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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Aug 23. 2023

만배 언니

열정의 배경

어떤 특정한 일이나 운동에 열정적인 사람들이 있다. 좋아하고 또 하고 싶어 그런 것이야 뭐가 문제리오. 다만 심하고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인 상황이다. 물론 재미있어 그렇게 몰두하고, 해야 하는 일이라서 그렇게 정신없이 집중하는 경우도 있지만, 간혹은 러다 탈 날 것 같아 고개가 저어진다.


꼭 그렇게 열심이어야 하냐고, 대충 하면 안 되냐고, 쉬엄쉬엄 하라고 해도, 그들은 어떻게 그러냐며, 안 하면 안 했지 일단 하면 끝까지 해야 일을 한 것 같다고 한다. 그래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완벽을 추구하냐고 물으면, 꼭 완벽이라기보다는 생각하는 만큼은 해놔야 속이 편하고 한 단락 일을 한 것 같다고 한다. 


일을 남겨두면 뭔가 찜찜하고 개운하지 않아서 계속 신경이 쓰인단다. 어쨌든 시작한 일은 끝을 내야지 도중에 멈출 수가 없단다. 단호하다. 청소를 해도 먼지는 물론이고 반짝반짝 광이 나게 닦고, 빨래를 해도 뽀얗게 윤이 나야 한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관절에 무리가 갈 정도인데도 운동을 멈출 수가 없단다. 그렇게 운동을 계속할 거면 풀면서 조절하는 게 낫지 않냐고 해도 흘려듣는다. 심지어는 진통제를 맞아가면서까지 운동을 한다. 승부욕도 한몫했으리라.


집중하여 한 곳만 바라보며 모든 힘을 모아 쏟다 부으면 속도와 추진력으로 결국 일을 해내겠지만,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다. 너무 몰입하여 일이나 운동을 하다 보니 그야말로 푹 빠져있다. 날카로운 송곳은 뚫는 힘이 좋다. 그러나 뚫고 나면 더 이상 송곳을 쓸 일은 없다. 그런데도 자꾸 뚫기만 한다. 결연하다.


그러다 문득 빠져나와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을 땐 후유증처럼 여기저기에 탈이 나있다. 자기 몸까지 그 일의 도구로 사용된 느낌이다. 몸이 상한다. 간혹 그 일을 하느라 주변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고, 그런 주변인들에 대한 소홀은 평소 자신이 그렇게 열심인 이유가 다 같이 잘 되길 바라는 바였음에도 결과는 기대치와 많이 달라져 있다. 아차, 했을 땐 시간이 한참 흐른 때다. 후회의 후폭풍이 불기도 한다.


삶은 과정의 연속이면서 현시점을 벗어날 수 없다. 다음을 위한 진행과정이 현재다. 그런데 마치 끝장을 볼 듯이 한다. 이 시점에서 하는 일들이 아무리 지상 과제인 것처럼 안 되면 안 될 것 같아도 지금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할 수도 없다. 그쯤에서 멈출 줄 알아야 하고, 멈춰야 한다.

 

그렇게 신경을 쏟고,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엇이 있는 모양이다. 가만있으면 잡념이 끊이지 않고,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상황과 현실이 못 견디게 힘들다고 느껴진다. 어디에든 무엇이든 빠져들어야 이 혼란에서 그나마 외면할 수 있다. 그 속에서 그렇게 정신없이 집중할 때만이 내가 살아있고 숨을 쉬는 것  같으니 그렇게 한단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냐며. 그렇게 빠져들고 그렇게 중독이 된다.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그러노라며.


처음 만배언니를 봤을 때 사람이 참 편해 보였다. 웃는 미소가 어려움 없이 잘 살아온 모습 같았다. 그런 그녀가 천배 삼천배도 아니고 만 배를 하게 된 사연은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였다.


화학 공장의 안전 점검 작업을 하는 남편에게 그녀는 늘 불안했다. 툭하면 뉴스에 나오는 안전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 소식은 남편의 무사함을 확인하느라 전화기가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 졸이는 불안 속에서 시작한 백팔배는 특히나 공장의 셧다운이 시작되는 시점이 되면 걱정으로 잠을 잘 수가 없는 날이 늘면서 점점 천 배 삼천 배로 늘고 있었다.  


남편 직장의 동료 사망소식을 들은 이후로는 남편이 출근하면 인근 사찰에 가서 만 배를 시작하게 됐다. 그녀의 지인들은 그러다 몸 상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지만, 불안을 떨치기 위한 그녀의 몸부림은 온몸을 던지는 절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결굴 탈이 난다. 무릎 연골의 파열과 퇴행성 변화. 이젠 계단은커녕 보행을 하기에도 통증으로 힘들고 부자연스럽다. 


어떤 특정 부위의 손상으로 그곳을 치료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으나, 기실 그 무릎이 상하기 전에 그 주변의 근육 기능 상실이 먼저고, 그런 무리한 만 배 이전에 불안감의 해소가 근본이 된다. 그 일을 하는 한 남편의 직업상 위험 부담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물가에 자주 가면 가랑이가 젖는다. 다만 그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으로 몸까지 상한다면 그 힘든 만 배가 무상하게 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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