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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Aug 18. 2023

형태도 없으면서 들러붙은 濕習襲

습기는 무기력하다. 좀 더 과하게 표현하면 눅눅하게 착 달라붙어 은근히 무겁게 한다. 제 혼자서는 별 힘이 없는데 다른 것과 합쳐지면 만만찮은 끈끈한 끈기의 힘을 발휘한다. 


더위가 습기를 만나면 습한 더위가 되어 습열로서 작용한다. 습기 없이 단순히 덥다면 그 더위는 그늘에 들어가면 열기를 면할 수 있는 상쾌한 더위 정도로 그친다.  그러나 습기와 합쳐진 습열로서의 더위는 안 그래도 더운데 습기로 인해 몸을 더욱 지치게 한다. 끈적거리는 땀을 유도하고 불쾌감을 높인다. 


추위도 비슷하다. 차가움이 습기와 합쳐지면 엉겨 붙은 한습의 차가움은 뼛속까지 추위에 떨게 한다. 습기 특유의 달라붙은 몸에 차가움이 더 춥게 만든다.


이렇게 습사習邪를 동반한 한습이나 습열이라면 단순히 데우거나 열을 내리는 과정으로는 부족하다. 한열의 조절과 함께 습기를 날리고, 습기를 빼내는 내부 순환을 같이 고려를 해야 한다. 젖은 빨래를 먼저 비틀어 짜고, 양지바른 곳의 빨랫줄에 널고, 바람이 불어야 제대로 뽀송해진다.


습의 다른 의미는 습관이다.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학습學習의 의미에도 배우고 익힌다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배운 것을 암기하는 과정이 아니라 배운 것을 몸에 익혀 젖어들고 배어들 듯 습관화한다는 의미다. 즉 머리로 이해하고 외워서 입으로 말하는 정도를 넘어선 배운 것의 체득함이라야 학습이라 할 수 있다. 배운 게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어 원래 그런 것처럼 익숙해져 자연스러워짐이다. 


어쩌면 가르치는 이의 교육敎育에서 먼저 말 뜻을 따져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가르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가르쳐 인성을 육성함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요즘은 지식의 습득을 더 중시하는 교(敎)의 가르침에만 방점을 두는 분위기가 만연한 듯하다. 더 많이 알고 더 잘 외우는 선에서 그친다. 그런 가르침이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와 실천의 측면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아쉽고 안타깝다. 


교敎는 있는데 육育이 아쉽고, 학學은 있는데 습習이 드물다.


그러나 습이 있어야 날씨가 변화한다. 비가 한차례 내리고 나면 계절이 바뀐다. 그 무기력한 습기가, 별 힘없어 보이는 습기가, 가끔 더위를 더 덥게 하고 추위를 더 춥게 하는 제 성격이라고는 잘 보이지 않는 습기가, 그 변화를 주도면밀하게 유도한다. 정말 젖어들듯이 슬금슬금.


몸에 밴 습관이, 늘 하던 버릇이 변화를 일으킨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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