같은 거창한 말을 술자리에서 필요했겠냐고. 핑계가 필요했단다.


그게 그 친구와 선생님의 마지막 통화이었고, 나에게도 그 친구는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선생님은 다른 동기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 통화가 그가 죽기 전 마지막 음성이었고, 그때 내가 동참했으니 나를 봐야겠다는 말을 친구를 통해서 전한다. 몇 해 전 퇴직한 선생님이지만, 졸업한 지 몇십 년 됐지만, 여전히 우리는 사제의 관계다. 선생님으로부터의 소환은 그렇게 이뤄졌다. 그러한 사람이 그러한 세상을 지금 꾸미는 수식어로 적당하게 잘 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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